괴작열전(怪作列傳) No.61
이번에도 [팬텀], [하워드 덕]에 이어 또 한편의 괴작 슈퍼히어로를 소개하는 시간이 되겠습니다. 지난번에도 언급했지만 2008년의 최대 화두는 돌아온 인디아나 존스....가 아니라 돌아온 배트맨, [다크 나이트]였습니다. 슈퍼히어로로서의 배트맨이 가진 명성과 인기도는 접어두더라도 [다크 나이트]가 그토록 놀라운 작품이었던 이유는 기존의 슈퍼히어로물이 아무리 잘해봐야 액션 블록버스터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못한채 끊임없는 자기복제의 한계에서 맴돌았던 것과는 달리 '만화적' 캐릭터인 배트맨을 '범죄 느와르'라는 장르 영화의 영역으로 끄집어 냈기 때문입니다.
ⓒ Warner Bros.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이미 [배트맨(1989)]을 통해 동화적 디스토피아의 세계관을 보여준 팀 버튼의 솜씨도 훌륭했지만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는 단순히 '잘만든 영화'라고 부르기에는 턱없이 부족할 정도로 궁극의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실제로 '배트맨'의 영화사를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정말 이번 [다크 나이트]는 '개천에서 용났다'는게 어떤 것인지를 말해주고 있달까요.
1966년작 [배트맨: 더 무비]는 DC Comics의 캐릭터를 극장용 장편영화로 옮긴 첫 번째 작품입니다. 1966년 4월 25일부터 5월 31일까지 방영된 TV판 [배트맨]의 스핀오프로서 최초의 극장판 [배트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시즌2는 극장판 이전에 촬영이 끝난 상태였지만 제작진은 시즌2 방영 이전에 팬들에게 뭔가 화끈한 이벤트를 선사해 주고 싶었던 것이지요.
ⓒ 20th Century Fox. All rights reserved.
사실 TV시리즈 [배트맨]은 요즘 우리가 알고 있는 배트맨의 'Serious'한 모습은 눈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 작품이었습니다. 제작자 윌리엄 도지어는 원작의 팬도 아니었을뿐더러 배트맨이 어떤 스타일의 캐릭터인지도 모르는 인물이었습니다. 도지어는 컨셉 자체를 아동용 코믹물에 맞추어 제작에 나서는데요, 이 때문에 [배트맨] TV판의 분위기는 영락없는 모여라 꿈동산의 탈바가지 인형극 수준입니다. (당연하게도) 원작팬들의 반응은 분노에 가까웠지만 희안하게 시청율은 꽤 좋았다고 하더군요.
TV판 시즌1의 성공적인 종영에 힘입은 [배트맨: 더 무비]는 TV판에서 볼 수 없었던 여러 가지 장비로 재무장한 배트맨과 로빈이 고담시의 4대 천왕, 아니 4대 악당과 맞선다는 비교적 큰 스케일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배트맨을 비롯한 대부분의 배역은 모두 TV판의 오리지널 배우들이 그대로 역할을 맡았습니다. 아담 웨스트가 배트맨을, 버트 워드가 로빈으로 등장하고 다른 악역들도 마찬가지로 그들의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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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TV판에서 캣우먼 역을 맡았던 줄리 뉴마는 극장판의 촬영 계획을 모른채(출연진에게 알리지도 않고 극장판을 계획했다는게 참... ㅡㅡ;;) 다른 작품의 계약서에 싸인을 하는 바람에 극장판에서는 리 메리웨더가 대신 출연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미 촬영을 마친 시즌2에서는 다시 줄리 뉴마가 캣우먼으로 등장하고, 리 메리웨더는 리자 카슨 이라는 캐릭터로 등장하는 다소 난감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하였지요.
[배트맨: 더 무비]의 스토리는 크게 두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전반부는 브루스 웨인이 배트맨이라는 걸 모르는 상태에서 웨인을 인질로 삼아 배트맨을 함정에 빠뜨리려는 캣우먼의 활약상(?)을 그렸고, 후반부는 각 국가의 정상들을 분말상태로 만들어 세계를 혼란에 빠뜨리려는 펭귄의 음모를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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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결론부터 말해 [배트맨: 더 무비]는 무척 어설픈 영화입니다. 우선 내러티브가 극장용 영화라고는 믿을 수 없을만큼 엉성하여 마치 TV판 에피소드 두 개를 억지로 붙여놓은 듯한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게다가 '다크 나이트'인 배트맨은 전혀 '다크'하지 않은 캐릭터로 등장하는데요, 로빈이 뭐라고 할 때마다 'Precisely!(바로 그거야!)'를 외치며 방정맞기 이를데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로빈은 어떤가요. 'Holy sardine!', 'Holy nightmare!', 'Holy marathon!' 와 같이 '맙소사!'에 해당하는 감탄사에 무조건 'Holy'를 붙여서 말하는 등 호들갑스럽게 촐싹대는 캐릭터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오죽하면 DVD 표지에는 "Holy Special Edition Batman"이라는 문구까지 있습니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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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전체적으로 배트맨과 로빈은 사뭇 진지한 어조로 대화하며, 악당들의 음모에 맞서는 자세 또한 정의감에 불타는 의욕적인 '다이나믹 듀오'의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도 두 사람의 대화가 마치 만담콤비의 스탠드업 코미디만큼이나 익살스럽게 그려지고 있는건 아무래도 이 작품이 지향하는 지향점이 캠피(campy:과장되고 유치하며 우스운)스타일의 가벼운 오락물이기 때문일 겁니다. 