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작열전(怪作列傳)

괴작열전(怪作列傳) : 건헤드 - 거대 로봇의 실사화, 그 멀고도 험한 길

페니웨이™ 2008. 2. 4.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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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작열전(怪作列傳)  No.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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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괴작열전 코너에서는 [건담 G-세이비어]와 [철인 28호]라는 두 작품을 통해 거대 로봇이 등장하는 괴작을 소개해 드린 바 있습니다. 사실 만든지 10년도 채 안된 그 두 작품만 보더라도, 로봇이 실체화 되어 화면에 나타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도 어설픈 것인지를 잘 알 수가 있는데요, 실제로 [트랜스포머]가 나오지 않았더라면 이 같은 사실은 크게 달라질 것이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트랜스포머]가 나오기까지 시도되었던 영화인들의 도전과 노력이 없었더라면 이러한 발전도 기대하기 힘들었겠지요.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도 있잖습니까. 그래서 이번과 다음번 괴작열전에서는 특별히 거대로봇을 소재로 다루었던 작품들을 연달아 소개하는 시간을 가져볼까 합니다.

ⓒ Dreamworks LLC. All rights reserved.

거대 로봇의 실사화를 실현한 궁극의 영화, [트랜스포머]


사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특수효과라는 것은 아주 원초적인 수준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특히 로봇과 관련지어서 생각해보면 1987년작 [로보캅]을 떠올리시면 될 겁니다. 아마 이 작품에 나오는 로봇인 ED-209를 기억하는 분들이 많으실 텐데요, 로보캅의 강력한 적수로 등장하는 ED-209는 거대 로봇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크기가 로보캅보다 훨씬 큰 로봇으로 표현됩니다. ED-209의 모습을 보면 프라모델의 움직임을 잘게 나누어 캡쳐한 '스톱모션'방식으로 처리되었다는게 확연히 티가 나지요.


ⓒ Orion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로보캅]에 등장한 로봇, ED-209. 사실상 특수효과는 조악한 수준이다.


이렇게 한계가 분명한 기술력을 가지고 로봇영화를 만든다는게 어디 쉬운일이었겠습니까? 그럼에도 영화게 일각에서는 과감히 출사표를 던지게 되는데요, 그 작품중 하나가 바로 [건헤드]입니다.

사실 [건헤드]는 올드 게이머들에게 있어서는 'PC엔진'이나 '패미콤' 등으로 출시된 게임으로 더 잘 알려져 있으며 더불어 키아 아사미야의 동명 코믹스와 3권의 소설로도 출간된 이른바 '미디어 믹스' 상품입니다. 특히 게임으로 나온 '건헤드'는 나중에 출시된 '레이져 블라스트'나 '아머드 코어' 같은 메카닉 시뮬레이션 게임에 지대한 영향을 주게 되지요.

미디어 믹스 형태로 상품화 된 [건헤드]. 특히 게임분야에서는 적지않은 영향을 미쳤다.


[건헤드]의 탄생은 뜻밖에도 [고지라]와 관련이 깊습니다. 1986년 [고지라]의 차기작을 위해 개최한 시나리오 콘테스트가 열렸는데 이때 고바야시 신이치로와 짐 베논이란 작가가 응모를 하게 됩니다. 이 시나리오는 고지라와 초대형 컴퓨터와의 대결을 컨셉으로 삼고 있었는데, 영화사측에서는 짐 베논의 스크립트 대신 고바야시의 각본을 사용하기로 한 것이지요. 그러나 이 역시 처음과는 많이 바뀐채로 1989년에 영화화 되었고, 그 작품이 바로 고지라 시리즈 18편 [고지라 대 비올란테(Godzilla vs. Biollante)]라는 작품입니다. 여기서 애초에 계획했던 초대형 컴퓨터는 변종 거대 식물로 바뀌어 고지라와 대결을 벌입니다.


ⓒ Toho Co., Ltd. All Rights Reserved.

고지라 18편, [고지라 대 비올란테]. 원래는 고지라와 대형 컴퓨터의 대결이었으나 나중에 거대 식물로 바뀌었다.


