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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 초콜릿만 가득한 선물세트같은 재난 블록버스터

페니웨이™ 2009. 11. 13.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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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미약한 수준의 스토리 소개가 있습니다.


'블록버스터 전문감독'이란 꼬리표가 항상 따라다니는 롤랜드 에머리히의 작품들을 보면 드라마의 구성보다는 영화의 스케일이 먼저 떠오르는게 사실이다. 지독한 설정의 오류 투성이인 [인디펜던스 데이]의 메가톤급 히트가 백악관을 박살내는 경이적인 비주얼의 압도감에서 뿜어져 나온 결과였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듯이 그의 영화는 언제나 비주얼이 스토리의 단점을 커버하는 양상을 보였다.

그나마 [투모로우]를 통해 이제야 드라마적 서사구조에 있어서도 제법 맛깔스러움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작년 [10000 B.C.]로 그는 평단과 관객으로부터 가혹하리만큼 혹독한 평가를 감수해야만 했다.

나름 우호적인 평가를 받았던 [투모로우]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앞섰던 것일까. 이제 절치부심의 자세로 준비한 [2012]는 예고편에서부터 재난 블록버스터의 거대한 위용을 뽐낸다. 사실 2009년 최고의 기대작이었던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이 평범해 보일 정도로 웅장한 CG 화면이 압권인 이번 작품은 고작 백악관 정도가 아니라 아예 지구 전체를 박살낼 기세로 스크린을 에워싼다. 마치 이 작품이 영화사의 마지막 재난영화라도 될 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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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umbia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실제로 [2012]는 재난 블록버스터가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모두 보여주는 영화다. 단, 스토리를 제외하면.

저 유명한 해양재난영화의 걸작 [포세이돈 어드벤처]에서부터 [대지진], [코어], [아마겟돈], [단테스피크] 그리고 에머리히 자신의 작품이었던 [투모로우]까지 [2012]의 비주얼은 역대 내로라하는 재난영화의 클라이막스를 모두 끌어다 놓았다. 거대한 쓰나미가 몰려오고 화산재가 날아들며, 지반이 쩍쩍 갈라지면서 빌딩이 도미노처럼 쓰러지는 파괴장면들은 세상에서 가장 짜릿한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아찔하며 황홀하기까지 하다. 이 정도로 쉴새없이 몰아치는 익스트림 CG의 화면을 우리는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다.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대한 기대치를 여기까지만 맞추어 놓은 관객이라면 더 생각해 볼 것도 없다. 당장 극장으로 달려가라. [2012]는 영화의 내용을 떠나 극장 사수가 정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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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umbia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그러나 그 이상을 기대했다면 이 영화는 많이 아쉬운 작품이다. [2012]의 스토리는 기대 이하로 허술하고 지나치게 전형적이다 못해 진지함 속에서도 웃음이 터져 나올 정도다. 아이와 개는 절대 죽이지 않는 헐리우드 영화의 기본적인 공식을 고지식하게 따르는 건 그렇다 치자. 스토리가 얼마나 허술한가하면 아 글쎄 전 세계적인 재앙에 맞춰 대비책을 세우는 미국측 과학자가 달랑 한명 뿐이다.

엔진 하나 달린 경비행기로 고작 4시간짜리 훈련을 받은 의사양반이 불붙은 화산재가 비오듯 쏟아지는 상황에서 다엔진 소형 비행기를 자유자재로 몰더니만 급기야 대형 화물 비행기의 부조종사까지 맡는다. 열거하자면 한도끝도 없지만 이혼한 전처와 그녀의 현남편, 전남편이 함께 다녀야만 하는 쉣스런 상황에서 3자간의 사랑타령으로 관객에게 감동을 요구하는 건 좀 욕심이 지나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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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umbia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2시간 30분에 이르는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후반부를 지탱해줄 클라이막스는 너무 빈약하다. 실컷 잘 부려먹은 캐릭터도 내용상 전개를 위해 거추장스럽다치면 가차없이 제거된다. 감독의 손에 의해. [딥 임팩트]처럼 캐릭터가 살아 숨쉬는 휴먼드라마로 가기엔 줄거리의 배치가 지나치게 산만하지만 그렇다고 영화의 셀링 포인트 (Selling Point)인 비주얼을 포기할 순 없는 노릇. 결국 [2012]는 언제나 그래왔듯 비주얼이 스토리를 압도하는 영화일 수밖에 없다. 감독이 CG의 절반만큼이라도 스토리에 신경을 썼더라면 [2012]는 적어도 [투모로우]급의 대접은 받을 수 있는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이로써 롤랜드 에머리히의 장단점은 또한번 명확해졌다. 문제는 이러한 장점이 날이 갈수록 약발을 잃어가는 가운데 단점은 더욱 부각된다는 사실. 역시나 그의 필모그래피 중 최고 걸작은 [투모로우]로 기억되고 말 가능성이 더 커졌다. [2012]는 분명 재난영화의 종합선물세트같은 작품이지만 마치 상자속에 초콜릿만 가득한 선물세트를 받은 기분이다. 먹다보면 단맛에 이내 질려버리는 것처럼.


P.S:

1.젠장. [해운대]도 천만 돌파했는데 그까이꺼.

2.결론. 그때는 몰랐는데, 올해의 재난 블록버스터는 [노잉]의 압승이다.

3.주인공 아들의 이름이 '노아'인데, 무슨 의미인지는 아마 알것이라고 생각한다. 성서 창세기에 기록된 '대홍수'를 살아남은 유일한 생존자 가족의 가장이 바로 '노아'다.


* [2012]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Columbia Pictures 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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