무엇보다 클라이막스를 이루는 잠수함 위의 난투극 장면에서 'Ouch'나 'Boom'같은 만화적 의성어를 그대로 화면상에 표현한 것은 [배트맨: 더 무비]의 아동취향적인 장르적 한계선을 명확히 보여준 것이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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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이러한 성향은 악당들의 모습들에서도 엿볼 수 있는데요, 특별판 형식의 극장 영화답게 조커, 리들러, 펭귄, 캣우먼으로 구성된 '빅4' 악당들의 연합전선이라는 소재가 구미를 당기기도 하지만 사실 이 악당들이란게 애들 장난치듯이 작당모의를 하는지라 긴장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물론 영화의 지향점은 다르긴 하지만 언제 무슨일을 터트릴지 모르는 [다크 나이트]의 조커 한명이 조성하는 긴장감은 그에 비하면 정말 대단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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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여기서 조커 역을 맡은 케사르 로메로는 무려 '콧수염'을 기른채로 등장합니다. 조커가 콧수염이라니! 이런 TV판 스핀오프에 메소드 배우의 정신을 기대하는 건 아니지만, 호텔방에 6주동안 갇혀지내면서 스스로를 '조커화'시켰던 故 히스 레저의 열정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새삼 느끼게 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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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배트맨: 더 무비]에는 배트보트나 배트모빌, 배트사이클, 배트콥터 등 배트맨의 전용 장비가 꽤나 많이 등장하는데요, 이는 원작의 영향이라기 보단 1960년대 스파이 영화의 트랜드를 이끌었던 007 시리즈의 특수무기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듯 합니다. 특히 후방에 점화구가 달린 배트모빌의 디자인은 훗날 팀 버튼의 [배트맨]과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비긴즈]에서도 그대로 응용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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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브루스 웨인/배트맨을 연기했던 아담 웨스트는 외모도 꽤 준수한데다 원래 코믹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배우였습니다만 결국 [배트맨]의 이미지에서 탈피하지 못한채 이러저러한 TV시리즈에 얼굴을 내밀다가 종종 '배트맨 애니메이션' 시리즈에도 성우로 참여하는 등 배트맨과의 질긴 인연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언젠가 한번쯤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시리즈에서 까메오로 얼굴이나 비춰주셨으면 하는 바램이 있네요.
그 밖에도 펭귄 역을 맡았던 버지스 메레디스는 잘 아시는 것처럼 훗날 [록키]에서 록키의 트레이너 미키 역으로 관록의 연기를 선사하며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바 있습니다. 또한 캣우먼 역의 리 메리웨더는 최근에 '메탈기어 솔리드4'라는 유명 프랜차이즈 게임에 '빅 마마'역으로 목소리를 들려주는 등 현재까지도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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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배트맨: 더 무비]의 유치찬란한 각본을 썼던 로렌조 셈플 주니어가 7,80년대에 [빠삐용]과 [킹콩], [네버세이 네버어게인], [플래쉬 고든] 등의 각본을 쓰며 비교적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아갔다는 점입니다. 역시 사람일이란 앞일을 모른다니까요.
돌이켜보면 1966년판 [배트맨]은 슈퍼히어로물이 아동취향적 장르에서 수십년간 제자리를 맴돌게 한 주범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만큼 이 작품의 캠피적 스타일은 (원작과는 달리) 배트맨을 규정짓는 하나의 트레이드 마크로 자리로 자리잡았으며, 훗날 '배트맨'의 판권을 구입한 마이클 우슬란이 어둡고 진지한 스타일의 배트맨을 만들려다가 번번히 제작자들에게 퇴짜를 맞은 것도 1966년판의 유치한 컨셉이 뿌리깊이 남아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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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1966년 [배트맨: 더 무비]가 개봉된 이래, 필리핀에서는 [제임스 배트맨]이나 [배트맨 파이츠 드라큘라]같은 기라성같은 괴작이 속속 등장하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습니다. 참 괴작의 세계는 오묘하고도 깊은 맛이 있지 않습니까? 언제 시간이 나면 이와같은 괴작들도 소개해 올리겠습니다. 단 여러분이 받게될 정신적인 데미지는 책임질 수 없지만요. 훗.
P.S: [다크 나이트]의 성공에 발맞춰 [배트맨: 더 무비]의 DVD가 재출시 되었는데, 커버 디자인이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스타일과 비슷하게 바뀌어서 나왔습니다. 이 정도면 가히 범죄수준이라는거....
* [배트맨] 시리즈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의 리뷰를 참조하세요.
배트맨 - 팀 버튼식 다크 히어로의 탄생
배트맨 시리즈의 변천과정
배트맨 비긴즈 - 리얼리즘과 결합한 어둠의 기사
다크 나이트 - 고담시의 흑기사, 범죄 느와르 속 주인공이 되다
* [배트맨: 더 무비]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20th Century Fox.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 참고 스틸: 다크 나이트 (ⓒ Warner Bros.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제임스 배트맨(ⓒ Sampaguita Pictures. All rights reserved.),배트맨 파이츠 드라큘라(ⓒ Fidelis Productions.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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