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작열전(怪作列傳)

괴작열전(怪作列傳) : 성성왕 - 홍콩판 킹콩은 어떤 영화인가?

페니웨이™ 2009. 3. 11.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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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작열전(怪作列傳) No.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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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괴작열전 시간에 두 차례에 걸쳐 '킹콩'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소개해 드린 것 기억나시나요?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괴수들 중에 킹콩만큼이나 다양하게, 다국적으로 패러디 된 캐릭터도 드물겁니다. 저에게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를 안겨주었던 [퀸콩]도 그렇지만 한국에서도 [킹콩의 대역습]이란 작품을 만들었을 정도니 참 다방면으로 활용이 가능한 괴수랄까요. 한 두편으로 끝내도 좋겠지만 이번 시간에는 홍콩에서 만든 킹콩 영화 한편을 살펴보겠습니다.

지난번에도 얘기한 것처럼 존 길러민의 리메이크작 [킹콩(1976)]이 개봉되던 해에는 무려 3편의 킹콩영화가 제작되었습니다. 그 중 [킹콩의 대역습]은 별 문제없이(라기 보단 아무도 개봉여부에 신경을 안썼다는거...) 개봉되었지만 [퀸콩]은 파라마운트사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개봉을 못하고 있다가 2000년이 되서야 세상빛을 보게 되었다는 거죠.

이러한 킹콩 붐에 힘입어 이듬해인 1977년에는 홍콩 영화의 산실인 쇼 브라더스 사에서 장르영화로의 다변화 시도의 일환으로 최초의 괴수영화를 내놓았으니 그 이름도 유명한 [성성왕(猩猩王)]이 되겠습니다.

ⓒ Shaw Brothers. All rights reserved.

올드팬들에게는 너무나도 낯익은 쇼 브라더스 사의 로고. 가만히 보면 워너 브라더스의 그것과 너무나도 유사하다. 이 로고는 훗날 무협영화 매니아인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자신의 퓨전 무협극 [킬 빌]에서 오마주로 사용했다.


이 [성성왕]은 쇼 브라더스의 마지막 전성기를 특징짓는 작품으로서도 적잖은 의미를 지니는 괴작입니다. [슈퍼 인프라맨] 때에도 잠깐 언급한 적이 있었지만 1970년대 중반부터 전통무협영화만으로는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들다는 것을 자각한 쇼 브라더스가 여러 장르물에 손을 대면서 벤치마킹을 시도하게 되는데요, [슈퍼 인프라맨]이 일본 특촬물의 장르적 특징을 중국인의 취향의 맞게 로컬라이징했다면 [성성왕]은 헐리우드의 [킹콩]과 [타잔], 그리고 [정글북] 등을 뒤섞어 놓아 만든 괴수물입니다.

[성성왕]은 [퀸콩]이나 [킹콩의 대역습]보다는 영화사적 위치에서 좀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요, 이는 이 작품이 단지 베끼기에만 급급한 것이 아니라 홍콩 영화 특유의 모험적인 시도를 곳곳에서 엿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줄거리를 잠시 보실까요?

평온하던 히말라야 산맥의 한 마을은 갑자기 나타난 거대 유인원의 습격 때문에 쑥대밭이 되고 이 괴사건은 신문에 대서특필되어 사업가 루 티엠의 눈에 띄게 됩니다. 한편 바람난 여친때문에 실의에 빠져 있던 홍콩의 모험가 자니(이수현 분)는 루 티엠의 연락을 받아 히말라야의 괴물을 확인하러 가자는 제안에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동참하지요.

ⓒ Shaw Brothers/Miramax Home Entertainment.All rights reserved.


탐험 도중 홀로 남겨진 자니는 산속에서 닥치고 잠복중이던 고릴...아니 성성왕에게 잡힐 위기에 처하자 그대로 떡실신하게 됩니다. 그때 '아아아아아~~' 소리와 함께 등장한 것은 타잔... 아니 왠 헐벗고 굶주린 금발의 여인네였습니다. 알고보니 아웨이(에블린 크레프트 분)라는 이름의 그 여인은 어릴적 비행기가 추락하는 바람에 부모를 여의고 이를 어여삐 여긴 성성왕에 손에 키워져 살아온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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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진 곳에 다니는 사람이라곤 자신들 뿐인 이 피끓는 청춘남녀는 곧 사랑에 빠지고 이를 괴씸히 여긴 성성왕이 때론 투정을 부리지만 아웨이의 한마디에 성성왕은 화를 풀고... 이들을 급기야 홍콩으로 데려다 주기위해 산을 내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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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루 티엠은 성성왕을 붙잡아 돈을 벌기 위해 구경거리로 만들고, 이에 더해 아웨이에게 나쁜짓(?)을 하기 위해 그녀를 유인합니다. 이를 목격한 성성왕은 급기야 분노가 폭발해 탈출을 감행, 홍콩시내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결국 모두는 비극적 결말을 향해 다가간다는 알흠다운 내용이 되겠습니다. (뭔소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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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다시피 기본적인 골격은 1933년작 [킹콩]에서 따온 것이긴 합니다만 [성성왕]은 나름대로의 오리지널리티를 유지하는 작품입니다. 그 중 몇가지만 고려해 보면,


