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작열전(怪作列傳)

괴작열전(怪作列傳) : 카우보이 & 에이리언 - 블록버스터에서 풍기는 괴작의 향기

페니웨이™ 2011. 8. 1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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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작열전(怪作列傳) No.117









이제는 한물간 장르가 되어버렸지만 한때 헐리우드의 메인스트림으로서 서부극이 이룬 성과는 무시할 수 없습니다. 척박한 환경에서 개척정신을 모토로 살아온 미국인들의 거친 내면을 투영하기에는 웨스턴만큼 적합한 장르가 없었으니까요. 비록 존 포드의 작품세계로 인해 심겨진 백인 우월주의의 불편함이 서부극의 전반적인 정서를 지배하는 건 사실입니다만 그 와중에서도 [솔저 블루]나 [작은 거인], [수색자]와 같은 수정주의 웨스턴이나 세르지오 레오네와 클린트 이스트우드로 대표되는 마카로니 웨스턴, 그리고 좌파적 정치색을 반영한 서부극 장르인 자파타 웨스턴 (Zapata Western) 등 여러가지 변종 장르가 시도되어 왔다는 것은 주목할만 합니다.

이러한 서부극 장르의 거대한 흐름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서도 또다른 작은 변화와 시도들이 있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요, 특히 SF와 서부극의 이종교배라는 독특한 시도가 꽤 오래전부터 있었다는 사실은 제법 흥미롭습니다. 일례로 1935년에 만들어진 시리얼 무비 [팬텀 엠파이어]는 서부극에 SF 설정을 첨가한 최초의 영화입니다. 다분히 뮤지컬적인 요소가 특징을 이룬 이 작품은 비행기, 광선총, 로봇과 같은 SF영화의 요소들을 결합해 독특한 변종 서부극의 면모를 보여준 영화였지요. 이 작품은 1940년작 [라디오 목장 혹은 강철얼굴 사나이 Radio Ranch or Men with Steel Faces]라는 제목의 극장판으로 재편집되어 개봉되기도 합니다.

ⓒ Mascot Pictures/Reel Media International. All rights reserved.


또한 1956년에는 윌리스 오브라이언의 'The Valley of the Mist'라는 각본에 영향을 받은 [비스트 오브 할로우 마운틴 The Beast of Hollow Mountain]이 공개됩니다. 이 영화는 멕시코에 사는 한 미국인 카우보이가 잃어버린 황소를 찾으러 돌아다니다가 공룡과 맞닥드리게 된다는 내용의 SF 서부극이었습니다. 'The Valley of the Mist'는 훗날 특수효과의 거장 레이 해리하우젠이 참여한 [공룡지대 The Valley of Gwangi]로 재탄생하게 되었지요.

ⓒ Warner Brothers/Seven Arts, Morningside Productions. All rights reserved.


이 밖에도 시간여행 컨셉을 서부극에 접목시킨 [타임 라이더 Timerider: The Adventure of Lyle Swann], [백 투 더 퓨처 3] 같은 영화들 역시 SF 서부극이라는 실험적 형태의 장르영화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994년작 [어블리비언]에서는 서기 3031년을 시간적 배경으로 카우보이와 애꾸눈 외계인이 대결한다는 파격적인 설정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 이후에도 거대 로봇이 등장하는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 같은 작품이 명맥을 이어 오는 등 SF영화와 서부극의 만남이라는 퓨전장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 Full Moon Entertainment. All rights reserved.



이제 소개할 [카우보이 & 에이리언]은 제목에서 모든 걸 말해주듯 SF 서부극을 노골적으로 표방하는 작품이지만 그 제목에서 풍겨져 나오는 스멜은 뭐랄까... 굉장히 생뚱맞다고 할 수 있지요. 설정의 황당함으로 보자면 그간 만들어진 SF 서부극 중에서도 거의 최고 수준으로 막나가는 듯한 느낌입니다. 사실 이 작품은 플래티넘 코믹스에서 발간된 동명의 그래픽 노블을 영화로 만들었습니다. 영화적 설정이 아닌 만화적 설정이라는 뜻이지요. 그렇지만 오히려 이러한 설정의 기괴함이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 Platinum Comics. All rights reserved.


영화가 시작되면 한 남자가 애리조나의 사막 한가운데서 깨어납니다. 자신이 누군지, 왜 이곳에 쓰러져 있는지 기억을 못하는 그는 자신의 왼팔에 이상한 족쇄같은 물건이 채워져 있음을 알지만 이것을 벗겨내지는 못합니다. 이윽고 마을에 다다른 남자는 자신이 현상금 붙은 범죄자임을 알게 되고, 마을의 지배자인 달라하이드의 패거리와 일촉즉발의 상황에 놓이게 되지만 갑자기 나타난 거대한 비행선의 공격을 받아 사람들이 끌려가고, 마을은 쑥대밭이 되고 맙니다. 이 과정에서 남자는 자신의 팔에 부착된 팔찌가 실은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최첨단 무기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오호라~ 이거 제법 쓸만한 이야기인걸?

