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작열전(怪作列傳)

괴작열전(怪作列傳) : 퓨마맨 - 이탈리아산 슈퍼히어로의 비애

페니웨이™ 2009. 12. 10.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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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작열전(怪作列傳) No.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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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도너 감독의 1979년작 [슈퍼맨: 더 무비]는 전 세계의 영화 제작자들에게 있어 일종의 꿈을 현실화한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헐리우드의 자본과 기술력만큼의 자원을 확보하지 못한 대다수의 나라들에게 있어 그런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여전히 꿈에 불과한 것이었지요. 일례로 언젠가 괴작열전에서 소개해 드렸던 [터키 슈퍼맨]과 같은 영화들은 꿈은 있으나 돈이 없는 사람들의 현실을 반영한 작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미 영화 산업이 한풀 꺾인 이탈리아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요즘은 전세계 영화시장을 헐리우드로 대표되는 미국 영화가 석권하고 있습니다만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이탈리아 영화는 상당히 높은 위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특히 '네오 리얼리즘'으로 대표되는 루치노 비스콘티, 비토리오 데 시카, 페데리코 펠리니,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등 다수의 명감독들이 이탈리아 영화의 중흥기를 이끌며 세계적인 반열에 올려놓게 되는데요, 이러한 네오 리얼리즘적인 성향은 프랑스의 누벨바그 감독들이나 미국의 뉴 아메리칸 시네마 운동 등 사실주의적 영화들에게 깊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마카로니 웨스턴'과 같은 상업주의식 영화들이 등장하게 되고 수익만을 쫒는 아류작들이 범람하게 되자 이탈리아 영화계도 서서히 그 위상을 잃게 됩니다. 물론 수작이라 불릴 만한 작품들도 더러 나오긴 했습니다만 성장동력을 상실한 이탈리아 영화계는 터키 같은 나라에서나 볼법한 괴작들을 양산하며 마구잡이로 영화를 찍어내는 우를 범하게 됩니다. 영화블로거인 아르젠토님은 '김시광의 공포영화관'이란 책에서 이러한 이탈리아 영화의 변질된 스타일을 '하나의 장르가 인기를 얻으면 그것을 바닥까지 재생산하는 전통'이라고 묘사할 정도입니다.

오늘 소개할 1980년작 [퓨마맨]은 바로 쓰러져가는 이탈리아 영화계의 단면을 볼 수 있는 작품중의 하나로서 이탈리아식 슈퍼히어로물이 어떤 것인가를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 ADM Films Department-DEANTIR. All rights reserved.



[퓨마맨]은 다음과 같은 자막과 함께 시작됩니다.


고대 아즈텍 전설에 따르면 지구로 보내진 새벽별들의 후손과 퓨마맨의 아버지가 된 신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그리고는 우주선 한대가 영국의 스톤헨지로 와서 황금마스크를 내려놓고는 이 마스크와 함께라면 나는 항상 너희 곁에 있을 것이고 이 마스크를 지키기 위해 신의 아들인 퓨마맨을 둘 것이니 어쩌구 저쩌구, 블라블라... 하면서 다시 떠납니다 (아즈텍 전설인데 왜 영국이...사용자 삽입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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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이 바뀌면 다른 사람의 생각을 지배할 수 있는 황금 마스크의 비밀을 밝혀내 세계를 정복하려는 코브라스(도널드 프레젠스 분)일당이 그들의 유일한 방해꾼이 될지 모르는 퓨마맨을 찾아 제거하려 합니다. 근데, 그 퓨마맨 식별법이라는 게 런던에 사는 아무 미국인이나 잡아서 창문 밖으로 내던지고 살아남으면 네놈이 퓨마맨이구나 하는 식이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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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런 황당한 변별법을 사용하는게 코브라스의 부하만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어느날 박물관에서 근무하는 토니 팜스 교수(월터 조지 알톤 분)는 느닷없이 안톤 시거를 연상케 하는 괴한의 습격을 받아 창문 밖으로 내던져 집니다. 그럼에도 토니가 죽지 않고 살아나자 그 의문의 사나이는 당신이 '퓨마맨'이라며 집요하게 따라다니는데요, 자신을 아즈텍 고위 성직자인 바디뇨(미구엘 엔젤 후안테스 분)라고 소개한 그는 토니에게 싸구려 벨트를 하나 주더니만 이것이 퓨마맨 전용 벨트라며 사용법을 가르쳐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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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Country for Old Men ⓒ Paramount Vantage/Miramax Films. All rights reserved.


