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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작열전(怪作列傳) No.94









지난번 '시네마 그레피티'를 통해 소개한 바 있는 1968년 작 [혹성탈출]은 그 당시 이 영화를 직접 접한 분들이라면 그 충격이 얼마나 컸었는지를 기억하실겁니다. 원작과는 조금 다른 설정과 결말로 인해 더욱 화제가 되었던 [혹성탈출]은 이후 총 5부작의 극장판으로 이어졌으며 TV시리즈와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미디어믹스의 전개로 사골게리온이 울고 갈 만큼 아주 지겨울 정도로 울궈먹게 되지요.

ⓒ 20th Century Fox. All rights reserved.


이러한 [혹성탈출] 신드롬은 미국내의 현상만은 아니었습니다. 한국은 물론이고(한국에서는 박동파 화백이 그린 '혹성탈출'이란 만화가 클로버문고에서 출간된 적도 있습니다만 제목만 혹성탈출일뿐 내용은 '플래쉬 고든'이었습죠.) 옆나라 일본에서도 [혹성탈출]은 꽤나 큰 관심을 모았었는데, 특히 일본내에서 [혹성탈출]이 TV를 통해 방영되었을 때 기록적인 시청율을 보여주며 관계자들을 깜짝 놀라게 합니다. 이에 [울트라맨] 시리즈로 알려진 특촬물 전문 제작사 츠부라야 프로에서는 '원숭이들이 지배한 세계에서 살게 된 인간'을 모티브로 한 새로운 기획물을 구상하게 됩니다.

그것이 오늘 소개하게 될 SF 드라마 [원숭이 군단 SFドラマ 猿の軍団]입니다. 누가 보더라도 [혹성탈출]의 모티브를 뻔뻔스럽게 베낀 이 작품의 제작사실이 알려지자 [혹성탈출]의 판권을 가지고 있던 20세기 폭스에서는 츠부라야 프로를 상대로 지속적인 클레임을 걸게 됩니다. [혹성탈출]이 기존 영화들과는 달리 전례가 없는 프렌차이즈 사업으로 전개된 효자상품이었으니 눈뜨고 자사의 컨텐츠를 빼앗길 순 없었겠죠. 결국 츠부라야 프로에서는 거액의 저작권료를 지불하고 제작에 착수했다는 후문입니다.

[원숭이 군단]의 각본은 호시 신이치, 츠츠이 야스타카와 함께 일본의 3대 SF작가라 불리는 코마츠 사쿄가 참여했고(참고로 저녁 8시까지 방영된 [원숭이 군단] 직후에는 코마츠 사쿄의 또다른 작품 [일본침몰]이 방영되어 그야말로 SF드라마의 러쉬를 이루었다), [의리없는 전쟁] 시리즈나 [공룡대전쟁 아이젠보그]의 OST를 작곡했던 츠시마 토시아키가 음악을 담당하는 등 꽤나 수준급의 스탭이 가담해 작품을 완성해 나갑니다.

ⓒ 1974 円谷プロ TBS. All rights reserved.


이 작품은 1974년에 TBS를 통해 방영이 시작되어 총 24화로 완결되었지만 [원숭이 군단]의 인기확보는 그리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경쟁사의 방영작이 무려 [알프스 소녀 하이디]와 [우주전함 야마토]라는 쟁쟁한 애니메이션이었기 때문이지요. 특히 [알프스 소녀 하이디]의 열풍은 대단한 것이어서 상대적으로 마이너 취향이었던 [우주전함 야마토]와 함께 치열한 시청율 싸움을 전개해 나가지 않으면 안될 정도였습니다.

그럼 내용을 잠시 살펴보도록 하지요.

영화의 첫 배경은 1970년대 일본의 평범한 가정에서 시작됩니다. 개구쟁이인 지로와 유리카는 갑작스런 지진의 징후 때문에 안전을 우려한 부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삼촌이 연구소장으로 있는 연구소에 놀러갑니다. 아이들의 인솔을 맡게된 건 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는 이즈미 마사코. 이즈미는 두 아이에게 한참 개발중인 냉동인간 기술에 대해 설명하고 이를 원숭이에 적용한 실험을 보여줍니다.

