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작열전(怪作列傳) No.80
[스타트렉: 더 비기닝]의 개봉을 맞이하여 스타트렉 특집 컬럼과 동시에 이번에는 [스타트렉]과 관련된 특집 괴작열전이 되겠습니다. 이미 괴작열전 시간에는 몇몇 터키산 괴작들을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요, 특히 1970년대에는 마블 코믹스를 비롯한 그밖의 슈퍼히어로 원작만화들 -슈퍼맨, 팬텀, 캡틴 아메리카 등등-을 영화화하는 일이 터키 영화계에 유행처럼 번졌습니다. 아이디어도 쉽게 해결하면서 돈도 꽤 짭잘하게 버는 작업이었든요.
이 당시 이러한 현상을 유심히 지켜본 한 제작자는 그야말로 기똥찬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됩니다. 무슨 아이디어였냐구요? 후후 성질도 급하시긴. 일단 배경 설명을 좀 하구요.
1963년 Hulki Saner 감독의 작품 [Helal olsun Ali abi]에는 터키 영화사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캐릭터가 처음 등장하게 됩니다. 주인공의 친구로 등장한 외메르 라는 캐릭터인데요, 터키의 국민배우 Sadri Alışık이 연기한 이 코믹한 캐릭터는 조연임에도 주인공보다 더 인기를 끌게 되었고 이듬해인 1964년에는 주연급으로 승격되어 [여행자 외메르 Turist Ömer]라는 작품이 개봉됩니다. 이후 [여행자 외메르] 시리즈는 1973년까지 총 8편이나 만들어 질 정도로 유명한 프랜차이즈 캐릭터로 성장하기에 이릅니다. 오늘날 터키 사람들은 Sadri Alışık하면 Turist Ömer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는데요, 쉽게말해 터키의 찰리 채플린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전설적인 코미디 배우가 되었다고나 할까요.
ⓒ Renkli/Saner Film. All rights reserved.
한편 당시 터키에 수입, 방영되던 TV시리즈 중 특히 인기있었던 작품은 다름아닌 [스타트렉]이었습니다. 당시 TV에서 [스타트렉 TOS]가 방영될 시간이 되면 터키 거리에 지나다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제 터키의 영화 제작자들은 이 두 작품의 히트 요소를 한데 모으기로 결심합니다. 즉 [스타트렉]의 인기에 편승하는 한편, 자국의 국민 캐릭터 [여행자 외메르]를 슬쩍 집어넣기로 한 것이지요. 조악한 짝퉁 슈퍼히어로만으로도 돈을 벌 정도라면 메이저 프로덕션에서 이 두 작품을 조합한 영화를 내놓기만 해도 틀림없이 성공을 거둘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인 이른바 [터키 스타트렉](원제: Turist Ömer Uzay Yolunda)입니다. 1
ⓒ Renkli/Saner Film. All rights reserved.
우선 줄거리를 살펴보시죠.
우주를 항해하던 엔터프라이즈호는 한 황량한 행성에 살고 있는 크레이터 교수와 그의 아내 낸시의 건강검진을 위해 그들을 만나러 갑니다. 참고로 낸시는 한때 맥코이 박사의 연인이었지요. 그런데 승무원들이 크레이터 교수와 담소를 나누는 사이, 밖에서 낸시의 비명소리가 들립니다. 잠시 밖에 나가있던 승무원 중 하나가 얼굴에 붉은 얼룩을 남기고 몸안의 염분은 쪽 빨린채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지요.
ⓒ Renkli/Saner Film. All rights reserved.
갑자기 화면이 바뀌고, 백수건달인 외메르는 한 시골마을에서 강제결혼을 할 위기에 처했다가 아주 기가 막힌 타이밍에 맞춰 크레이터의 실수에 의해 미래로 소환됩니다. 크레이터의 사이보그에게 사로잡힌 외메르는 스팍에게 인계되어 포로가 되지만 얼마 안있어 커크 선장, 스팍, 맥코이와 함께 크레이터 부부를 둘러싼 일련의 살인사건을 풀어나갑니다. 결국 살인법의 정체는 낸시. 원래는 낸시가 아니라 다른 사람으로 변신할 줄 아는 그 행성의 생명체이며, 염분을 섭취하기 위해 승무원을 살해했던 것이었습니다.
