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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해적 하록선장 - 캡틴 하록의 한국식 컨버전

페니웨이™ 2014. 2. 2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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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바다가 사라졌을 때 사람들은 말했다.
인류의 마지막 순간이 왔다고...
끝없이 펼쳐진 무한의 바다를 못 본 채하며 인류는 한결같이 삶을 포기했다.
그러나 일부는 새로운 인류의 빛나는 미래를 믿고 새로운 무한의 바다 우주를 향해 몸을 던지기 시작했다.
떠나는 젊은 남자들을 사람들은 어리석다며 비웃었다.
끝없는 꿈을 펼쳐 나가는 사나이들
이것은 그런 시대의 이야기이다.
때는 서기 2977년....

 

1970년대 후반 일본의 애니메이션 시장은 바야흐로 로봇들의 각축전이었다. 나가이 고와 다이나믹 프로, 그리고 토에이 동화의 막강한 위세에 더해 신예 선라이즈의 반격으로 더할 나위없이 많은 로봇들의 쏟아져 나왔다. 이와 중에 1978년 방영된 [우주해적 캡틴 하록 宇宙海賊キャプテンハーロック]은 [우주전함 야마토]에 이어 비로봇 계열의 SF 드라마로 승부를 건 마츠모토 레이지의 야심작이었다.

로봇물에 길들여진 아이들에게는 지나치게 무겁고 진지한 테마인데다, 비로봇물인 [우주해적 캡틴 하록]은 작품의 특성상 실패할 확률이 커 보였던게 사실이다.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전제로 기획한 작품이었음에도 코믹스를 통해 먼저 대중에게 선보인 건 그런 이유에서였다. 숙적인 마존과의 대결을 담은 5권의 코믹스와 외전격인 '건 프론티어', '다이버 제로' 등의 작품을 통해 존재감을 드러냈던 하록은 [우주전함 야마토] 극장판의 대성공에 힘입어 비로봇물의 가능성을 타진한 토에이의 결정으로 인해 브라운관에 데뷔하게 된다.

ⓒ 松本 零士 All rights reserved.

풍요로움에 도취된 나머지 부패하고 타락한 지구인들로 가득찬 29세기의 지구에 어느날 정체불명의 구체가 떨어진다. 외계문명인 마존의 지구침공을 알리는 이 사건은 다이바 박사에 의해 그 의도가 밝혀지지만 관료주의에 찌든 지구연방의 정치인들은 경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결국 다이바 박사는 암살당하고., 하록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살아남은 박사의 아들 타다시는 해적선 아르카디아호에 탑승한다. 오래전부터 지구연방의 무사안일한 태도를 경고하기 위해 자발으로 해적이 된 하록은 일급 수배자가 된 채 마존과 맞서는 외로운 싸움을 시작한다.

[우주해적 캡틴 하록]의 이야기는 독창적이었고, 특히 고독한 사나이의 싸움이라는 측면에서 남성팬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친구 토치로의 영혼이 담긴 아르카디아호와 각자 나름의 사정을 가지고 하록의 부하가 된 승무원들의 이야기는 웅장한 스케일 만큼이나 흥미진진했다. 과묵한 카리스마가 작렬하고,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해 스스로 해적의 길을 택한 아나키스트 하록은 그렇게 수많은 소년들의 로망이 되었다.

ⓒ 松本 零士/ TOEI. All rights reserved.

국내에서는 1980년 8월 14일 TBC를 통해 [애꾸눈 선장]이라는 제목으로 매주 목요일에 방영되었는데, 당시 군사정권하에서 반정부적인 인물이 주인공인 만화영화가 공중파를 통해 방영되었다는 점은 상당히 흥미롭다. [애꾸눈 선장]은 제목이 어린이들 용으로는 다소 부적절하다는 지적으로 인해 방영 4회차 부터 '순정모험만화 [하록 선장]'으로 바뀌었으나 역시나 석연치 않은 이유로 갑작스레 종영, 9월 3일 부터는 [원탁의 기사]로 프로그램이 대체되었다.

ⓒ 동아일보 All rights reserved.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은 아직 [우주해적 캡틴 하록]이 방영되기 전인 1980년 7월 25일에 김대중 감독(대통령 아님 -_-:;;)의 [우주대장 애꾸눈] 개봉되었다는 것인데, 서기 3천년대의 우주를 배경으로 한 이 애니메이션은 과학이 고도로 발달된 지구의 악당들이 라벨성의 지수벨라 여왕과 결탁해 지구를 정복하려 하자 이에 맞서는 애꾸눈 선장의 활약을 그렸다. 말할 것도 없이 등장인물의 캐릭터는 모두 [우주해적 캡틴 하록]을 베낀 것이며 주인공 애꾸눈의 경우는 하록과 [캡틴 퓨처]의 주인공을 교묘히 뒤섞은 괴인이라는 점이다.

