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VD가 보편화되고 영화에 대한 소장욕구가 증가하면서, 언제부터인가 유독 눈에 띄는 단어가 생겼다. D.C, 일명 '디렉터즈 컷'이라고 불리는 감독판이 그것이다. 아니 영화라는게 원래 감독이 만든거니까 감독판이지 굳이 감독판이라고 부르는 건 또 뭘까? 하며 의아하게 생각하시는 분이 간혹 있는 것 같아, 이번 기회에 감독판이라는 것의 실체에 대해 몇가지를 알아보고자 한다.
1.영화의 편집 |
원래 영화를 만드는 스탭 가운데는 Editor, 즉 편집자가 있기 마련이다. 이들은 주로 영화의 편집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사람들로서 영화가 보다 상품적인 가치를 갖추기 위해 이리저리 필름을 짜맞추는 사람들이다. 물론 편집이라는 분야는 편집자 단독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게 상당히 복잡한 부분인데, 영화에 있어서 사실상의 '편집권'은 때론 제작자에게 (더 나아가서는 제작회사의 중역에게) 있기도 하며, 감독이 참관한 가운데 편집이 이루어 지기도 한다.
문제는 현재 영화계의 메카라고 불리는 헐리우드에서도 실제 편집권을 행사할 수 있는 감독이 거의 드물다는 것이다. 스티븐 스필버그 정도의 거물급 감독이 아닌 이상, 편집권에 있어서 자유로울 수 있는 감독은 그리 많지가 않다. 그만큼 영화에는 제작자의 입김이 매우 크게 작용하며 결국에 있어서 이는 감독과 제작자(혹은 제작사)와의 불화로 이어지기도 한다.
거장 반열에 든 제임스 카메론 감독도 데뷔작 [피라냐2]를 만들때 엄청난 수모를 겪어야 했다. 그는 영화가 개봉되기 전에 해고를 당하는 수모를 겪었으며 따라서 정식 편집에는 전혀 관여하지 못하는 신세가 됐다. [에이리언2] 역시 그가 생각한 궁극의 편집본은 영화사 간부들에게 '너무 길다'는 이유로 퇴짜를 맞아 약 13분이 더 잘려나간채 극장에 걸리게 되었다. 그나마 이것도 고집쟁이 카메론 감독이 이 이상은 절대 더 잘라낼 수 없다고 끝까지 맞선 덕택이었다.
이렇게 영화 제작의 뒷모습에는 항상 편집권을 둘러싼 갈등이 존재하며, 이 점은 헐리우드 시스템의 뿌리깊은 문제점이기도 하다.
2.감독판이란 무엇인가? |
감독판이라 함은 감독 자신이 영화를 만들면서 의도했던 그대로의 작품을 말한다. 따라서 굳이 '감독판'이라는 딱지를 달고 나오지 않더라도 감독 자신의 의도대로 최종 편집본이 극장에 걸린 경우라면 이는 순수한 의미에서의 감독판이라고 볼 수 있다. 가령 봉준호 감독의 [괴물]을 들 수가 있는데, 이는 제작자나 그밖의 외부적인 입김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감독판 그 자체다.
ⓒ 청어람/ 쇼박스/㈜미디어플렉스 All rights reserved.
그러나 '감독판'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오는 작품들은 대부분, 앞서 설명한 이유들 즉, 최종 편집권을 갖지 못했던 감독이 러닝타임의 문제, 제작사의 압력등에 굴복해 자신이 의도하기 못했던 작품에 대한 일종의 항변과 같은 작품인 셈이다. 감독은 이를 통해 '내가 원래 의도했던건 이런게 아냐!'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감독판'이야말로 어떤 영화가 됐든지, '궁극의 버전'이라고 보면 된다.
3.감독판이면 다 좋은가? |
이것은 꼭 그렇다라고 말할 수가 없다. 분명 감독판과 극장판이 매우 상이한 작품도 많고, 실제로 '순수한 의미'에서의 감독판들은 대개 호의적인 평을 얻었다. 앞서 설명한 [에이리언 2]의 경우 카메론 감독은 LD와 DVD를 통해 그가 원했던 원래의 편집본, 즉 감독판을 발매했는데, 15분 정도가 추가된 이 감독판에서는 주인공 리플리의 모성애를 강조하는 여러 시퀀스가 추가되어 리플리가 뉴트를 위해 퀸 에이리언에 맞서는 장면에서의 설득력을 훨씬 그럴듯하게 만들었다.
