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ㄴ

누들 - 대화는 언어가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것

페니웨이™ 2008. 8. 23. 10:00
반응형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단관개봉시절, 유명한 영화의 좌석이 매진되어 꿩대신 닭이라고 인근 극장의 인기없는 영화를 보았다가 의외로 재미있었던 추억을 가진 분들이 계시는가? 비록 예정에는 없었지만 뜻밖에 괜찮은 영화를 발견하고는 나름 뿌듯했던 기억이 필자에게도 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우리 극장가에는 멀티플렉스가 들어서면서부터 인기작을 두 세 개의 상영관에서 대량으로 상영하는 바람에 이제는 매진되어 계획한 영화를 놓친다거나 다른 극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풍경을 더는 찾아볼 수 없다. 그나마 소외된 영화에 눈길을 돌릴 만한 작은 가능성마저도 사라진 셈이다.

헐리우드 대작들이나 국내 영화중에서 그나마 돈 좀 들였다고 알려진 작품이 아니고는 그 많은 상영관 중 한자리도 꿰차기 힘든 이마당에 제3세계의 알려지지 않은 무수한 작품들이 쥐도새도 모르게 사라지는 현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그나마 최근에 생긴 몇몇 예술영화 전용관에서 분발해주고는 있지만 서울 한복판에 사는 필자도 한달에 한번 갈까말까할 정도인데, 지방에 사는 분들은 오죽 답답할까. 이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 [누들]은 간만에 접할 수 있는 제3세계의 영화였다.


 

    1.이스라엘 영화의 저력  


국적이 이스라엘로 되어 있는 이 작품은 몬트리올 영화제 관객상을 수상한 저력을 내세우며 여름방학 틈세시장을 공략하려고 했지만 여전히 덜 알려진 영화다. 네이버영화의 관객평점은 무려 9점대를 넘어섰는데도 말이다. 사실 이스라엘 영화하면 무척 생소한 것이 사실이나 올 칸 영화제는 [젤리피쉬]라는 이스라엘 영화에 황금카메라상을 안겼으며 [레몬트리]라는 작품은 베를린 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하는 등 국제무대에서 제법 인정받고 있는 추세다. 올해 한국에 수입된 이스라엘 영화만해도 언급한 작품들 외에 [밴드비지트]를 더하면 무려 4편이나 된다. 이제 이스라엘 영화가 점점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 증거다.


 

    2.탄탄한 구성  


어떻게 보면 [누들]이 주목받지 못하는 것은 마케팅적인 측면에서도 문제가 있긴 하다. 영화속 장면을 적당히 짜집기한 티가 역력한 포스터는 [누들]이 단순히 한 동양인 아이와 백인여성의 우정을 다룬 뻔한 가족영화 정도로 보이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들]은 그리 간단한 작품이 아니다. 우선 주인공 미리의 개인사부터도 생각보다 복잡하다. 미리는 남편 두 명을 모두 사별한 지독히도 불행한 여인으로서 내심 그녀를 좋아하는 형부와 늘 까칠하게 말하는 언니 길라, 그리고 조카가 함께 살고 있으며 그나마 길라와는 늘 티격태격 다투기만 한다. 그런 그녀가 금방 돌아오겠다며 아들을 남겨두고 급히나간 가정부와 연락이 두절되면서 더욱 환장할 입장에 처한다. 꼬마(누들)는 히브리어는 물론이고 영어도 못해 어디에 사는지, 심지어 이름도 알 수 없다.

ⓒ Norma Productions/EZ Films. All rights reserved.


이제 영화는 대단히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과연 소년의 엄마는 어떻게 된 것일까? 가정부의 소재를 추적하는 과정을 통해 미리와 길라 사이의 갈등요인이 드러나면서 영화는 점차 어른들의 성장 드라마로 변모한다. 이에 더해 막판에는 가슴 졸이게 만드는 스릴까지 선사하면서 [누들]은 1시간 30분 남짓한 시간동안 탄탄한 구성으로 관객들의 주의를 사로잡는다.


