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을 나온 암탉]은 100만부 이상 팔려나간 아동문학가 황선미의 동화를 원작으로 만든 국산 애니메이션입니다. 워낙 완성도가 높은 탓인지 초등학교 5학년 1학기 교과서에도 실릴만큼 널리 알려진 작품이기도 하지요. 인지도가 높은 인기원작을 애니메이션화 한다는건 그만큼 부담도 크게 마련입니다. 텍스트를 벗어난 익숙한 캐릭터들의 낯선 모습은 대개 실망으로 끝날때가 많은게 사실이니까요.
또한 원작 자체가 애니메이션용으로는 다소 모호한 감도 없지 않습니다. 흔히들 '우화'라고 불리는 동화의 내러티브에 비해 어둡고 철학적이며 심지어 우울하기까지 한 원작의 감정선을 그대로 따라간다면 방학철 특수를 맞이한 저연령층의 공략은 확실하게 실패할 확률이 크니까 말입니다. 뭐 긍정적으로 보자면 어른이나 애 할 것 없이 모두가 공감할 수 있게 유치하지도 않으면서 지나치게 어렵지도 않은'전연령층'을 위한 작품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얘기가 되겠습니다.
이 작품의 기본적인 골조는 비교적 원작을 충실히 따라갑니다. 자신의 알을 품길 꿈꾸는 양계장 암탉인 잎싹이 탈출에 성공해 여러가지 일들을 겪으면서 세상의 이치를 배우게 되는 일련의 과정들에 보다 풍부한 에피소드들을 덧입혀 놓았습니다. 작품의 톤이 원작에 비해서는 조금 밝아진 느낌인데, 아무래도 텍스트만으로 접했을때의 느낌과 오감이 동원되는 스크린으로 접하는 느낌의 차이가 존재하다 보니 원작의 어두운 면이 아이들에 미칠 영향을 조금 더 고려한 모양입니다. (물론 흥행성도 고려했겠지요)
ⓒ 명필름/오돌또기. All rights reserved.
삶과 죽음, 정체성의 혼란 등 여전히 당면과제로 남아있는 어려운 주제들을 아이들에게도 부담없이 전달하기 위해 여러모로 신경을 쓴 흔적이 역력합니다. 주인공 입싹의 캐릭터는 무한긍정의 에너지를 발산하는 착하디 착한 캐릭터로 한단계 업그레이드 되어 한층 편안한 마음으로 감정이입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원작에서는 볼 수 없었던 수달 공인중개사 달수씨의 입담 개그가 중간중간 빵빵터지며 객석을 웃음바다로 만들어 놓습니다. 또한 볼거리를 위한 10분여의 경주장면도 새로 첨가해 활극적인 요소를 강화했습니다. 적지않은 각색이 이루어졌음에도 원작에서의 주제의식을 잃지 않은건 참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작화 퀄리티는 기대를 뛰어넘는 완성도를 보여주는데, 이만하면 세계시장에서 승부를 겨뤄도 손색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훌륭합니다. 고질적인 작화붕괴나 채색의 불균형도 발견되지 않는데다, 캐릭터의 모습도 일관성을 유지합니다. 파스텔톤의 배경작화도 무척 마음에 들고 말이죠.
자, 남은건 성우 부분인데, 사실 이 성우는 애니메이션의 완성도를 논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문제입니다. 리미티드 기법을 사용한 일본 애니메이션이 오늘날처럼 발전할 수 있었던 것도 뛰어난 성우들의 연기력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니까요. 한국의 경우는 애니메이션 시장이 워낙 소외된 상태여서인지 궁여지책으로 영화배우나 가수같은 비전문 성우들을 고용해 마케팅에 이용하고 있는데, [마당을 나온 암탉]의 경우도 예외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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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잎싹의 성우를 맡은 문소리를 비롯해, 유승호, 최민식, 박철민 등의 인기배우들이 목소리에 참여하고 있는데, 이부분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호불호가 갈릴것이라 봅니다. 실제 임신중인 몸으로 더빙에 참여한 문소리는 모성애 강한 엄마의 모습 그대로를 잘 투영하고 있지만, 초록이 역을 맡은 유승호의 경우에는 목소리와 캐릭터가 이상할 정도로 거슬립니다. 반면 앞서 언급한 달수 역의 박철민은 발군입니다. 영화에서 익히 보여준 애드립 작렬하는 말빨에 마치 영화배우 박철민을 그대로 애니화시킨듯한 느낌을 주고 있지요. 작품의 완성도와도 직결되는 문제이니만큼 성우와 관련해서는 흥행성과 완성도의 무게추를 잘 가늠해 보고 이제는 전문성우들의 양성을 좀 더 진지하게 고려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쨌든 [마당을 나온 암탉]은 잘 만든 작품입니다. 그냥하는 소리가 아니라, 정말 잘 만들었습니다. 전체적으로 균형이 잘 잡혀있고, 지루하지 않습니다. 교훈적이면서 감동적입니다. 원작에 새로운 설정들을 첨가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부자연스러운 편집들이 눈에 띄긴 합니다만 이 정도야 딱 눈감고 봐줘도 지장이 없습니다. 조금 관대해지고 싶은 작품이랄까요. 올해는 한국 애니메이션이 벌써 두 편이나 극장가에 걸리는 경사를 맞이했는데, 안타깝게도 먼저 선보인 [소중한 날의 꿈]은 개봉관 확보에 실패해 호평과는 무관하게 세간의 관심에서 잊혀지고 말았지요. 부디 [마당을 나온 암탉]은 그 전절을 밟지 않길 바랍니다.
P.S:
1.많은 분들이 나그네의 헤어 스타일에 대해 얘기를 하는데, 다소 부자연스러운 파마머리에 위에서 아래를 내려보는 첫등장 장면을 보는 순간, 저는 올드보이에서의 최민식을 떠올렸습니다.
2.박철민의 연기는 정말 좋았습니다만, 아이들이 보기에는 조금 부담스러운 비속어가 아슬아슬하게 튀어나오더군요.
3.개인적으로는 조조로 관람하거나 아이들이 없는 심야시간대를 이용하시길 권합니다. 저는 꼬꼬마들이 앞뒤로 득실대는 가운데 진정한 헬게이트를 맛보며 관람을 했습니다. ㅠㅠ 뭐 잠시나마 동심의 세계로 돌아간거 같아서 나쁘진 않더군요. 역시 만화영화는 애들이랑 봐야... (읭? 이게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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