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작열전(怪作列傳) No.88
제가 개타고 말장사 하던 시절에는 여성 아이돌 그룹하면 젤 먼저 SES니 핑클이니 하는 가수들이 먼저 떠올랐습니다만 요즘은 '소녀시대'니 '원더걸즈'에 10대도 아닌 삼촌부대가 열광하는 진풍경이 벌어지더군요. 개인적으로 아이돌 가수에 대한 관심도가 요즘은 거의 제로에 가까운지라 그 흔한 가요 프로그램도 시청을 안합니다만 소문에 의하면 요즘은 또 '2NE1'이 대세라는 얘기가 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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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닷없이 괴작열전에 왜 가수 얘길 꺼내냐고 하실 분들.. 어허, 좀만 기둘리시라니까. 다 이유가 있다능. 암튼 2NE1이 라이브에 강한 아이돌 그룹이라는 소문도 있고해서 잠깐 짬을 내서 노래도 좀 듣고 이들 구성원을 좀 살펴봤습니다. 근데, 좀 낯익은 이름이 두 개나 있더군요. 그 중 하나는 생략하고 (그 이유는 극소수만 아실 듯 
가뜩이나 메멘토 증상에 시달리는 요즘 없는 기억력을 짜내니, 이번 괴작열전 코너의 아이디어가 번뜩 떠오르는 것이 아닙니까. TV 시청을 극도로 자제하는 저이지만 꼭 보는 프로그램이 몇 개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인간극장' 인데요. 2004년인가? '내 이름은 산다라 박'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되었던 그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었던 겁니다.
(그럴리는 없겠지만)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잠시 소개하자면 당시 아버지의 사업 실패 등 어려운 환경을 딛고 필리핀에서 연예인을 꿈꾸는 소녀의 이야기로서 한국이 아니라 필리핀을 무대로 연예인의 꿈에 도전한 산다라 박의 이야기가 꽤나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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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산다라 박에 대한 또 하나의 기억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오늘 소개할 작품과 관련된 것입니다. '내 이름은 산다라 박'을 접하고 몇 년이 지난 뒤, 재작년인가.. 필리핀의 어떤 영화를 접하게 되었는데요, 그 작품에 산다라 박이 출연하더라는 말씀입니다. 인간극장에서 보여준 모습이 오버랩 되면서 나름 필리핀 연예계에 잘 자리잡은 것 같아 무척이나 반가웠었지만 한편으로는 이 영화의 괴작스런 포스에 이걸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런지 난감했었지요.
그렇습니다. [슈퍼 노이피]는 의외로 슈퍼히어로물이 많이 제작되는 필리핀 영화계의 괴작입니다. 과거에는 [제임스 배트맨]이니 [배트맨 파이츠 드라큘라] 같은 짝퉁 배트맨 영화를 내놓더니만 그것이 발전해서 오늘날 까지도 이렇게 필리핀 특유의 괴작스런 슈퍼히어로물이 제작되고 있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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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연변이 유전자를 가진 소년,소녀들이 힘을 모아 독재자에 대항한다는 줄거리의 [슈퍼노이피]는 기본적인 설정에서 마블코믹스의 [엑스맨]과 유사성을 띕니다. 쉽게 말해 필리핀식 아이돌 버전의 [엑스맨]이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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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내용은 이러합니다. 때는 서기 2075년. 사악한 독재자 디에고 아자렌의 통치에 반대하는 레지스탕스 리아(제닐린 머카도 분)는 아버지의 지시로 전세를 역전시킬 작전을 수행하려 합니다. 하지만 이들의 아지트가 발각되어 디에고의 부하들이 급습, 리아의 아버지는 가면을 쓴 수수께끼의 여성에게 죽임을 당하고 리아는 가까스로 타임머신을 탄 채 과거로 보내집니다.
이제 배경은 오늘날의 현시점. 평화로운 나날이 계속되는 시대입니다. 두 동생을 돌보며 가장 노릇을 하고 있는 로렌조는 어느날 자신의 집 앞마당에 미처 알지 못하는 강력한 능력으로 괴한들을 물리칩니다. 이제 리아는 자초지종을 설명하면서 로렌조를 비롯한 그의 두 동생, 그리고 친구들이 미래의 독재자 디에고에 대항한 최초의 영웅들이라는 믿지 못할 사실을 알려주는데요, 이들이 슈퍼히어로로서 각성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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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서 모이게 된 로렌조와 그의 친구들은 서서히 자신의 부모들로부터 물려받은 초능력에 눈을 뜨게 되는데, 이보다 한발 앞선 디에고가 그들의 부모를 납치해 버립니다. 이제 '슈퍼 노이피'로 각성한 이들은 부모님을 구출하고 더 나아가 독재자인 디에고를 물리치기 위해 힘을 모으게 된다는 얘기입니다.
