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작열전(怪作列傳)

괴작열전(怪作列傳) : 홀리데이 킬러 - 죠스의 아성에 도전한 해양 공포물

페니웨이™ 2011. 3. 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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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작열전(怪作列傳) No.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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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스필버그의 걸작 [죠스]가 뛰어난 이유는 비단 그 영화가 끌어올린 흥행수익의 '블록버스터'적인 측면 뿐만은 아닙니다. [죠스]는 킹콩이나 고지라 같은 비현실적인 괴수들이 등장하는 크리처 장르에서 상어라는 실제 생명체를 공포의 대상으로 부각시킴으로서 관객들에게 현실적인 공포감을 선사하는데 성공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후 졸속으로 쏟아져나온 아류작들은 하나같이 [죠스]를 벤치마킹하기 시작했고 [피라냐], [올카] 같은 해양공포물들이 대거 양산되기 시작했지요.

하지만 [죠스]의 전세계적인 돌풍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관객들은 이 기념비적인 작품에 대한 소식을 미디어를 통해 간간히 접했을 뿐 정작 [죠스]를 접하기 까지는 무려 3년의 세월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당시로서는 한국과 미국의 동시개봉은 꿈도 못꿨던 시절인데다가 [죠스]의 로열티가 너무 비싼 나머지 수입사에서도 선뜻 들여올 엄두가 나지 못했던 것이죠. 따라서 국내에는 [죠스]보다도 [죠스]의 아류작을 먼저 관람하게되는 기현상이 벌어지게 되었는데, 여기에 편승한 작품 중에는 지난번 괴작열전에서 소개한 바 있는 한국-태국 합작영화 [악어의 공포](바로가기)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번에 소개할 작품인 [홀리데이 킬러] 역시 이같은 시류에 동참해 틈새시장을 노린 유사 [죠스]영화의 일종으로서 이 작품에서는 무려 '문어'가 그 주인공이 되겠습니다. 미국과 이탈리아가 합작한 이 작품의 외피만을 보면 이게 과연 아류작인가 싶을 정도로 만만찮은 캐스팅을 선보입니다. 거장 존 휴스턴 감독을 비롯해 명배우 헨리 폰다, 그리고 [포세이돈 어드벤처]로 잘 알려진 셸리 윈터스 (이 아줌마가 [제시카의 추리극장]에 나오는 안젤라 란스베리랑 약간 닮아서인지 많은 분들이 착각을 하더군요. 분명히 다른 인물입니다), [와일드 번치]의 보 홉킨스 등 꽤나 지명도 높은 배우들이 대거 등장하는 작품이거든요.

ⓒ American International Pictures (AIP)/Esse Ci Cinematografica. All Right Reserved.


게다가 문어가 괴수로 등장하는 설정은 비록 아류작이긴 합니다만 사람들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한 소재이기도 했습니다. 사실인지는 몰라도 당시 신문보도(1977.08.04. 동아일보)에 따르면 미국의 제작사측에서는 '우리의 명예와 재산과 생명을 걸고 [죠스]에 도전한다'고 말하면서 '상어도 괴물이었지만 우리의 주인공인 문어는 한층 더 기괴하고 극적인 장면을 선사할 것'이라며 자신만만해 했다고 합니다. 다른 신문(1977.08.02. 경향신문)에 의하면 이 영화에 사용된 문어는 말라섬에서 고무와 플라스틱을 이용해 제작되었는데, 촉수의 크기만도 150m나 된다는 보도자료를 발표하기도 했었죠. (150m라니... 상상이 되십니까?)

1977.08.04. 동아일보


과연 [죠스]에 도전하는 이 야심만만한 해양괴수물 [홀리데이 킬러]는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있을까요?

영화는 미국의 해변 휴양지인 오션비치에서 시작됩니다. 엄마를 따라 해변에 나왔던 생후 10개월의 갓난아이가 돌연 사라지고, 배에서 작업을 하던 남자가 심하게 훼손된 사체로 발견되는 등 갑자기 이 일대는 괴상한 실종사건으로 긴장감에 휩싸입니다. 특이한 점은 이들 피해자들이 물 속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물밖에 있다가 변을 당했다는 것.

터너 박사(존 휴스턴 분)는 이 사건이 항구에서 지하터널공사를 하고 있는 Trojan사의 산업폐기물이 생태계의 모종의 영향을 끼친 것이 아닌가 의심해 사장인 화이트해드(헨리 폰다 분)에게 전화를 걸어 진상을 요구하지만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합니다. 사람들의 실종은 계속되고 곧이어 대대적인 요트 경주대회가 벌어지게 되는데, 이 대회에서 엄청난 희생자가 발생하게 됩니다. 그 중에는 터너 박사의 조카인 토미도 포함되어 있었지요.

