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다보면 1980년대 말 ~1990년대 초의 영화들이 많이 생각납니다. 당시에는 UIP직배사의 등장으로 인해 헐리웃 영화들이 본격적으로 국내에 유입되기 시작할 때였고, 이에 더해 한창 황금기를 맞이하던 홍콩영화의 범람으로 인해 극장가는 그 어느때보다도 풍성한 작품들이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또한 VTR의 보급도 한 몫을 했지요. 많은 가정에서 저렴한 가격에 영화를 접할 수 있었으니까요. 하긴 요즘은 인터넷에서 거의 공짜로 다운받아 보는 세상이 되었습니다만, 그 시절 한푼 두푼 모아 정당한 가격을 지불하고 감상한 영화들이 더욱 오래토록 기억에 남는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정품을 이용합시다!)
암튼 오늘은 그 때 당시에 아주 재밌게 보았던 괴작 한편을 소개할까 합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1980년대 말 무렵은 홍콩영화의 황금기였습니다. [영웅본색], [첩혈쌍웅]을 비롯해서 각종 듣보잡 영화들이 동네 3류극장은 물론 개봉관들을 싹쓸이하는 진풍경을 낳기도 했지요.
물론 주류를 이루었던건 홍콩 느와르라는 장르였지만, 그 밖에도 꽤 다양한 장르의 홍콩영화가 선을 보였습니다. [장단각지연]같은 코믹물도 있었고, [천녀유혼]같은 환타지물, [가을날의 동화]처럼 멜로물도 선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 당시 이런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 속에서 유독 특이한 작품이 하나 있었는데요, 그것이 오늘 소개할 [철갑무적 마리아]라는 작품입니다.
[철갑무적 마리아]는 1988년작으로서 당시 헐리웃에서 엄청난 반향을 일으킨 [로보캅]의 성공에 고무되어 만들어진 일종의 아류작 같은 영화입니다. 국내 개봉당시에도 '홍콩의 미녀 로보캅'이라는 선전문구를 민망할 정도로 강조해서 대대적인 홍보를 한 것이 인상적이었지요. 이처럼 노골적인 [로보캅]의 설정차용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당시로선 꽤나 흥미진진한 작품이었습니다.
먼저 간단한 스토리 라인을 살펴봅시다. '영웅당'이라는 수수께끼의 범죄조직 때문에 골머리를 앓던 경찰들이 사건 현장에 총출동했다가 '선동 1호'라는 거대 로봇을 맞닥드려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맙니다. 범인들은 '선동 1호'를 이용해 도시 전체를 장악하려는 야욕에 불타 오르지요. 이에 더해 보스의 애인이자 부두목인 '마리아'를 복제해 만든 궁극의 로봇 '선동 2호'까지 완성시켜 세력 확장에 박차를 가합니다.
한편 경찰에서 무기개발을 담당하는 일명 '배추머리'라는 과학자가 술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취객인 '위스키'라는 사람을 구해주게 됩니다. 이 위스키는 사실 '영웅당'의 조직원인데 마리아가 보스에게 맘을 빼앗긴 것에 상처를 받아 조직에서 나왔다가 배추머리의 도움을 받게 된 겁니다. 이 사실을 입수한 '영웅당'은 위스키가 조직을 배신하고 경찰에게 내부정보를 누설하는 것으로 판단, '선동 2호'를 파견해 배추머리와 위스키를 제거하려 합니다. 하지만 '선동 2호'는 뜻하지 않은 고장으로 임무달성에 실패하게 되지요.
이렇게 입수한 '선동 2호'는 배추머리에 의해 재 프로그래밍되어 이제 배추머리와 위스키를 위해 싸우게 됩니다. 위스키 제거에 실패한 '영웅당'에서는 마리아와 '선동 1호'를 직접 파견하게 되고 이제 위스키와 배추머리 콤비는 이 악당들의 기습에 맞서기 위해 '선동 2호'를 가동하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철갑무적 마리아]에서는 무척 반가운 얼굴들이 보이는데요, 먼저 [첩혈쌍웅]의 히로인으로 당시 필자가 왕조현이나 종초홍 보다도 좋아했던 엽청문이 마리아와 선동 2호의 1인2역을 담당하는 타이틀 롤을 맡았습니다. 그리고 비중있는 조연으로서는 최근 홍콩 영화의 거물급 배우로 자리잡은 양조위가 어리버리한 신문사 기자역할로 등장하고 있지요.