신기한 경험으로 아이들이 즐거워하던 찰나, 갑작스런 대지진의 화산분화에 의한 충격이 연구소를 덮치는데요, 아주, 아~~주 우연히도 이 세사람은 근처에 있던 콜드슬립 장치안으로 들어가게 되고 충격에 의해 떨어진 건물조각에 의해 동면장치가 작동되면서 무너진 연구소의 잔해에 묻힙니다.

ⓒ 1974 円谷プロ TBS. All rights reserved.


시간이 얼마쯤 지났을까요? 일련의 포크레인이 연구소의 잔해더미를 헤집고 동면캡슐을 꺼내 어디론가 옮기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세 사람은 어떤 병실같은 곳에서 눈을 뜨게 되지요. 그러나 놀랍게도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건 연구소 직원들이 아니라 원숭이 무리들이었습니다. 이 원숭이들은 어떻게 된 일인지 말도하고 의사처럼 가운을 입고 돌아다니며, 총을 든 군인들도 이뤄진 문명인의 모습이었습니다. 게다가 이 원숭이들은 그닥 사람에게 호의적인 것 같지도 않아 보입니다.

ⓒ 1974 円谷プロ TBS. All rights reserved.


이윽고 세 사람은 군인들의 손에 이끌려 어디론가 끌려가게 되고 지로는 강하게 반발하지만 원숭이들은 이 세 사람을 처형하려 합니다. 이때 수수께끼의 사나이 고드가 나타나서 세 명을 구출해 간신히 위기를 넘기게 되는데요, 이때부터 네 사람은 원숭이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고 맙니다. 도대체 인류는 왜 멸망하게 되었는가, 왜 원숭이 경찰서장은 집요하게 고드를 추격하는가 등등 많은 수수께끼들이 이들의 모험을 통해 서서히 드러나게 됩니다. 또한 원숭이 조직 내부의 권력암투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도 메인 스토리에 포함되어 있지요.

ⓒ 1974 円谷プロ TBS. All rights reserved.


이처럼 [원숭이 군단]은 [혹성탈출]의 기본적인 베이스를 가져온 작품이긴 하지만 나름 설정면에 있어서는 독자적인 오리지널리티를 추구하려한 흔적이 보이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모험의 주체가 어린이인 탓에 다소 무거운 주제의식을 가졌던 [혹성탈출]에 비해서는 훨씬 가벼운 마음으로 즐길 수 있는 가족 드라마였던 셈이지요. 오히려 본격 SF드라마로서의 견실한 설정과 드라마적 전개는 꽤 훌륭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인 완성도가 탄탄했냐고 묻는다면 역시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는데요, 가장 먼저 지적되는 부분이 바로 분장이었죠. 1968년작 [혹성탈출]은 당시 아카데미상에는 없었던 분장상을 신설하게 된 계기를 마련할 정도로 완벽에 가까운 분장기술을 보여주었지만 일본 굴지의 특촬물 회사인 츠부라야의 솜씨라고는 믿어지지 않을만큼 허술한 분장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고 맙니다. 심지어 원숭이 캐릭터가 말을 할 때도 입이 제대로 벌어지지 않아 뭔가를 우물우물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코미디입니다.

ⓒ 1974 円谷プロ TBS. All rights reserved.


또한 설정에 있어서도 문제가 되는 것이 원숭이 군단의 중앙본부가 있는 도시지역은 레스토랑이나 호텔 등이 들어서 있고 베리어 기능이 있는 등 최신 문명세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만 조금만 외곽지역으로 나가도 갑자기 고전적인 농촌으로 돌변해 예언자나 낡은 인습에 지배당하는 전근대적인 깡촌의 모습만이 보여질 뿐입니다. 이런 언벨런스는 작품 가운데서도 그 이유가 전혀 설명되고 있지 않아 상당한 의문점을 남깁니다.

방영 내내 주인공들을 따라다니던 UFO의 정체가 밝혀지는 결말 역시 24회에 걸쳐 길게 이어진 사태를 수습하는 면에 있어서 조금 억지스런 감이 있습니다. 약간은 반전이 있기 때문에 결말을 말하지는 않겠습니다만 [혹성탈출]과는 또다른 느낌의 반전이므로 나름 가치는 있다고 생각되네요. 아마도 종영당시에 꽤나 논란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 1974 円谷プロ TBS. All rights reserved.