 

    3.대화  


[누들]을 관통하는 주제는 바로 '대화'다. 이 영화에서는 히브리어, 영어, 중국어 무려 3개국어가 사용되지만 정작 미리와 소년사이에는 대화가 이뤄지질 않는다. 소년은 영어와 히브리어를 모르고, 미라와 다른 이들은 중국어를 모른다. 그러나 비단 언어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대화가 되지 않는 것일까? 아이러니하게도 언니 길라와 형부 이지는 부부임에도 대화에 어려움을 겪는다. 오히려 이지는 처제인 미리와의 대화에서 편안함을 느끼며 이런 둘의 사이를 길라는 또다른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오해는 오해를 낳고 밀리와 길라의 사이도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

ⓒ Norma Productions/EZ Films. All rights reserved.


결국 언어는 양자간의 대화에 있어서 절대적인 장벽이 아니라는 얘기다. [누들]에서 미리와 누들은 끝까지 허심탄회한 대화를 '말'로서 나누지는 못한다. 그러나 두 사람이 비로서 서로에게 마음을 열게 되었을 때, 누들이 미리의 전 남편에 대해서 묻고, 그녀가 담담하게 몸짓으로 그녀의 전 남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씨퀀스는 '언어'없이도 두 사람이 진심으로 대화를 나누는 실로 가슴뭉클한 장면임에 틀림없다.


 

    4.배우들의 출중한 연기  


ⓒ Norma Productions/EZ Films. All rights reserved.


당연하게도 [누들]에 등장하는 배우들은 한국관객들에게 있어서 생소한 배우들이다. 그렇지만 모두가 알짜배기다. 미셸 페이퍼와 세프론 버로우즈를 섞어놓은듯한 외모의 밀리 아비탈은 롤렌드 에머리히의 [스타게이트]나 로버트 벤튼 감독의 [휴먼 스테인] 등 헐리우드 문턱을 넘나드는 배우로서 슬픈 과거를 극복해나가는 여인의 모습을 잘 소화해내고 있으며 아울러 길리역의 아나트 왁스먼은 [누들]의 또다른 주역으로서 어찌보면 가장 복잡한 내면을 지닌 캐릭터를 무난하게 보여주어 영화의 완성도에 공헌하고 있다. 또한 2000:1의 경쟁률을 뚫고 발탁된 아역배우 바오치 첸도 또래 아이들이 표현하기 힘든 슬픔과 환희의 감정을 리얼하게 표현하며 감동적인 연기를 선사한다. 역시 배우들의 유명세가 연기와 직결되는 것은 아닌듯.


    5.감동이 곧 경쟁력이다  


최근 한국영화를 보노라면 기술적인 면은 이미 헐리우드 수준에 근접해 가고 있다고 생각된다. 아니 오히려 상대적으로 저예산이지만 헐리우드에 버금가는 화면빨을 수놓는 [놈놈놈]같은 작품을 고려한다면 그 이상의 경쟁력을 갖췄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진정 영화강국으로서 인정받기 위해 필요한건 인간적인 매력이 풍기는 드라마를 얼마나 잘 보여주느냐가 아닐까. 감동을 느끼는데 필요한 요소들은 모든 인간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가치관일테니 말이다. 간단하면서도 관습적인 소재를 풍부한 디테일과 설득력있는 내러티브로 그려낸 [누들]은 가뭄의 단비와 같은 청량감을 선사해줄 작품으로 손색이 없다. 관객들의 접근성이 다소 떨어지는 개봉환경이 아쉽긴 하지만 지금이라도 조금씩 소외된 제3세계의 영화에 관심을 가져보길 권한다.


P.S: [누들]의 관람을 위해 기꺼히 예매권을 선물하신 프리비젼의 고영삼님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립니다.


* [누들]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Norma Productions/EZ Films. 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