ⓒ 중앙영화 All rights reserved.

이후 1981년부터 다시 재방영을 시작한 [우주해적 캡틴 하록]은 여러차례 공중파와 케이블방송을 통해 국내 팬들에게 더욱 친근하게 다가왔는데, 그 와중에서 일본만화가 정식으로 수입되지 못하는 상황을 틈타 국내 만화가들이 스스로의 창작물을 만드는 기현상이  [우주해적 캡틴 하록]에게도 나타났다.

1980년대 문고판 만화시장에서 다이나믹 콩콩 코믹스와 양대 산맥을 이루었던 현대 코믹스는 정민수 작가를 내세워 [우주의 해적 하록선장]이란 만화책을 발간했다. 일본만화의 해적판에 가까운 라인업이 주를 차지했던 다이나믹 콩콩과는 달리 현대 코믹스의 빙그레문고 레이블은 대부분이 창작물이었는데, 이세호의 마징가 시리즈나 유림의 뽀빠이 등 캐릭터 무단사용의 흑역사를 가지고는 있지만 스토리와 작화 자체는 작가의 독창적인 것이라는 점에서 상당히 흥미로운 접근이 가능하다.

마츠모토 레이지의 [우주해적 캡틴하록]은 한 때 '우주해적 캡틴 하-록'이란 제목으로 마쓰모토 지음, 김영옥 번역으로 발간된 적이 있는데, 당연히 이 작품이 정식 라이센스를 받았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해 보인다. 따라서 [우주의 해적 하록 선장]은 국내 메이저 만화사에서 출간한 유일무이한 작품으로서 이제는 구하기 힘든 희귀한 만화 중 하나다.

우선 작화의 퀄리티를 살펴보면 마츠모토 레이지 작화의 특징을 잘 살리면서도 보다 섬세하고 가는 선을 살린 것이 눈에 띈다. 어떤 의미에서의 해적판 만화는 소재는 가져다 쓰면서 매우 질낮은 퀄리티의 작화로 대충 그려넣은 작품도 있는데 적어도 [우주의 해적 하록선장]은 오리지널에 버금가는 솜씨를 보여준다.

아쉬운건 [우주의 해적 하록선장]의 내용이다. 워낙 방대한 원작을 단 한권의 분량에 넣으려다 보니, 이야기의 초점을 잡지 못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정민수 작가는 [우주의 해적 하록선장]을 레이지의 오리지널 코믹스가 아닌 TV판 애니메이션에 기초를 놓았다. 작품의 배경에 대한 간단한 내레이션이 끝나면 TV판과 동일하게 마유를 만나러 위험을 무릅쓰고 지구로 돌아온 하록이 지구 방위군에 체포되어 사형 직전 아르카디아호에 구출되는 에피소드로 시작된다. (참고로 마유는 마츠모토 레이지의 코믹스판에는 존재하지 않는 캐릭터다)

 

ⓒ 松本 零士 All rights reserved.

위가 [우주의 해적 하록선장]이며 아래는 마츠모토 레이지의 [우주해적 캡틴 하록]이다. 두 장면 모두 다이바 박사가 마존의 암살자에게 살해당하는 장면이지만 연출의 방식은 확연히 다르다. 이는 단순히 일본의 원본을 그대로 모사해 해적판을 만들었던 다이나믹 콩콩과 작가의 오리지널 창작물로 승부했던 현대 코믹스의 결정적인 차이이기도 하다.

 

이어 타다시의 합류와 마존과의 결전이 매우 빠른 템포로 진행되는데, 문제는 인과관계의 생략이 너무 많고 진행이 매끄럽지 않아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인지 종잡을 길이 없다. 차라리 [마징가 제트]의 한국판을 그린 이세호 작가처럼 어느 특정 에피소드만을 뽑아내어 충실한 각색으로 완성도를 높히는 편이 훨씬 좋았지 않나 싶다. 

저작권의 침해의 논란을 잠시 떠나 1980년대의 한국식 컨버전 만화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매우 흥미로운 작품이나 재미면에 있어서는 완성도가 다소 떨어지는 작품이다. 마츠모토 레이지의 원작과는 달리 TV판의 마유를 등장시켜 스토리를 진행시킨 의도는 좋았지만 이러한 TV판의 세계관을 집약시킬만한 각색의 능력이 작가에게 부족했던 것 같다. 뭐 그렇더라도 [우주해적 캡틴 하록] TV판의 유일한 미디어믹스 버전이 다름아닌 한국의 2차 창작물로 출간된 점은 시대의 특수성이 낳은 신기한 문화현상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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