① 고릴라의 변종이 아니라 거대화 된 북경원인임

이는 성성왕이 킹콩과는 다른 종자임을 말해주는 것으로서 나름 아류작의 냄새를 지우려 한 제작진의 센스가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② 여주인공과 성성왕의 관계

사실 [킹콩]의 원래 설정은 제물로 바쳐진 도시처녀를 사랑하게 된 킹콩이었지만, [성성왕]에서의 아웨이는 애초부터 성성왕의 손에 길러진 자식같은 존재입니다. 따라서 성성왕과 아웨이는 서로 이성으로서 끌리는 것이 아니라 부녀간의 애정에 더 가깝다고 하겠습니다. 아웨이에게 있어 이성에 눈을 뜨게 해준건 성성왕이 아니라 자니거든요 (부끄..)


③ 결말의 변화 (스포일러 있음)

여타의 [킹콩] 시리즈와 [성성왕]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결말입니다. '사랑' 때문에 홀로 목숨을 잃었던 킹콩과는 달리 성성왕에서는 성성왕 그 자신과 여주인공, 그리고 악덕 사업가 모두가 목숨을 잃는 초비극으로 끝을 맺습니다. 홍콩 도심의 야경을 쳐다보며 죽은 아웨이를 끌어안은 자니의 모습으로 The End를 선언하는 영화의 라스트씬은 홍콩영화 특유의 비장미를 느낄 수 있는 [성성왕]만의 독특함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러나 역시나 [성성왕]의 전체적인 설정 자체는 [킹콩]의 그늘을 크게 벗어나지는 못합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하이라이트 장면에서 고층빌딩을 올라가는 성성왕의 모습인데요, [퀸콩]에서도 영국의 빅벤을 타고 올라가는 것으로 패러디 될 만큼 [킹콩]의 상징적인 시퀀스인지라 이러한 상황설정은 오리지널 [킹콩]을 그대로 답습한 한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게다가 영어 제목인 [The Mighty Peking Man]은 1949년작 [마이티 조 영(Mighty Joe Young)을 따라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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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나 홍콩영화에서 조차도 '백인우월주의'의 논란이 되었던 '괴수의 여인=금발미인'의 컨셉을 그대로 가져다 썼다는 것은 여러모로 아쉬움을 남깁니다. [공룡 백만년]의 라켈 웰치를 연상케 하는 주인공 에블린 크레프트의 초저예산 19금 필이 나는 코스튬은 당시 홍콩영화로서는 꽤나 시원하게 획기적인 의상이 아니었나 싶은데요, 이 역시 헐리우드 영화에 적잖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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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성성왕]은 당시 기준으로는 꽤나 정교한 미니어쳐의 사용으로 완성도를 높혔으며 도심파괴 장면에 러닝타임의 1/3이상을 할애하면서 액션성을 크게 강화하는 등 자구적인 노력을 많이 기울였습니다. 또한 홍콩영화의 전형적인 스타일인 빠른 편집과 과장법, 생각외로 고어적인 묘사 등도 [성성왕]에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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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사실은 [슈퍼 인프라맨]에 이어 꽃미남 배우 이수현이 다시금 이 쇼 브라더스의 괴작스런 실험작에 주연으로 등장한다는 사실이며 아울러 감독은 1967년 [사랑의 스잔나]로 아시안 필름 페스티벌에서 최우수 작품상까지 받은 바 있는 하몽화 감독이라는 점입니다. 무협이면 무협, 액션이면 액션, 멜로면 멜로.. 정말 가릴 것 없이 거의 모든 장르를 두루 섭렵한 하몽화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도 대단히 유니크한 작품이 바로 [성성왕]이지요.

이 작품은 일본에서도 [북경원인의 역습]이란 제목으로 수입상영된 바 있으며 1999년에는 헐리우드의 영화매니아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에 의해 배급되어 미국에서 재개봉되기도 했습니다. 영화 평론가 로저 이버트가 [슈퍼 인프라맨]에 대한 호평을 하게 된 것이 바로 [성성왕]을 관람한 직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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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판 [북경원인의 역습] 포스터.


아무튼 이 작품은 1977년 개봉당시에도 나름 평가가 괜찮았고, 흥행성적도 그다지 나쁜편은 아니었습니다만 이러한 시도도 결국 저물어가는 쇼 브라더스의 영광을 되살릴 수는 없었다는 것이 왠지 슬프군요. 역시 쇼 브라더스는 전통적인 고전무협영화들에서 그 진가를 발휘했던 것 같습니다.





* [성성왕]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Shaw Brothers/Miramax Home Entertainment. 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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