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페니웨이 (admin@pennyway.net)
파괴와 구원, 그 종이 한장의 차이
폴 토마스 앤더슨(이하 PTA)은 늘 관객을 탈진 직전까지 몰아붙이는 묘한 능력이 있다. 그의 영화를 보노라면 무언가 내면에서부터 스멀스멀 올라오는 끈적한 기운이 느껴짐과 동시에 기괴하게 비틀린 군상들이 등장해 복잡한 갈등의 양상을 일궈낸다. 다각적인 접근과 해석이 필요한 영화작법의 특이성은 [마스터]와 [인히어런트 바이스]를 거치며 한층 더 가속화되고 있다.
오히려 PTA는 그만의 이러한 영화적 특징으로 인해 (상당수의 비평가들이 포함된) 탄탄한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으며, 그렇기에 대배우 다니엘 데이-루이스가 자신의 은퇴작이라고 공언한 [팬텀 스레드]는 더욱 더 주목을 받았다.
ⓒ Focus Features, Annapurna Pictures, Perfect World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1950년대, 영국 고위층 부녀자들의 의상을 디자인하는 레이놀즈 우드콕은 병적인 완벽한 일처리로 소문이 자자한 초일류다. 까다롭고 신경질적인 그는 의상실이라는 그의 작업 공간에서 왕처럼 군림하고 있으며 이 세계의 룰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은 냉정하게 몰아낸다. 레이놀즈의 주변에서 유일하게 그의 세계를 이해하는 사람은 누이인 시실 뿐이다.
그러던 어느날 레이놀즈는 한 식장에서 자신의 이상향에 딱 맞는 여성인 알마를 발견한다. 순순히 레이놀즈의 모델이 되어 그의 집에 거처하게 된 알마는 얼마 지나지 않아 레이놀즈가 구축한 왕국의 삶이 자신과 맞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레이놀즈는 자신에게 연정을 품고 있는 알마의 의중을 외면하고 이내 싫증을 느끼지만 알마는 그를 떠나기 보다는 자신의 욕망을 실현시키기 위해 극단의 방법을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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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텀 스레드]는 PTA의 작품 중 처음으로 미국 밖의 시대상을 조명한다. 그래서일까? 본 작품은 PTA의 영화같으면서도 이례적인 부면들이 상존한다. 주요 등장인물을 레이놀즈-엘마-시실로 간소화시켜 인물간의 갈등을 비교적 단순하게 구성했다. 서사의 폭이 좁아진 만큼 영화는 좀 더 쉽게 이해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관객을 짓누르는 압박감에서 해방된 것은 아니다. 영화는 여전히 기괴하고, 비틀린 캐릭터의 심리와 욕망, 그들의 상호관계를 다룬다. 극 중 인물인 레이놀즈 만큼이나 병적인 집착이 느껴지는 영화의 미학적 완성도는 보는 내내 영화의 품격이란 무엇인지를 관객에게 되묻는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도대체 지금 내가 지금 무엇을 본 것인가’, ‘내가 이해한 것이 과연 맞는가?’를 자문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영화의 메시지는 당혹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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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알마는 레이놀즈에게 그런 행동(!)을 하게 되는가? 레이놀즈가 알마의 행동을 알면서도 받아들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영화를 굳이 액자식 구성으로 배치한 의도는 뭔가? 이 영화는 멜로영화인가? 아니면 멜로를 가장한 스릴러인가? 등등 [팬텀 스레드]가 함유하는 담론은 다양하다.
PTA 영화의 묘미는 여기에 있다. 정상적인 범주를 벗어난 상황을 통해 인간의 본질을 들여다 봄으로서 영화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도 다양한 반응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이러한 PTA의 작법은 이번 [팬텀 스레드]를 통해 좀 더 대중적인 방향으로 진화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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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3관왕의 위업을 달성한 다니엘 데이-루이스의 은퇴작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배우들의 연기는 메혹적이라는 단어만으로는 부족할 만큼 엄청나다. 배우로서의 완벽주의가 의상 디자이너라는 형태로 치환된 듯한 레이놀즈 우도콕의 캐릭터는 다니엘 데이-루이스에게 있어 맞춤 정장처럼 꼭 들어맞는다.
다니엘과 더불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레슬리 맨빌도 훌륭하지만 더욱 놀라운건 대배우의 상대역으로서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불꽃튀는 연기대결을 펼친 알마 역의 비키 크리엡스다. 아마 필자를 포함한 많은 이들에게 있어서 이름도 생소한 이 여배우는 이번 작품을 통해 자유분방함, 순수, 욕망, 질투, 연민을 한 몸에 담은 캐릭터를 소름끼칠 정도로 완벽하게 소화해 냈다. 어떤 의미에서는 [팬텀 스레드]의 진정한 주연이자 숨은 공로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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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텀 스레드]는 결코 관객에게 편안함을 선사하지 않는다. 수많은 영화들이 남녀간의 사랑을 이야기했지만 이 작품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 문제를 풀어낸다. 섬세하고 때론 강렬한 [팬텀 스레드]는 기이한 멜로의 마지막 지점에 와 있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그토록 고혹적이고 우아한 분위기 속에서 이처럼 독한 방식의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감독이 과연 몇이나 될까?