ⓒ American International Pictures (AIP)/Esse Ci Cinematografica. All Right Reserved.


한편 이 사건의 진상은 Trojan사의 작업도중 사용한 비정규 라디오 주파수가 심해에서 잠자던 거대 문어의 화를 돋구어 인간을 공격하게 만든 것이었는데요, 터너 박사에게 사건을 조사하도록 요청받은 범고래 조련사 윌(보 홉킨스 분)은 자신의 아내가 괴물체에 의해 살해당하자, 마침내 복수의 여정에 오르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보시면 알겠지만 [홀리데이 킬러]의 플롯은 전형적인 [죠스] 아류영화의 기조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정체불명의 괴물 습격- 희생자 발생 - 의문을 제기하는 민간인 등장 - 이를 묵살하는 공무원 - 더 큰 희생자 발생 - 본격적인 소탕작전의 시작 등 거의 모든 전개과정이 [죠스]와 매우 흡사함을 볼 수 있지요. 문어의 관점에서 사람의 모습을 관찰하는 테크닉도 [죠스]에서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 American International Pictures (AIP)/Esse Ci Cinematografica. All Right Reserved.


어떤면에서 보면 [홀리데이 킬러]에는 몇몇 쓸 만한 장면들이 등장합니다. 가령 최초의 희생자가 사체로 발견될 때의 깜짝씬은 [죠스]에서 파선된 보트의 밑바닥에서 시체의 머리가 발견되는 장면만큼이나 심장을 철렁하게 만듭니다. 또한 Trojan사의 작업기사들이 탄 수중탐사기구를 문어가 습격할 때의 씨퀀스도 제법 공포스런 분위기를 잘 연출하고 있지요.

하지만 전반적으로 봤을 때 [홀리데이 킬러]는 해양 공포물의 장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영화입니다. 특히나 문어는 그 생김새부터가 그닥 공포스럽지 아니한데, 영화에 등장하는 문어는 대부분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공수한 초고추장 횟감용 문어를 클로즈업해서 찍어놓은 꼴이라 그닥 무섭지도 않을뿐더러 (150m는 개뿔) 몇몇 특수효과를 이용한 장면 역시 너무 엉성해서 당시 기준으로 보기에도 크리처물 특유의 경이적인 공포감을 선사하지 못합니다.

ⓒ American International Pictures (AIP)/Esse Ci Cinematografica. All Right Reserved.


기라성같은 배우들의 등장도 영화에는 큰 도움이 되질 않습니다. 셸리 윈터스나 헨리 폰다는 거의 까메오 수준이고, 존 휴스턴과 보 홉킨스가 영화의 전,후반을 각각 책임지는 주연급으로 등장합니다만 캐릭터 자체가 전형적인 스테레오 타입이라 개성이 거의 느껴지지 않지요. 그런 의미에서 [죠스]의 해양학자나 경찰서장 브로디, 상어잡이 선장 퀸트 등 개성만점의 캐릭터를 드라마에 잘 녹여낸 스필버그의 재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진짜 안습은 결말이에요. (스포일러 있으니 읽기를 원치 않으시면 스킵하세요) 다른 [죠스] 아류작들이 스토리야 얼마나 막장스럽던 간에 끝판에는 주인공의 힘으로 괴수를 처치하는 반면, 이 작품은 실제적으로 사람의 활약이 거의 없다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막판에 괴물 문어를 처치하는건 주인공인 보 홉킨스가 아니라 그가 데리고 있던 범고래 두 마리가 주인에게 보은한답시고 달려와 문어를 잘근잘근 씹어 해치웁니다. 헐...

ⓒ American International Pictures (AIP)/Esse Ci Cinematografica. All Right Reserved.


결국 이렇게 좋은 제반조건을 가지고도 영화를 멍청하기 짝이 없게 만든 책임은 감독인 오비디오 G. 아소니티스에게 있다고 봐야 합니다. 이 양반이 누구냐면 바로 [피라냐]의 속편에 대한 판권을 로저 코먼에게 사들여 제임스 카메론을 기용해 [피라냐 2]라는 희대의 괴작을 내놓았던 바로 그 인물이거든요. 그 실력이 어디 가겠어요?

차라리 문어가 나오는 괴물 영화를 보고 싶으시다면 래리 해리하우젠이 특수효과를 담당한 1955년 작 [놈은 바닷속으로부터 왔다 It Came From Beneath The Sea]를 권합니다.

ⓒ Clover Productions/Columbia Pictures. All Right Reserved.



P.S: 오비디오 G. 아소니티스에 대해서는 저명한 영화 컬럼니스트 김정대님이 집필한 제임스 카메론 연대기 1부 (
바로가기)에서 자세히 알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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