이처럼 [카우보이 & 에이리언]의 설정은 흥미진진합니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남자가 자신의 정체성과 잃어버린 과거를 찾아나선다는 줄거리에 서부극의 흔한 컨셉인 보안관, 현상범, 무법자, 인디언, 총잡이 같은 익숙한 소재들이 마구잡이로 버무려져 있습니다. 여기에 외계인 납치설을 차용해 서부영화 특유의 추적극을 재현합니다. 개성있는 두 장르물의 기이한 결합이다보니 여기에서 얻어지는 플러스 알파가 꽤 많이 작용하는 셈입니다. 게다가 '제임스 본드' 다니엘 크레이그와 '인디아나 존스' 해리슨 포드라는 대배우들의 조합 자체도 무척 매력적이지요.

ⓒ Universal Pictures/DreamWorks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그러나 실상 이 모든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카우보이 & 에이리언]은 기막힐 정도로 심심한 영화입니다. 예를들어 황무지와 같았던 서부개척시대에 최첨단 테크놀러지에 신체적으로도 압도적인 외계인을 만난다면 현격한 레벨차이로 인해 밀려오는 절망감이 어느 정도일까요? (개인적으로 '절망감'을 가장 잘 표현한 작품은 [에반게리온: 파] 였다고 보는데, 이 작품에서 신지와 제10사도와의 격전은 절망감만으로도 극의 서스펜스를 최고조로 올릴 수 있다는 걸 느끼게 해줬죠) 이같은 요소만 잘 살려도 반전의 쾌감이나 서스펜스의 밀도를 손쉽게 높일 수 있었을텐데, 이 영화는 그냥 전형적인 고무인형 괴물과 인간의 대결구도로 만들어 버립니다.

외계인들의 모습에선 독창성이라곤 눈뜨고 찾아볼 수 없고, 액션연출과 캐릭터 구축에 있어서도 진부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솔직히 이만큼 괴팍한 소재와 설정들을 가지고도 이런 미지근한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울 따름이에요. 존재 가치를 느끼기 힘든 해리슨 포드 외에도 올리비아 와일드, 샘 록웰, 폴 다노, 클랜시 브라운 같은 값비싼 배우들이 모두 소모품처럼 쓰이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는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단 말이죠. 그나마 유일하게 돋보이는 건 다니엘 크레이그인데, 그나마도 제임스 본드를 통해 얻어맞고 구르는데 도가 튼 시리어스한 순정 마초의 모습이기 때문에 가능한 거지 딱히 캐릭터에 공을 들여서가 아닙니다.

ⓒ Universal Pictures/DreamWorks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존 파브루 감독의 연출이 어느 정도인가하면, 매력이 철철 넘치는 선남선녀, 다니엘 크레이그와 올리비아 와일드가 한바탕 난리를 겪고 물에 흠뻑 젖은채 서로 므흣한 눈길을 주고 받으며 뭔가를 하려는 순간, 우왁~하고 괴물이 튀어 나오는 삼류 호러물 같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때깔나는 세트와 후덜덜한 배우들이 즐비한 헐리우드 메이저 영화가 B급 언저리에 놓인 영화 속에서 '진지하게' 폼잡는 걸 보면 진정한 메이저급 괴작이라는게 이런 거구나 하는 걸 느끼게 된달까요.

결국 [카우보이 & 에이리언]은 좋은 의미의 '괴작'이 될 수도 있었던 기회를 놓친 작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강도가 쎈 실험작이 될것이라는 기대치와는 달리 너무나도 평범하고 밋밋한 작품이어서 [스카이라인]같이 마구 비웃어 줄만한 요소들도 부족합니다. 한편으로 괴작매니아들에게 평균적인 아스트랄한 재미를 선사하는 작품이 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소재만 창의적이었음을 부인할 순 없겠네요. 조금 안타깝습니다.

 

P.S:

1.비슷한 소재로 고대 바이킹 시대에 출현한 외계인의 이야기를 다룬 [아웃랜더]는 오히려 시대적인 설정면에서 판타지의 느낌에 가깝기 때문에 덜 어색한 면이 있습니다. 그만큼 [카우보이 & 에이리언]의 막나가는 설정이 얼마나 희소성 높은 것인지를 알 수 있지요.

2.배우 못지않게 스탭들의 네임벨류도 엄청납니다. 스티븐 스필버그, 로베르토 오씨 & 알렉스 커츠만, 론 하워드 등등... 괴작의 규모로만 따지면 [인천] 이후 간만에 대어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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