블루레이 퀄리티
35mm 필름 포맷으로 촬영된 [팬텀 스레드]는 고전적인 미학을 강조하는 화면이 일품이다. 1950년대라는 시대상을 의식하듯 적당히 깔린 그레인과 함께 철저하게 계산된 디테일한 영상이 마스터피스급 영화가 뿜어내는 위용을 여과없이 전달한다. 오스카 수상에 빛나는 의상들의 개별적인 바느질에서부터 우드콕의 의상실 내부를 장식하고 있는 세부적인 오브젝트에 이르기까지 프레임 안에 담긴 사물을 모두를 뚜렷하고 인상적인 화면으로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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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력과 컬러의 깊이도 뛰어난 편이다. 다소 빈티지한 느낌의 화면에서 유난히 두드러지는 의상의 화려함과 선명함이 압도적으로 다가온다. 영화 자체의 색감이 워낙에 잘 조율된 탓에 블루레이로 다운 트랜스퍼된 상황에서도 그러한 장점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케이스라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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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텀 스레드]의 장점은 비주얼에서만 발휘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발군의 사운드야말로 이 영화의 또 다른 매력이다. 본 블루레이는 DTS:X와 DTS Digital Surround 5.1을 동시에 수록했는데, [팬텀 스레드]는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큰 작품으로서 라디오헤드의 기타리스트 출신 조니 그린우드의 사운드트랙이 영화 전반을 장악한다. 현악기로 이루어진 대다수 사운드트랙의 선율은 레이놀즈와 알마 사이의 보이지 않는 줄다리기를 매우 긴장감 넘치게 표현하는데 일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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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주변 사운드의 설계 또한 뛰어난데, 가령 아침 식사 시간에 레이놀즈의 신경을 긁는 생활 소음들–빵을 긁는다거나 찻잔을 달그락거리는-의 선명하고도 생생한 소리를 들을 때면, 레이놀즈의 날선 반응에 자신도 모르게 공감하는 감정이입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영화 장르의 특성상 리어 채널의 활용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것이 DTS:X의 위력을 반감시키는 요인이긴 하나 전체적으로 사운드의 저력이 느껴지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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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피쳐
‘Camera Tests’는 다양한 렌즈와 필터, 색온도를 사용한 카메라 환경에서 테스트를 거친 비공개 영상들을 보여준다. 색보정 등 가공되지 않은 영화의 장면들을 날 것의 느낌 그대로 감상할 수 있는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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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 the Hungry Boy”는 약간의 삭제씬과 더불어 영화 속 몇몇 장면들을 재편집해 구성한 짧은 영상이다. 특히 영화에서는 레이놀즈와 알마 사이에 아이가 있다는 점을 마지막 장면에서 어렴풋이 보여주지만 (유모차의 등장) 본 영상에서는 걸음마를 연습하는 아이의 모습이 확실하게 나온다. 아마도 PTA가 생각한 엔딩의 또다른 버전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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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use of Woodcock”은 영화 속 주무대인 우드콕 의상실에서 벌어지는 봄 패션쇼를 아담 벅스턴의 내레이션과 함께 별도로 구성한 영상 클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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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hind the Scenes Photographs” 는 조명감독 마이클 바우만이 찍은 흑백과 컬러 사진들이 자니 그린우드의 스코어와 함께 소개된다. 제법 많은 스틸이 담겨 있어서 사진에 관심있는 분들에게는 굉장히 소중한 자료가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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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
[팬텀 스레드]는 남녀간의 사랑을 그린 영화 중에서도 매우 독특한 지점에서 기억될 작품이다. 연출의 중량감, 배우들의 열연, 미학적인 완성도, 그리고 다양한 함의를 통해 PTA 영화의 특성들을 반영하면서도 그간 PTA의 작품에 입문하기를 꺼려했던 사람들에게도 다소 진입장벽을 낮춘 작품이기도 하다. 블루레이 퀄리티에 있어서도 영상과 음향 모두 수준급의 퀄리티를 보여주고 있으며 특히나 국내에 출시된 [팬텀 스레드] 초도한정 아웃 박스 패키지에는 '팬텀 스레드'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담은 43p 스페셜 북이 제공되어 소장가치를 한껏 높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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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팬텀 스레드 : 일반판 - /유니버설픽쳐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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