시놉시스를 보시면 알겠지만 이 작품은 [터미네이터]스런 설정에 엑스맨을 버무린 틴에이저 무비입니다. 전체적인 내용만을 적어놓으니 좀 유치하고 엉성하긴 해도, 플롯 자체는 그럭저럭 봐줄만 합니다. 주인공들의 부모와 디에고가 대립관계에 있게 된 이유라든지, '복수'라는 테마에 대한 제법 진지한 조명, 그리고 특히 마지막에는 깜짝 반전도 준비해 놓고 있는데 리아의 아버지를 죽인 가면의 여성은 누구인지에 대한 흥미로운 반전이 자리잡고 있지요.
그러나 사실 SF 판타지인 영화의 장르를 고려할 때 [슈퍼 노이피]의 특수효과는 대단히 조악한 수준입니다. 이 영화가 제작된 시기가 2006년이니 [엑스맨]이 나온지 6년이나 지난 시점임에도 [슈퍼 노이피]의 CG는 비교불허의 허접 그 자체입니다. 또한 제작비를 절감키 위해 사용한 꼼수가 여기저기서 눈에 띄는데 일례로 다음의 장면을 보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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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들의 능력은 [엑스맨]처럼 제 각각인데, 가령 제다이 처럼 물체를 마음대로 이동시키는 염동력이라든지, 시스족의 애용 스킬인 라이트닝 포스 같이 [스타워즈]에서 따온 것이 역력한 기술이 있는가 하면, 말 그대로 짐승으로 변해 버리는 녀석도 있습니다. 아마 이 작품이 헐리우드 영화라면 이 짐승으로 변하는 녀석의 시커먼 피부는 CG로 색을 입혔을 테지만 추측컨데 여기서는 싸인펜 같은걸로 칠했을거라는 데 100원 걸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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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작품은 필리핀의 인기 청춘 스타를 총동원한 나름대로의 야심작입니다. 특히 산다라 박은 이 작품에서 여의봉 같은 지팡이를 통해 불과 얼음을 다루는 뭐 그런 RPG 게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위저드 계통의 캐릭터로 등장합니다. 영화속에서도 한국인인 것으로 설정되어 있고, 무엇보다 분위기 메이커로서 상당히 방정맞은 캐릭터를 보여줍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DC 겔에서는 이 작품에서 산다라 박이 방정맞게 춤추는 장면만을 편집해 만든 움짤이 꽤나 인기를 끌었다고 하더군요. 그럼에도 연기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꽤나 보기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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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지 덧붙이자면 원래 산다라 박이 맡은 '미치'라는 캐릭터는 원래 필리핀의 배우 겸 모델이자 유명한 아이돌 스타인 리안 라모스(Rhian Ramos)가 맡을 예정이었으나 스케줄 때문에 물러나는 바람에 산다라 박이 캐스팅 되었습니다. [슈퍼 노이피]에서 가장 비중있는 배역을 맡은 제닐린 머카도 역시 필리핀에서는 인기 정상을 달리고 있는 배우 겸 가수로서 이번 작품을 통해 처음으로 많은 분량의 액션씬을 연기해야 했는데요, 감독인 쿼크 해나레스는 샤를리즈 테론이 주연을 맡은 [이온 플럭스]를 보여주면서 연기에 참고하라고 독려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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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인기 아이돌 스타를 총동원해 만든 [슈퍼 노이피]는 아직은 설익은 필리핀 슈퍼히어로물의 한계를 여지없이 드러내는 작품입니다만 필리핀 연예계에서 활동할 당시의 산다라 박을 볼 수 있다는 면에서 꽤나 의미있는 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이제는 한국의 연예계에서 성공적으로 자리잡은 그녀로서 본인은 이 작품을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이 영화를 통해 지금의 자리까지 노력해 온 그녀의 모습을 기억할 수 있다는 점이 저한테 만큼은 꽤나 깊은 인상을 남기는군요. 이제 한국에서도 가수 뿐만 아니라 연기자로서의 변신을 기대해 봅니다.
* [슈퍼 노이피]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Regal Entertainment Inc. All rights reserved. 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 참고: 인간극장 산다라 박 편(ⓒ KBS2 TV. All Rights Reserved.), 2NE1 앨범표지(ⓒ YG Entertainment. All Rights Reserved.),제임스 배트맨(ⓒ Sampaguita Pictures/ Kabayan Central Net Works.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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