[터미네이터 2]의 감독판(확장판으로 알려진)의 경우는 엔딩과 몇몇 추가씬에서 극장판과 많은 차이점을 보인다. 특히나 주목할 만한 점은 엔딩인데, 이 부분에서 관객은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터미네이터'시리즈를 2편으로 마감하려는 의도가 분명했음을 알아낼 수 있다. 다만 [터미네이터 2] 극장판의 경우는 '테스트 시사회’를 거친 뒤에 관객의 반응을 통해 감독 스스로가 결정한 또하나의 감독판이며 (물론 극장판의 엔딩은 제작자가 '간절히' 요구한 것이기도 했다) 확장판과 더불어 순수한 의미에서의 감독판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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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덤 오브 헤븐]은 어떠한가? 무려 40여분의 추가컷이 들어간 감독판은 극장판에서 미처 다루지 못했던 발리안의 주변 상황들을 좀 더 면밀히 다룸으로서 미흡했던 개연성을 보강시켜 줌과 동시에 캐릭터를 보다 뚜렷하게 만들어 주어 작품의 질을 한단계 상승시켜 놓았다.
ⓒ 20th Century Fox Home Entertainment. All rights reserved.
이처럼 진정한 의미에서의 감독판은 영화를 찍으면서 감독이 머릿속에 염두에 두었던 결과물이기 때문에 좀 더 바람직한 결과를 내놓기 마련이다. 그러나 감독판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극장판이 더 나은 경우도 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시네마 천국]이다. 심금을 울리는 엔니오 모리코네의 선율과 함께 감수성을 자극하는 스토리가 일품인 이 영화는 극장개봉시에도 많은 사랑을 얻었었는데, 무려 1시간 가량이 추가된 감독판이 후에 개봉하게 되었다. 토토와 엘레나의 재회 장면을 대폭 보강한 이 감독판은 오히려 '영화의 여운을 없앤다'는 이유로 극장판보다 못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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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 자체가 바뀐 [나비효과]는 관객의 취향에 따라서 호불호가 갈리는 경우다. 비교적 해피엔딩에 가까운 결말로 마무리한 극장판과는 달리 감독판은 어두운 결말을 택했다. 극장판 자체도 나쁘지 않았던 영화라 이렇게 뒤바뀐 결말에 대한 평가는 순전히 관객의 취향에 달린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작품들은 그나마 감독판과 극장판 사이에 '눈에 띄는 차이'가 있는 경우다. 감독판이라는 이름을 달고도 극장판과 그다지 차이를 못느끼게 하는 작품들도 있다. 가령 [리쎌웨폰]의 경우 감독판이라고는 하지만 추가씬의 차이를 체감하지 못할 정도로 극장판과는 거의 차이가 없다. [에일리언 2020 (피치블랙)]이나 [달콤한 인생]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최근들어 쏟아져 나오는 감독판의 경우에는 단순히 상술을 목적으로 한 이름뿐인 감독판도 더러 있기 때문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4.감독판은 반드시 추가씬이 포함되는가? |
이것도 반드시 그런것만은 아니다. 대부분 추가씬이 들어가기는 하지만 오히려 극장판에서 삭제해 버리는 경우도 있다. 그 유명한 [블레이드 러너]의 경우 감독판에서 리들리 스콧은 데커드 (해리슨 포드 분)의 나레이션과 사랑의 도피를 하는 극장판의 해피엔딩 장면을 모조리 삭제해 버렸다. 대신 유니콘이 등장하는 씬만을 추가시켜서 마지막 데커드가 종이로 접은 유니콘을 보며 미소짓는 장면과 대칭을 이루도록 의도했다. 이렇게 삭제한 감독판은 오히려 영화의 메시지를 명확하게 했고, 개봉당시 그토록 혹평을 받았던 작품을 진정한 걸작으로 탈바꿈시켜 놓았다.
ⓒ Warner Bros. Entertainment Inc. All rights reserved.
[슈퍼맨2]의 경우는 리처드 레스터 감독 대신, 원래 70%의 촬영을 진행했던 리처드 도너의 감독판이 나왔다. 이 도너 감독판에서는 기존 레스터 컷의 상당수를 삭제한 대신 자신이 찍어놓았던 많은 장면을 추가했으나 실제 러닝타임은 12분 가량이 줄어들었다.
이렇게 감독판은 여러 가지 변수가 작용하게 된다. 어찌되었건 감독의 필요에 따라서 필요한 장면을 넣을 수도 뺄 수도 있는 것이기에 반드시 추가씬이 들어가야 감독판인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5.감독판이냐 일반판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
최근에는 TV드라마까지 죄다 감독판이라는 이름을 달고 출시되는 분위기여서 일반판이냐 감독판이냐를 선택하는 문제는 쉽지 않은 결정이다. 그러나 진짜 감독판을 내고 싶은 감독은 자기 작품에 대한 열정, 그동안 그가 쌓아온 명성이 어느정도 작품에 대한 신뢰도를 보장해 줄 것이다. 제임스 카메론이나 리들리 스콧 같이 명감독으로 소문난 감독의 감독판이 일반판에 비해 뛰어난것도 나름대로 다 이유가 있는 셈이다.
* 참고된 스틸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이와 관련된 권리는 모두 해당 저작권사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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