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작열전(怪作列傳)

괴작열전(怪作列傳) : 대괴수 용가리 - 괴수물의 걸작 혹은 졸작?

페니웨이™ 2007. 11. 6.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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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작열전(怪作列傳)  No.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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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70년대 생인 필자와 비슷한 연배이거나 그 이전에 출생하신 분이라면 '고지라'라는 괴수에 대해 들어보셨을 겁니다. 물론 이것이 나중에 헐리우드로 넘어가면서 영어식 발음인 '고질라'에 더 익숙해져 버렸지만, 한때 '고지라'는 괴수물의 상징적인 아이콘이었습니다. [고지라]가 처음 등장한 것이 1954년. 원자폭탄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일본인의 의식을 반영이라도 하듯, 방사선에 의해 돌연변이화 된 이 괴수의 이야기는 엄청난 히트를 기록하며 수많은 모작들을 생산해 냈습니다. 고지라의 창시자인 혼다 이시로 감독이 직접 관여한 고지라만 하더라도 무려 10여편에 달하니 그 위력을 실감할 수 있지요.

ⓒ Toho Co. Ltd. All rights reserved.

일본 괴수물의 상징적인 캐릭터, 고지라


얼마전 (2007.11.2) 충무로 영화제 폐막작을 검토하면서 저는 놀라움을 금치못했습니다. 왜냐구요? 극장에서 보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하나의 작품이 상영작 목록에 들어있었기 때문이지요. 바로 [대괴수 용가리]가 당당히 폐막작에 선정되었던 것입니다. '용가리'라구요? 심형래 감독의 그 '용가리'란 말입니까? 하고 묻는 분은 없겠죠? ㅡㅡ+

제1회 충무로 영화제 폐막식 선정작, [대괴수 용가리]


사실 이 코너가 벌써 8번째인데, 그중에 4편이 괴수물이라, 이게 '괴작열전'인지, '괴수(怪獸)열전'인지 구분이 안간다는 분들도 계실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사실 이 괴수영화의 장르적 특성이 어떻게 잘 만들면 걸작이 되지만, 또 잘못만들면 도저히 눈뜨고 못봐줄 쌈마이 영화가 되기 십상입니다. 유독 괴작열전에 괴수물이 많을 수밖에 없는건 필연인지도 모르겠군요.

아무튼, 이 [대괴수 용가리]는 사실 그동안 구전으로만 알려졌던 일종의 '전설'과도 같은 작품입니다. 유독 필름보관에 인색한 한국의 실정상, 1967년 작품인 [대괴수 용가리]를 접하기란 쉬운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어떤이는 이 작품을 '한국 괴수물의 걸작'이라고 칭하는가 하면, 단순히 '일본산 고지라의 아류작'이라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느쪽이 되었건 괴수물이 전무하다시피한 한국 영화계의 역사에서 [대괴수 용가리]는 상당히 중요한 위치에 있음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물론 사실을 눈으로 직접 확인한 사람은 극히 드물다는게 문제지만 말이지요.

동화그라프, 1967년 5월호에서 발췌.

당시에는 꽤 화제가 되었던 영화임을 알 수 있다. "서울을 들부수는"의 압박 ㅡㅡ;;


그럼 영화의 실체를 함 분석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사실 공룡형태의 거대 괴수가 등장한다는 설정자체는 [고지라]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는 태생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봐야겠습니다. 어쩔 수 없이 아류작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지요. 그런 의미에서는 한국영화 최초의 괴수물인 1962년작 [불가사리]가 상당히 독창적인 작품임을 느낄수가 있습니다.

ⓒ 극동흥업/ MGM Studios. All Rights Reserved.


[대괴수 용가리]는 최근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야동순재'란 닉넴으로 이름을 날리신 이순재씨 외에도 문희.윤정희와 함께 한국영화의 1세대 트로이카 중 한명이었던 남정임이 출연을 하는 호화캐스팅의 영화입니다. 감독은 [악어], [나쁜남자]의 김기덕..이 아니라, 1979년 [영광의 9회말]을 끝으로 영화계에서 은퇴하신 원로감독 김기덕입니다. 그리고 몇몇 특수장치를 위해 일본인 스탭도 동원되었습니다. 이처럼 [대괴수 용가리]는 그저그런 영화가 아니라 나름 괜찮은 배우와 스탭으로 시작된 야심찬 작품이었음이 분명합니다.

ⓒ 극동흥업/ MGM Studios. All Rights Reserved.

꽃미남(?) 이순재의 젊은시절을 감상하시라~


이제 스토리를 잠시 살펴보면, 전설속의 괴수 용가리가 지층을 뚫고 서울에 난입, 도심에서 행패를 부리다 우연히 용가리의 약점을 발견한 한 소년과 과학자인 그의 삼촌이 용가리를 퇴치한다는 아주 쌈박,심플한 스토리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무려 10여년전에 만들어진 [고지라]가 그 열악한 환경가운데서도 나름대로 일본인의 심리적 상태를 풍자적으로 표현한 것에 비하자면 좀 실망스런 결과물인 셈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대괴수 용가리]에 뭔가 다른 의미를 부여해 봐야겠지요. 일단 먹고살기도 힘든 와중에 그래도 이정도의 괴수물을 만들려는 의지를 보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대괴수 용가리]는 칭찬해 주고 싶은 작품입니다. 지금의 수준에 맞추어 본다면 분명 조악한 세트와 용가리 탈바가지이지만, 놀랍게도 어두운 장면이나 바스트 샷만을 사용해 얍삽하게 눈가리고 아웅식으로 넘어가려 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주목할만 합니다.