이를 알고도 묵과한 크레이터 교수는 자신이 개발한 사이보그를 대거 투입, 엔터프라이즈호의 승무원들과 결전을 벌이게 되는데요... 과연 결말은 어떻게 될까요?
내용을 잠시 보신것처럼 [터키 스타트렉]은 기본적으로 [스타트렉 TOS]의 첫 번째 방영 에피소드인 'Man Trap'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여기에 터키산 캐릭터인 외마르를 집어넣어 영화를 터키식 유머가 득실대는 슬랩스틱 코미디로 바꾸어 놓은 것이지요. 실질적인 주인공도 커크 선장이나 스팍이 아닌 외메르라고 봐야 합니다.
ⓒ CBS/ Paramount Television. All rights reserved.
영화의 대히트를 예감했던 제작진의 생각처럼 [터키 스타트렉]은 상당한 흥행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이 작품은 터키 뿐만 아니라 (터키인 3백만명이 거주하는) 독일 같은 나라에도 수출되는 쾌거를 거두게 되었다는 군요.
따라서 터키에서는 '마스터피스'급의 영화라며 호들갑을 떠는 모양이지만 사실상 [터키 스타트렉]은 그닥 뛰어난 영화가 아닙니다. (당연한거 아닌가?) 우선 영화는 [스타트렉 TOS]의 오리지널 캐릭터를 이름까지 그대로 가져왔으며 (물론 스펠상의 차이는 있습니다. 이를테면 Spock을 Spak으라고 바꿨다던지....) 세트 설정이나 네러티브도 [스타트렉]의 노골적인 표절이나 다름없는 수준입니다.
ⓒ Renkli/Saner Film. All rights reserved.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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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nkli/Saner Film.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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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배경인 모 행성의 세트는 그냥 고대 유적이 남아있는 터키의 허허벌판이며 엔터프라이즈의 운행장면도 필름 그대로 짜집기가 민망했는지 단 한컷만 지속적으로 보여주는데, 그나마 주황색 필터처리로 인해 영화를 더욱 쌈마이스럽게 만들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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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지 더 골때리는건 함선내의 자동문이 개폐 효과음이 처음에는 '지잉~'하고 제법 그럴듯하게 나오다가 중반이후에는 스탭들이 그것조차 귀찮았는지 입으로 "휙~"하는 소리를 낸다는 겁니다. 헐~
또하나, 원작인 'Man trap'에는 없던 괴물(그러니까 모양을 맘대로 바꾸는 그 범인이 아니라 다른 괴물)이 무슨 모여라 꿈동산 탈바가지 같은걸 쓰고 나와서 커크 선장을 위협하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꼴에 입에서 무슨 불 뿜는 장면을 보여주는데 얼핏 보기에도 스탭 중 한사람이 탈바가지를 쓴 배우 앞에서 화염방사기로 불을 쏴대는 것 같습니다. (배우에게는 대단히 위험한 촬영이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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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렉]의 유명한 시퀀스인 텔레포트 장면 역시 배우들을 쪼르르 세워놓고는 몸에 무슨 지렁이가 꾸물꾸물 기어가듯하다가 '뿅'하고 사라지는 형식으로 처리했는데요, 이런식으로라도 특수효과를 표현하려고 애 썼을 그 당시 스탭들의 노고를 생각하면 마냥 비웃을 수 만은 없더군요.
ⓒ Renkli/Saner Film. All rights reserved.
그런데 그거 아십니까? 이 영화가 전세계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스타트렉] 극장판이라는 것을. 더 놀라운건 컬트매니아들 사이에서 이 작품이 제법 볼 만한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실제 IMDB의 평점도 경이로울 정도로 높은 편이지요. 역시 괴작이라는 것은 오묘한 데가 있다니까요.
본 리뷰는 2009년 5월 15일자 미디어몹의 메인에 선정되었습니다.
* [터키 스타트렉]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Renkli/Saner Film. 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 참고 스틸: 스타트렉 TOS 중 Man Trap (ⓒ CBS/ Paramount Television. All rights reserved. )
- [터키 스타트렉]은 Sadri Alışık이 주연한 Turist Ömer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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