한편 이 작품은 미국에서는 유명한 B급영화 수입업자인 샌디 프랭크가 약 1시간 반으로 편집해 수입한 축약버전인 [Time of the Apes]가 1987년에 북미지역에 공개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됩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영한지 10년이 훨씬 지나서 소개되기도 했거니와 24부작 드라마를 왕창 줄여놓는 바람에 정착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인 '모든 생물은, 각각의 생명대로 힘닿는데까지 살 권리가 있다'는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북미지역에서는 엄청난 조롱거리가 되고 맙니다.

ⓒ Celebrity Home Video/Creature Features Video. All rights reserved.


[혹성탈출]의 서자같은 작품이긴 합니다만 [원숭이 군단]은 아이디어의 재활용이라는 측면에서 꽤 흥미있는 시도였던 것만큼은 부정하기 힘들군요. 마치 일본판 [스파이더맨]이 원작자 스탠 리에 의해 인정받고 있듯이 모방에 의한 창조를 이뤄낸 일본인들의 근성이 때론 부럽기도 합니다. 하긴 그렇게 따지면 7,80년대를 수놓은 국내 애니메이션계의 버라이어티한 표절작들도 나름 할말이 있을려나요? ㅠㅠ*


* [원숭이 군단]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1974 円谷プロ TBS. 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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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붉은비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거 얼마만에 순위권인지...^^

    혹성탈출은 실제 이나라 저나라에서 표절작이 상당히 많았다고 알고 있습니다.
    저작권까지 구입했다면 꽤나 양심적으로 제작한 작품이겠네요.^^

    억지춘향으로 끼워맞춘다면, 인류가 아닌 다른 종이 지배계급이고 인간들은
    그들의 노예 내지 피지배층으로 전락해 있는 구조는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가 효시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뭐 걸리버 여행기에서는 원숭이가 아니라 말이기는 했습니다만...^^

    2010.02.01 10:06 신고
    • 페니웨이™  댓글주소  수정/삭제

      일단 일본쪽에서의 저작권 의식이 국내보다 빠른건 사실이지요. 스파이더맨의 경우도 정식으로 마블에게 판권료를 지불한 작품이니까요.

      2010.02.01 16:21 신고
  2. 세상에 이런일이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호~~~호 오래살고 볼일입니다
    따끈따끈한 페니웨이님의 글에 댓글을 다는군요 ^.^
    이번 글도 잼있게 읽었습니다
    일본이 참 부러우면서도 대단한것이 바로 저런부분이네요
    물론 한국전쟁 덕분에 망해가는 나라 완전히 살리고 배부른 상황에서 문화사업에 눈을돌린 감이 없지않아 있습니다만
    저작권 문제라든지 콘텐츠사업분야는 우리도 먹고살만 했을떄도 신경쓰지않고 알량한 돈벌이로 이용되던때 였지 않았습니까? 그런대도 불구하고 저런과감한 투자를 한것을 보면 우리는 아직 한참을 따라가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2010.02.01 14:31 신고
    • 페니웨이™  댓글주소  수정/삭제

      우리는 지금도 컨텐츠 도용을 당당히 하고 있죠. 얼마전 파판7:AC를 그대로 표절한 아이버의 뮤비사건은 그 대표적인 케이스입니다. ㅡㅡ;;

      2010.02.01 16:22 신고
  3. 캅셀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도에이판 '스파이더맨' 만큼이나 괴작의 포스가.. ㅡㅡ!

    2010.02.01 14:55 신고
    • 페니웨이™  댓글주소  수정/삭제

      우리나라도 찾아보면 있긴 한데.. 문제는 그런 컨텐츠가 출시되어있질 않아서리.. ㅡㅡ;; 언제 한번 '검은별과 바베크'를 한번 다뤄보고 싶은데요...

