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작열전(怪作列傳) No.62
[다크 나이트]와 함께 올해 리부팅에 성공한 또하나의 슈퍼히어로 영화 [인크레더블 헐크]의 마지막 부분에 보면 '그분'이 나타나 로스 장군에게 '슈퍼솔져 프로젝트' 관한 언급과 함께 우리들만의 '팀'을 만들자고 제안하면서 끝을 맺습니다. 사실 마블 코믹스의 세계관에 문외한인 관객이라면 이 장면이 암시하는 의미심장한 떡밥의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했을텐데요, 이는 현재 마블 엔터프라이즈가 진행중인 자사의 슈퍼히어로 영화들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캡틴 아메리카'라는 히어로는 그분이 언급한 슈퍼솔져 프로젝트의 직접적인 결과물입니다.
ⓒ Marvel Comics. All Rights Reserved.
국내에는 (일부 팬들을 제외하고) 그다지 지명도가 높지 않은 캡틴 아메리카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마블 코믹스의 대표적인 터줏대감중 하나입니다. 그의 탄생은 1941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요, 시기적으로 제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었던 당시에 아직 미국은 직접적인 참전을 하지 않은 상태(미국은 1941년 12월 7일 진주만 공습을 기점으로 참전 결정)였지만 날로 번져가는 전쟁의 여파속에 긴장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잭 커비와 조 사이먼 콤비는 이러한 세계적 정황을 대변하고 미국인들의 애국심을 고취시키기 위한 모종의 캐릭터를 구상하게 됩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바로 캡틴 아메리카입니다. 캡틴 아메리카가 기존의 슈퍼히어로와 다른 두드러진 특징은 매우 노골적으로 미국을 찬양하는 캐릭터라는 것입니다. 일단 이름부터가 캡틴 '아메리카'이고 코스튬은 미국의 성조기를 상징하는 붉은색과 푸른색, 그리고 별로 이루어져 있지요. 또한 캡틴 아메리카가 처음 발간된 1941년 3월호의 첫표지는 무려 캡틴 아메리카가 히틀러 총통의 아구리를 날리는(!) 충격적인 일러스트로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 Marvel Comics. All Rights Reserved.
기존의 슈퍼맨이나 배트맨 같은 히어로가 추구했던 가치관이 사회 정의와 질서를 확립하는 의협심의 발현이었다면, 캡틴 아메리카는 조국을 위해 죽음을 불사하는 그야말로 열혈 애국청년지사의 모습을 투영하기 시작했습니다. 캡틴 아메리카를 시발점으로 미국의 슈퍼히어로는 국가주의적인 색체를 띄기 시작한 셈이지요.
이런 노골적인 정치적 의도에도 불구하고 캡틴 아메리카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무엇보다 캡틴 아메리카가 인상적이었던건 그가 아이언맨이나 배트맨처럼 아이템빨로 승부하는 갑부도 아니고, 헐크처럼 몸빵으로 먹고사는 캐릭터도 아닌 평범한 시민으로서 애국심 하나로 용감하게 독일군과 일본군에 맞서는 병사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캡틴 아메리카의 이미지는 전체주의 국가들의 팽창을 경계하고 있던 미국인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주는 대리만족의 주체가 되었던 겁니다. 마치 전쟁터에 아들을 보내놓은 부모가 아들이 무사히 승전보를 가져오길 바라는것처럼 말이죠.
ⓒ Republic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그럼 캡틴 아메리카는 도대체 어떤 인물일까요? 그의 본명은 스티브 로저스. 미대를 전공한 미술학도로서 조국을 지키기 위해 자원입대를 결심하지만 허약한 체질로 인해 탈락됩니다. 그런데도 로저스는 포기하지 않고 '나 군대가야 돼!~'를 외치며 때마침 국방부에서 극비리에 진행중이던 슈퍼솔져 프로젝트에 지원합니다. 여기서 그는 라인스테인 박사에 의해 개발된 생체실험 주사를 맞고 인간의 근력과 육체적인 능력을 극대화시킨 코드네임 '캡틴 아메리카'로 재탄생합니다. 어째 주사 한방에 슈퍼히어로라.. 좀 단순하긴 하죠?
이렇게 탄생한 캡틴 아메리카는 2차 세계대전의 전장 한가운데에서 승승장구하며 연합군의 히어로가 되지만 임무수행 도중 폭발물이 실린 비행기와 함께 추락, 북극의 빙하지대에 떨어져 그대로 냉동상태에 들어갑니다. 전쟁이 끝나고 오랜 세월이 흐른뒤에 '서브 마리너'에 의해 발견된 그는 곧 현재에 적응하면서 어벤저스를 이끄는 리더로 활약하게 됩니다.
ⓒ Marvel Comics. All Rights Reserved.
마블사의 캡틴 아메리카는 미국인들의 히어로 역사에 있어서 꽤 중요한 위치(거의 DC 코믹스의 슈퍼맨과 동급이죠)를 차지하고 있는 캐릭터입니다. 남들처럼 특수능력이나 초인적인 파워없이 오로지 '파괴되지 않는' 방패만 덜렁들고 전장에 뛰어드는 히어로가 이처럼 인기를 끌 수 있었다는게 신기하기까지 하군요.
역시나 슈퍼히어로의 왕국답게 미국에서는 일찌감치 캡틴 아메리카의 실사화에 착수했습니다. 그 중 가장 먼저 나온 것이 리퍼브릭 픽쳐스의 1944년작 [캡틴 아메리카]로서 15부작 시리얼 무비로 만들어졌습니다. 이때 들어간 제작비는 약 22만 달러였는데, 이는 리퍼브릭의 시리얼 무비중에 가장 많은 제작비가 투입된 작품이었습니다. 당시 리퍼브릭 픽쳐스는 원작의 각본을 지멋대로 고치는 것으로 아주 악명이 높은 회사였는데요, 일례로 캡틴 아메리카의 정체를 청년 스티브 로저스가 아닌 지방검사 그랜트 가드너로 바꿔 버렸습니다. 따라서 슈퍼솔져 프로젝트라는 설정도 완전히 제거됐으며 캡틴 아메리카의 트레이드 마크인 방패가 사라진 대신 권총을 들고 다니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 Republic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한편 이 작품에서 캡틴 아메리카 역을 맡았던 딕 퍼셀은 역할에 비해 너무 뚱뚱하다는 평을 들었는데요, 안타깝게도 촬영이 끝난지 고작 몇주후 유명을 달리하였습니다. 사망원인이 [캡틴 아메리카]의 촬영으로 너무 많은 스트레스를 받아 결국 심장에 무리를 준 것이라고 하니, 이 첫 번째 [캡틴 아메리카]는 이래저래 불운한 작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앞으로 나올 두 개의 극장판 [캡틴 아메리카]에 비하면 약과에 불과했습니다.
- 계속 -
* 본 리뷰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해당 저작권자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 참고 스틸: 캡틴 아메리카, 어벤저스 코믹스 (ⓒ Marvel Comics. All Rights Reserved. ), 캡틴 아메리카 시리얼 무비(ⓒ 1944 Republic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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