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관한 잡담

극장개봉작의 불편한 진실

페니웨이™ 2014. 3. 1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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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블로그를 7년째 해오면서 느끼는 건 영화에 대해 상세한 정보를 가지고 관람에 임하는 관객의 수는 정말 적고, 대신 현란한 광고문구에 홀라당 넘어가는 관객의 수는 생각보다 훨씬 많다는 점이다. 일례로 "극장 개봉작"이란 문구가 당신에게 주는 느낌은 어떠한가? 일단 극장에 걸린 영화라면 무수히 제작되는 영화들의 경쟁을 뚫고 뽑힌 영화일 것이니 어느 정도 컷오프를 통과한 영화일 것이고 그렇기에 적어도 극장에서 상영할 만큼의 최소한의 '상품성'이 확보되었을 것이라는 무언의 암시를 깔아주는 역할, 그것이 '극장 개봉작'이라는 마법의 단어가 지닌 의미다.

사실 이건 8,90년대 비디오 시장에서 제법 잘 통하던 수법이었다. 상영관에서 반짝 상영을 하고는  재빨리 철수해 "개봉작" 타이틀을 달고 비디오로 출시하는 것이다. 이같은 관행의 매커니즘은 개봉관 측에서 수입사로부터 리베이트를 받고 관객이 거의 들지 않는 심야 상영대에 1회만 필름을 걸고는 비디오로 직행, 수입사는 "xx극장 개봉작!"이라는 거창한 문구와 함께 납품단가를 확 올려 시장에 풀어버리는 것이다. 렌탈 시장을 찾는 소비자들은 '어? 이런 영화가 개봉했었나? 내가 놓쳤나 보네"하는 심정에서 빌려보게 된다. (사실 이런 수법을 자세히 살펴보면 유독 자주 등장하는 xx극장의 이름이 눈에 띈다. 물론 이는 멀티플렉스 프렌차이즈가 아닌 개인소유의 극장이었기에 가능했겠지만)

그런데 시대가 변하고 인터넷으로 다량의 정보가 쏟아지며, 새로 개봉되었거나 심지어 개봉전의 영화가 인터넷 상에 릴되어 풀리는 세상에서도 이같은 관행이 계속된다면 어떨까? 놀랍게도 이는 사실이다. 바로 IPTV의 보급과 맞물려서 말이다.

얼마전 [동방불패]가 개봉되었다. 리마스터링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개인적으로도 암표를 사서 관람했던 학창시절의 추억이 담긴 영화이며, 와이프는 이 작품만 수십번을 봤다고 할 정도로 마니아다. 당연히 재개봉을 반길 수 밖에 없지 아니한가. 그런데 왠 걸. 개봉관을 찾을 수가 없었다. 가까스로 발견한 서울 모 상영관의 시간표를 보니 대략 자정을 기하는 시간대에 딱 한 타임이 잡혀있는데 매진크리다. 뭔가 이상하다 싶어 극장에 전화를 했더니,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는 상영이라 매진처리했단다. 그럼 일반개봉은 도대체 언제냐고 따져 물으니, 자기네 극장에선 그럴 생각 없단다. 한마디로 개봉을 안하겠다는 얘기다.

얼핏 보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의 비밀은 곧 얼마 지나지 않아 풀렸다. 개봉 다음날 굿다운로드에 [동방불패]의 다운로드 가격이 7000원으로 책정되어 풀린 것이다. 무려 "극장 동시개봉"으로 말이다. 개봉관의 실체가 없는데도 개봉작으로 당당히 선전하는 비상식적인 행태의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재 포털을 비롯한 IPTV 등의 이른바 굿다운로드 서비스는 극장 개봉작의 경우에는 10000원, 재개봉영화의 경우에는 7000원의 가격을 책정해 놓고 있다. 한마디로 조금이라도 '소비자들에게 돈을 더 뜯어내기 위해' 있지도 않는 개봉 기록을 남겨 명목상의 개봉작을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관객들의 실수요는 외면한채 그냥 편하게 돈이나 벌겠다는 속셈이다.

이 같은 사례는 비단 [동방불패]에서만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흑협]이나 [니키타]의 재개봉은 거제에서만 반짝 상영을 했으며, 애니메이션 [표적이 된 학원]의 경우는 서울 신도림 디큐브에서 새벽 2시 15분 대에 상영시간을 떡하니 걸어놓고는 상영관도 배정해 놓지 않았다.

이렇게 '거짓 개봉'으로 소비자를 속이는 일은 비단 이런 불편만으로는 끝나지 않는다. 드문 경우이긴 하지만 새벽 시간대 관객의 눈을 피해 기습 개봉을 시도하다가 재빨리 예매를 한 관객의 항의를 받아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영사기를 돌리는 경우도 보고되고 있는데, 대부분 그들이 받은 판본은 IPTV용 파일이며, 해당 관객은 극장의 대형화면에서 깍두기가 몰아치는 아스트랄한 경험을 한 뒤 새벽의 찬공기를 맞으며 눈물과 함께 귀가했다는 슬픈 경험담도 있다.

게다가 10000원이라는, 어떻게 보면 극장 관람료보다 비싼 거금을 들여 다운받은 영상이 기가막힐 정도로 조악한 화질이라는 불평도 심심찮게 들린다. 정당한 댓가를 지불한 사람이 어둠의 경로로 불법 동영상 파일을 받아 본 사람보다 못한 화질로 영화를 감상해야 한다는 건 도대체 무슨 코미디인가.

불법 다운로드와 체인망의 획일화, 그 밖에도 부가판권시장이나 VOD시장으로의 진출이 까다로운 법 구조상 한국의 영화시장이 매우 왜곡되어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이건 아니지 않나. 도대체 언제적 '극장개봉작' 드립에 아직까지 관객들이 놀아나야 하는 것일까. 시대가 변하는 만큼 관행과 시스템도 재정비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심심찮게 천만 관객돌파 소식이 들려오는 한국 영화시장의 거대한 파이가 무색하지 않도록 그에 걸맞는 수준의 컨텐츠 공급이 선행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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