      2010.02.01 16:23 신고
  4. 이준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주 개념 미탑재인지 어쩐지 80년대 어린이극(을 빙자해서 여러 장르를 섭렵한) 호랑이 선생님 "방학특선 시리즈"에서 미래의 지구를 배경으로 한 원숭이 인간들과 미래인들의 대결을 그린 이야기가 있었죠. 혹성탈출이나 이런 것과는 거리가 멀고 원숭이 진화형 인간들이... 어쩌구인데 알고보니 지구 생물로 생체 실험을 한다 어쩐다...인데... 모여라 꿈동산 수준은 아니고 나름 어설픈 분장을 했었습니다.(이 작의 압권은 좌표만 찍으면 폭발이 일어나는 전자 계산기..)

    2010.02.01 20:23 신고
    • 페니웨이™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런 에피소드가 있었군요. 전 호랑이선생님은 즐겨보는 편이 아니었는지라..

      2010.02.02 12:41 신고
    • bluenlive  댓글주소  수정/삭제

      호랑이선생님 에피소드 중에선 컴퓨터 천재들이 SPC-1100을 갖고 놀다가 실험을 통해 힘이 세지는 약을 만들어 무려 온몸이 초록색인 괴물로 변하는 에피소드도 있었습니다. 헐~

      2010.02.02 19:16 신고
    • 이야기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그 에피소드를 봤던 기억이 나네요. 방학특집이었지요.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 보아서 그런지 그 에피소드를 잼난게 봤던 기억이 나네요.
      지금 보면 왕유치겠지만...

      2010.04.08 13:24 신고
  5. 이빨요정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세상에는 모르는 영상물들이 너무도 많군요.
    정말 듣도 보지도 못했던 것입니다.

    2010.02.01 21:24 신고
  6. bluenlive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 넓고도 넓은 괴작의 세계...

    2010.02.01 21:55 신고
  7. 천용희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뭔가 강력하군요...그래도 스파이더 맨 같이 볼만할 거 같네요.

    2010.02.02 02:19 신고
  8. Terminee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은근슬쩍 설정 좀 가져다가 한 만들어서 돈 벌어보려다가 걸려서
    저작권료도 다 내고 만든 게 괴작이라니... 크
    제작사 입장에서는 정말 입맛이 쓰겠군요.

    2010.02.02 09:23 신고
  9. naxen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항상 페니웨이님 글 잘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댓글 달아보는 건 처음이지만.....(참고로 제가 즐겨찾기나 검색 이용하지 않고 바로 주소창에 주소를 기억하는 몇 안되는 블로그네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글은 테마별섹션(중에서도 배트맨, 인디아나 관련글들을 좋아하네요.) 속편열전 그리고 대망의 괴작열전이죠^^

    아.....혹시 기회 되시면 패러디 영화들에대해서도 한번 다뤄보실 생각없으신가요? 예를 들어 무서운 영화 시리즈같은......

    2010.02.02 15:07 신고
  10. 쪽빨.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쪽빨영화는 다 지룰같어~

    2010.02.02 18:38 신고
  11. 나이트세이버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분장이 저게 뭐야... OTL 정말 할리우드 판 혹성탈출의 분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역으로 보여주네요.

    2010.02.02 21:08 신고
  12. 스파이아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입모양이 계속 미소짓고 있네요 대박 ㅋㅋㅋㅋㅋ

    2010.02.03 07:20 신고
  13. rari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결말이 궁금하네요.
    스포일러를 가르쳐주시면 안될까요?

    2010.02.05 13:01 신고
  14. spawn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작품은 그래도 로열티를 지불하기라도 했지 국내의 괴작들은 말을 않겠습니다.

    2010.02.08 20:08 신고
  15. Best Boy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괴작의 세계는 넓고도 깊습니다. TT

    2010.02.17 12:21 신고
  16. 지그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음이 기대 되네요. 혹시 '배트맨과 로빈' 보셨나요? 그것도 괴작인데, 한번 손 대보시는게 어떤가요?

    2010.02.24 12:06 신고
  17. 짱가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거 참 괴상하게 생겨먹은 물건이군요. 옛날에 일본친구들이 우리 나라에서 만든 북두의 권 실사판보고 낄낄거리던걸 본 적이 있는데 얘네들도 그럴 상황이 아닌듯 ㅇㅋ

    2010.03.22 02:1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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