하지만 더 인상적인건 스토리 라인에 주로 등장하는 위스키와 배추머리 콤비인데요, 여기서 위스키 역을 맡은 사람이 바로 서극 감독입니다. 여기서 그는 포복절도할 슬랩스틱 코미디를 선보여 관객들을 즐겁게 해주는 일등공신이 되었습니다. 배추머리 역의 잠건훈은 [쾌찬차], [복성고조]등 주로 성룡영화에서 조연으로 등장하는 배우이지만 제작자로 활동하는 사람이기도 한데, 여기서는 서극과 함께 명콤비를 이루어 열연하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이 작품은 서극이 제작 총지휘를 맡아 작품 전반을 총괄했으며, 무술감독은 정소동이 맡아 특유의 현란한 와이어 액션을 선보입니다. 감독인 종지문은 촬영감독 출신이지만 연출력이 꽤 남다르다고 할 수 있는데요, 차기작으로 선보인 임청하 주연의 [경천대모살]의 경우 홍콩영화로는 드물게 스릴러적 완성도를 갖춘 수작으로 평가받기도 했습니다. 다만 이후로는 계속 촬영감독으로 전념했더군요. (그 유명한 [황비홍]의 촬영도 이분 솜씨입니다)
[철갑무적 마리아]의 특징 중 한가지는 바로 로봇을 등장시킨다는 것입니다. '선동 1호'의 디자인은 많은 분들이 지적하시는데로 [기동전사 건담]의 '자쿠'와 아주 흡사한 외형을 갖추고 있지요. 하지만 [로보캅]에서 ED-209의 움직임에 스톱모션을 사용한 것과는 달리 이 작품에서는 '선동 1호'의 움직임을 거의 실사 그대로 표현하였는데요, 사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엉성하기 이를데 없고, 누가봐도 사람이 탈바가지 쓰고 들어가 움직이는게 표가 나지만 당시로서는 역동적인 모션 때문인지 꽤나 실감나게 느껴졌던 기억이 납니다.
게다가 하늘을 날으는 주인공인 '선동 2호'의 경우, 훗날 [로보캅3]에 가서야 '날아다니는 로보캅'이 등장했던걸 감안하면 상당히 시대를 앞서가는 센스를 발휘한 셈입니다.^^ 뭐 주먹도 발사되고 미사일도 날리는 건 좀 오버다 싶지만 말이지요 ^^
이 작품의 장르는 꽤나 복잡합니다. SF에 보스와 마리아의 애절한(?) 사랑, 그리고 코미디에 액션까지 가미되어 풍부한 장르적 재미를 선사하고 있지요. 물론 기본적으로 [철갑무적 마리아]는 코미디입니다. [로보캅]이 암울한 디스토피아적 미래상을 보여준 반면 [철갑무적 마리아]는 유쾌하고 긍정적이며 장난기가 가득한 영화로서 관객들을 웃음짓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어쨌거나 1988년이라는 시기에 일본의 [건헤드]와 더불어 또 한편의 실사 로봇물이 홍콩에서 나왔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사실입니다. 비록 이 작품은 '어떻게 하면 로봇을 멋있고 사실적으로 표현할까?' 보다는 '어떻게 하면 관객들을 웃길 수 있을까?"에 관심을 더 가진 듯 합니다만 결과적으로 [철갑무적 마리아]쪽이 더 기억에 남고 재밌었다는 사실만큼은 부인할 수 없겠군요. ^^
P.S: 이 작품에서는 홍콩영화 특유의 퍼런 색조가 두드러집니다. 같은 푸른 화면이라도 마이클 만 감독의 그것에 비하면 왜이리 싼티나고 촌스럽게 느껴지는 것인지가 참 미스테리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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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나는군요. 우연히 후배가 가지고 있어서 몇 번이나 시도했지만 끝까지 보기 전에 이미 유체이탈...결국 앤딩을 몰라요 ㅠ,.ㅠ
요즘은 구하기 힘든 작품 중 하나죠. 홍콩영화 특유의 어수선함이 있긴해도 꽤 봐줄만 해요~ ^^
홍콩영화 붐을 타고 최가박당의 서극감독이라는 타이틀에 홍콩판 로보캅이라는 아이들용 프리미엄이 혼합되어서 빌려본 기억이 납니다. 내용은 기억이 안나고 그냥 기억에 남는 장면이라면 팔에서 미사일 날아간다.. 이정도? ^^
이게 아마 개봉당시에는 연소자 관람불가 였던가.. 일겁니다.