한편, 짐 베논의 각본은 하라다 마사토 감독의 눈에 띄게 되는데, 바로 이 시나리오가 [건헤드]의 모태가 됩니다. 이렇게 [건헤드]는 [고지라]의 제작사인 토호(東寶) 사의 전폭적인 지원하에 제작된 거대 로봇영화로서 이같은 시도는 거의 세계 최초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이보다 앞서 제작된 [철갑무적 마리아]란 홍콩영화가 있긴 해도, 이 작품은 거대 로봇의 움직임을 재현하는 일에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또하나의 괴작인지라 논외로 칩시다)

당시 애니메이션 전문잡지인 뉴타입 (1989년 8월호)에서는 아주 이례적으로 실사 영화인 [건헤드]의 스틸을 표지 디자인으로 사용할 만큼 대단한 관심을 불러모았습니다. 어쩌면 메카닉 애니메이션의 왕국인 일본에서 [건헤드]를 성공시킨다면 향후 영화계에서도 이같은 입장을 확고히 다질 수 있을 거라는 야심찬 기대를 품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우선 [건헤드]의 스토리는 이렇습니다. 때는 2005년, 문명의 발달로 인해 한 인공섬에서 무인시스템으로 기계들을 생산하는 기술을 적용한 공장이 설립됩니다. 그러나 이 시스템을 관리하는 '카이론5' (쌍용자동차가 아닙니다 ㅡㅡ;;) 라는 컴퓨터가 섬을 장악하기 시작, 인류와 기계들의 전쟁이 시작되지요. 인류는 '카이론5'를 저지하기 위해 '건헤드'라는 로봇을 투입하지만 역부족이었고, 지구는 그로인해 폐허가 되고 맙니다.

ⓒ Toho Co., Ltd. All Rights Reserved.


시간은 흘러 2038년, 7인조 결사대 무리가 인공섬으로 향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정체불명의 그 무엇인가에 습격을 받아 하나 둘 죽임을 당하고 이제 살아남은 브룩클린(타카시마 마시히로 분)과 레인저 출신인 님(브랜다 바크 분)은 섬에서 발견한 '건헤드'의 잔해를 조립해 '카이론5'에 맞서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CG 기술이 갓난아이 걸음마 수준이었던 당시로서는 위의 시나리오를 영상화 한다는 것이 대단한 도전이었음에 틀림없습니다. 실제로 등장하는 로봇의 움직임은 정말 문자 그대로 아날로그의 느낌이 가득합니다. 로봇도 말이 로봇이지 전투용 전차에 가깝습니다. 게다가 로봇의 활약도 생각처럼 임팩트가 있다거나 그 존재감이 그렇게 크게 와닿지 않지요. 그저 고철더미를 뒤집어 쓴 전차형 로봇이 어줍잖은 레이저나 삐용삐용 쏴대는 장면을 보고 "와~ 대단하다!" 할 만한 관객은 예나 지금이나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 Toho Co., Ltd. All Rights Reserved.


게다가 시대적 배경을 설명하는 것도 불친절하며 심지어 서양인과 일본인으로 구성된 배우들은 저마다 일본어와 영어로 말을 주고받는 아스트랄함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일본어와 영어가 섞여있음에도 어떻게 서로간에 의사소통이 가능한 것인지에 대해서 어떠한 사전 지식도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 역시 이 영화의 심각한 설정 오류라고 볼 수 있지요.

결국 [고지라] 시리즈라는 일련의 특촬물로 노하우를 쌓아온 토호 영화사가 보여준 기술력의 한계는 관객의 기대에 한참 못미치는 것이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거대 로봇의 실사화라는 명제하에 진행되었던 [건헤드]는 로봇도 로봇이지만 내러티브가 너무 엉성하고 연출력도 최악이었지요. 얼마나 쪽팔렸으면 북미 개봉시 감독인 하라다 마사토 대신, '알란 스미시' 라는 가공의 인물을 감독의 크레딧에 올렸겠습니까?

ⓒ Toho Co., Ltd. All Rights Reserved.


의욕적인 시도가 무색할 정도로 실패한 [건헤드]의 전례 덕분에 한동안 '거대 로봇'을 제대로 감상하기까지는 꽤 오랜 세월이 흘러야만 했고, 앞서 언급했듯이 [트랜스포머]를 통해서야 관객들은 비로서 '제대로 된' 실사 로봇을 접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건헤드]의 영화사적 중요성을 인식하는 일부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이 작품이 꽤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제임스 카메론 감독도 [건헤드]를 꽤 좋아한다고 하더군요. 이제는 제법 레어급 작품이 되어 버린 [건헤드]. 안타깝게도 국내에는 DVD발매는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비디오로는 발매되었으니, 열심히 발품을 팔아보시지 않으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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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건헤드]의 실패로 인해 모든 제작자와 감독이 로봇물에 대한 꿈을 접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증거를 다음 괴작열전을 통해 보여드리겠습니다.


* [건헤드]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Toho Co., Ltd. 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 참고 스틸: 트랜스포머(ⓒ Dreamworks LLC. All rights reserved.), 로보캅(ⓒ Orion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고지라 대 비올란테 (ⓒ Toho Co., Ltd.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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