하지만 그런 구린 디자인의 벨트를 착용할 수 없다며 도망쳐 나온 토니는 코브라스의 사주로 접근한 제인과 데이트를 하러 가지만 이내 자신을 습격한 코브라스 일당에 의해 위기에 놓입니다. 때마침 재등장한 바디뇨는 토니에게 벨트를 착용하라고 반 협박조로 압박하고, 얼떨결에 벨트를 찬 토니는 갑자기 하늘을 날아다니며 악당들을 물리칩니다. 본격적인 슈퍼맨, 아니 퓨마맨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지요.사용자 삽입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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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퓨마맨의 제거에는 실패했지만 코브라스는 황금 마스크를 이용해 각국의 정상들의 마음을 조종, 세계를 정복하려 합니다. 이 음모를 막고자 코브라스의 아지트에 잡입한 퓨마맨은 제인을 앞세운 코브라스의 계략에 말려 그만 자신의 능력을 빼앗기고 맙니다. 가까스로 바디뇨에게 구출된 퓨마맨은 안정을 취하게 되는데요, 이번엔 보다못한 바디뇨가 몸에 다이너마이트를 감고 적진에 돌진, 아수라장을 만들고 맙니다. (네, 진정한 주인공은 바디뇨였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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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바디뇨가 적을 대부분 쓰러뜨릴 즈음에 나타난 퓨마맨은 헬기를 타고 탈출하는 코브라스를 쫓아가 응징을 가하고, 일이 다 해결되자 우주선이 나타나 바디뇨를 태우고 사라진다는 대망의 엔딩으로 막을 내립니다.


네, 스토리를 설명하는 저조차 참 한심스러운데요. 이 작품이 얼마나 엉터리인가 하면 영화가 시작되면서 배우들의 크래딧이 나오는데 도널드 프레젠스 Donald Pleasence의 철자를 Donald Pleasance로 틀리게 적어놓은 순간부터 불길한 예감이 쓰나미처럼 밀려옵니다. 그래도 도널드 프레젠스하면 [007 두 번 살다]에서 블로펠트로 등장해 낯이 익은, 무려 200편이 넘는 영화에서 조연을 맡은 베테랑 배우인데 이름을 틀리게 적다니! 도널드 프레젠스는 딱 한번 이 작품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는데 '자신이 출연한 작품 중 최악의 영화였다!'고 말했을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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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마맨이 가진 능력도 슈퍼히어로라고는 믿어지지 않을만큼 허술합니다. 하늘을 나는것도 일직선으로 똑바로 나는 것이 아니라 엉거추춤한 상태에서 발을 버둥거리면서 날아가질 않나, 적들과 싸울땐 강시처럼 점프를 해대질 않나, 순간이동에 벽을 그냥 통과하는 비상식적인 능력을 보유했지만 막상 그 능력을 써먹을 데가 없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애초에 퓨마맨은 사람을 도와준다거나 사고를 막는 등 공공의 복지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황금 마스크를 악용하려는 코브라스를 막는 일에만 역점을 두는 캐릭터인데요, 그나마 그 일도 사이드킥인 바디뇨가 다 알아서 합니다. 퓨마맨이 악당들 틈에서 방방 뛰어다니는 동안 그들을 때려 눕히는건 모두 바디뇨의 몫이거든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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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전혀 쓸모없는 슈퍼히어로 역할을 맡은 월터 조지 안톤은 원래 뉴욕시 의료 변호사로서 [10]이란 영화의 단역으로 극장 데뷔를 했다가 전격 주연으로 발탁되었는데, 영화배우라는 명함을 내밀기도 민망할 이 작품에 출연한 탓인지 이후로 [비서 사만다 Heavenly Bodies]라는 싸구려 영화 한편을 더 찍고는 영화계를 영원히 떠납니다.

그밖에도 카메라의 렌즈를 바꿔가며 연출한 놀라운 특수 효과며, 베이지색 면바지에 싸구려 쫄티, 그리고 보자기 같은 망토의 앙상블이 압권인 코스튬까지 이것이 정녕 리처드 도너의 [슈퍼맨]보다 1년 후에 나온 작품인지가 믿어지지 않을만큼 시대를 역행하는 영화랄까요. 그나마 이 작품의 감독을 맡은 사람이 [오케이 코네리]의 바로 그 알베르토 드 마르티노라는 걸 알게 된 순간, 아, 이건 이럴 수밖에 없는 영화였구나 하고 납득이 가긴 합니다.

갑자기 영화속 대사가 생각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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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마맨: 마스크를 찾는 길만이 유일한 방법인가요?

바디뇨: 그렇소. 만약 우리가 성공하지 못한다면...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말 것이오.



누군가 [퓨마맨 2]를 제작하는 것처럼 더 이상 끔찍한 일이 있을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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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퓨마맨]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ADM Films Department-DEANTIR 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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