저는 비디오로 봤었는데, 정작 소개는 월간 우뢰매 같은 소년지에서 해놓고 개봉시 등급이 높아서 못봤던 걸로 기억되네요 ㅠㅠ
이것도 엄청난 목버스터 무비로군요...;;
'어사일럼'의 목버스터와는 달리 홍콩의 일류스탭들이 참여했다는게 좀 다른 점이랄까요^^ 하여간 괴작의 세계는 흥미진진합니다~
동네 비디오가게에서 알바가 관람중인걸 지나가다가 본적이 있었습니다. ㅋㅋㅋ
이것도 참 아스트랄.
그런데 꽤나 출연진들이 화려했군요.
[첩혈쌍웅]의 엽청문이 이미지 변신을 한게 충격이었죠. 악역에다가 코믹하게 망가지는 모습까지.. ㅡㅡ;;
중국어로 읽어도 마리아, 한국 발음으로 읽어도 마리아인가보네요. ^^ 양조위 사진이 참 인상적입니다. 지금은 가만히 있어도 뭔가 시크한 허무함이 뚝뚝 떨어지는 얼굴인데, 정말 환하고 착하게 웃고 있네요. ㅋㅋ
바보스럽기까지 하죠 ^^;; 솔직히 있으나 없으나한 캐릭터인데, 나중에는 화장실에 빠져 X범벅이 되는 굴욕적인 모습도 보여줍니다 ㅡㅡ;;;
제목보고 '이건 또 웬 괴작이야~'했는데 스탭 보고 놀랐습니다.
내용도 '그럭저럭 볼만 한' 괴작이군요.
첩혈쌍웅에서 마른 하늘의 날벼락 보다 더 어이없게도
권총 화염(?)에 눈 먼 여자가 저 배우였습니까.
어렸을 때 그 영화 좋아해서 여러 번 봤는데 여자 배우는 잘 몰랐네요. --a
그럭저럭 볼만하긴 하죠^^;; 당시 홍콩영화의 과장된 표현을 감안한다면 말이죠. 후후..
하필, 엽청문을 이 영화로 처음 만났습니다.
그 뒤로 은색 메탈 이미지를 잊을 수 없어 <첩혈쌍웅>를 보며 꽤나 괴로웠습니다. ^^
헉.. 하필 이 영화로 엽청문을 만나시다니 ㅋㅋ
이야... 초등학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동네 영화관집 아들과 짝꿍이었던고로 영화관까지가서 봤던 이 영화에. 양조위가 나왔을 줄이야. 이거 드문드문 기억나요.
ㅎㅎ 역시 라이님~ 어렸을때부터 든든한 원군을 두셨구만요^^
엽청문이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가 괴작이라는 것을 인정 못하겠습니다 ^^;;;
엽청문 팬이셨군요. 한때는 그 청순한 미모에 사로잡혔었는데.. 요즘은 어디서 뭐하시나.. ㅠㅠ
아하, 옛날 생각납니다. 그 당시 '참 깬다'라고 생각하면서 보았던 기억이... ㅋㅋㅋ
sandman님도 보셨나요? ^^ 은근히 많은 분들이 보셨군요 ㅎㅎ
흐흐흐... 철갑무적이란 제목 보고...
웬 로보캅 아류...? 하면서 안 봤던 기억이 납니다.
역시 전 괴작과는 체질이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
저는 뭐 괴작체질인가요.. ㅡㅡ;;
ㅎㅎㅎ 그렇게 되는군요.
그것보단, 전 괴작 두드러기 체질 정도로 생각해주세요 ^^;;;
양조위와 서극감독의 모습을 보니 웃음이 나오네요. 대체 이런 영화들은 어떻게 골라내시는 거에요? 참 대단하심.+_+b
영화볼 시간에 공부를 한글자라도 더했음 서울대를 가지 않았을까요.. ㅠㅠ
괴작이라고 하셔도 제게는 추억의 영화 중 하나입니다. 서극 감독은 저 당시만 해도 자신의 영화 속에서는 항상 등장인물 중 하나로 꼭 출연하고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모든이의 추억속에 자리잡고 있는 괴작이지요^^ 저때만해도 요즘 영화들에서는 볼 수 없는 순진무구함이 느껴집니다~
페니웨이님 괴작열전에는 왠지 괴작에 대한 애정이 담뿍합니다 ^^
그런데 당췌 이런 괴작들은 어디서 구하시는겁니까???
(쓰고보니 윗 분이 이미 질문을 드렸군요 하하.)
괴작들이야 국내에 출시된 DVD도 많고요, 또 해외사이트라도 시기만 잘 선택하면 아주 저렴하게 구입하실수 있습니다. 간혹 국내 영화중 오래된 작품은 청계전 비디오상가를 뒤지곤 했지요 (요즘은 철거러쉬로 힘들어졌습니다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