ⓒ 극동흥업/ MGM Studios. All Rights Reserved.

전체적인 풀샷의 사용과 용가리의 등장씬이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도 흥미롭다. 그러고보니 용가리가 부수려하다가 그냥 지나쳐버리는 남대문의 존재가 새삼스레 달라보인다. 용가리도 고이 모셔놓은 문화유산을 토지보상외엔 안중에도 없는 미친 노인네가 불살랐다는게 지금도 믿기지가 않을 뿐. 


영화의 상당부분은 '용가리의 도심파괴'에 할애하고 있으며, 그것도 풀샷으로 카메라에 담아냄으로서 비록 어설프긴 하지만 자신감있게 영화화를 추진했음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어서 아주 좋았습니다. 물론 용가리의 고스튬은 많이 어설픕니다. 기껏 얼굴의 움직임이라봤자 아가리가 열렸다 닫혔다 하는 것 뿐이지만, 그래도 입에서 화염이 뿜어져 나오는가 하면, 코에 달린 뿔에서는 레이저도 나갑니다. ㅡㅡ;;; 괴작열전의 3번째 작품으로 언급한 북한의 [불가사리]와 비교해서도 그다지 뒤떨어지지 않는달까요. 제작 시기의 격차를 고려할 때 [대괴수 용가리]의 기술력이 더 우위인 셈이지요.

ⓒ 극동흥업/ MGM Studios. All Rights Reserved.

대피장면에서 배꼽을 잡았던 씬. 아니 도망가는 마당에 돗자리는 왜 들고 뛰는건데?


무엇보다 이순재, 남정임의 풋풋한 모습과 60년대 당시의 서울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꽤 소장가치가 높습니다. 스토리야 수십년이 세월이 흐른 다음에 만들어진 [디 워]도 큰소리를 칠 입장은 아니니까요. 뭐 하긴 괴수물의 정통계보가 오랜세월동안 끊어졌던 만큼 스토리의 발전이 있을래야 있을수가 없었겠지만 말이죠.

ⓒ 극동흥업/ MGM Studios. All Rights Reserved.


또 한가지 인상적인 장면은 영화의 중간에 용가리가 춤을 추는 장면입니다. 아니, 괴수가 춤을 춘다고요? 네, 맞습니다. 문자그대로 춤을 춥니다. 거의 죽음 직전에 떡실신 되어있던 용가리가 소년이 쏴준 광선의 도움으로 기사회생해 디스코를 추는 장면은 [대괴수 용가리]에서 가장 아스트랄한 장면이지만, 놀랍게도 배경에 흐르는 음악이 한국의 아리랑을 편곡한 음악이라는 사실이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심형래 감독의 [디 워] 엔딩에 흐르던 아리랑도 사실은 [대괴수 용가리]에서 이미 써먹었다는 얘기죠.

괴작아닌 괴작으로 소개할 수밖에 없는 [대괴수 용가리]이지만 어찌되었건 나름대로는 꽤 의미가 깊은 작품입니다. 한국 영화사의 초창기에 그래도 안해본 것 없이 다 해봤다는 뿌듯한 자부심을 줌과 동시에 이 작품이 미국까지 수출되어 지금도 DVD로 상품화되어 팔리고 있다는 사실은 '아무리 부족하고 열악해도 도전하지 않은 것보다는 낫다'는 점을 새삼 일깨워 주기 때문입니다.

ⓒ ebay. All Rights Reserved.

DVD로 상품화된 [대괴수 용가리].  마스터 필름도 없는 우리나라의 현 상황과 너무 대조적이다.
 


한가지 덧붙이지면. [대괴수 용가리]가 개봉된 1967년에는 [우주괴인 왕마귀]라는 또 한편의 괴수물이 만들어졌습니다. 한해에 자그마치 두 편의 괴수물이 제작되었다는 것도 흥미로운 사실이지 않습니까? 그나마 접하기가 약간은 수월한 [대괴수 용가리]에 비해 [우주괴인 왕마귀]는 구하기가 너무 힘들다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만, 입수하는데 총력을 기울여 언젠가는 리뷰할 날이 오리라 믿습니다.

P.S: 본 작품은 의외로 미디어믹스 형태의 전략을 보여주었던 작품이기도 합니다. [풍운아 홍길동]으로 유명한 신동우 화백의 동명만화가 영화개봉전에 연재되어 기대감을 키웠거든요.

ⓒ 신동우. All Rights Reserved.


* [대괴수 용가리]의 모든 스틸,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극동흥업/ MGM Studios.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 참고: [대괴수 용가리] 작업장 기사 (동화그라프, 1967년 5월호), 고지라(ⓒ Toho Co. Ltd. All rights reserved.),[대괴수 용가리] 상품광고(ⓒ ebay.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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