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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개념이 거의 없던 시절에는 극장가의 영화들을 만화로 컨버젼하는 관행이 유행처럼 번졌다. 주로 1980년대 중후반이 전성기였지만 70년대에도 [대부]가 대본소용 성인만화로 출간되거나 [스타워즈]의 코믹스판이 나오는 등 그 역사가 꽤 오래되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컨텐츠만 빌린 것이 아니라 작가들의 작화 실력도 꽤나 수준급이어서 단순한 흑역사로 덮어버리기엔 좀 아까운 부면이 있다.

1970년대 코믹스판으로 나온 [대부]와 [스타워즈]

1980년대에는 소년 만화지의 성장과 함께 단기 연재방식으로 많은 작가들이 영화를 원작으로 한 만화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김형배 작가는 [인디아나 존스] 1,2편을 그렸고 박동파 작가는 [스타워즈] 에피소드 5,6편을,  장태산은 [배트맨], [구니스], [그렘린] 등의 작품들을 연재해 많은 인기를 누렸다. 당시 극장가가 요즘처럼 어린 아이들에게 접근성이 좋은 형편은 아니었는지라, 이런 번안 만화는 영화 이상으로 큰 인기를 누렸다.

소년중앙에 연재된 박동파 화백의 [제국의 역습]

이런 만화들의 특징은 흔히 원작의 줄거리를 따라가기도 하지만 때론 영화와는 다른 결말이나 내용을 선보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빚어진 부작용 중 하나는 영화를 본 아이들과 영화를 보지 않고 만화만 본 아이들 사이에 줄거리의 혼선이 빚어져서 서로 자기가 본 게 맞다고 티격태격하는 일이 심심찮게 발생하곤 했다.

필자도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람보]였다. 당시 [람보 2]의 상영 등급은 R등급을 받은 외국과는 달리 연소자 관람가였기 때문에 초중딩 할 것 없이 전국민이 람보 열풍에 빠져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열기가 어느 정도였는가 하면, 조조 선착순으로 주는 티셔츠를 받기 위해 밤샘을 한 청소년들의 행태가 뉴스에도 실릴 정도였다.

당시 필자는 돈이 없던 관계로 영화는 못보고 있었는데, 때마침 친구녀석이 만화가게에서 [람보] 만화책을 빌려와 탐독중인 것이 아닌가! 곁다리로 같이 만화책을 보던 중 이상한 장면이 하나 있어 친구 녀석과 티격태격했던 장면이 아직도 생각난다. 문제의 그 장면은 람보가 키우던 사슴을 차에 놓고 잠시 가게에 간 사이 동네 불량배들이 사슴을 죽이게 되는데, 사슴의 시체를 끌어안고 절규하던 람보의 대사는 다음과 같았다.

분명 그림에는 사슴의 목이 붙어 있는데, 왜 잘랐다고 하는 거지? 나는 분명 이 장면이 잘린 사슴의 목을 심의 상의 문제 때문에 다시 수정한 것이라고 주장했고, 친구 녀석은 "사슴의 목을 자른"이 아니라 "조른"의 오타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별 것도 아닌 다툼이었는데, 내가 뜻을 굽히지 않자 이 녀석이 만화책을 빼앗아  가버렸던 기억이 난다. 덕분에 나는 그 만화책의 후반부를 보지 못했다.

나는 영화관에서 [람보 2]를 봤다는 친구들에게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고 확인차 물어보았지만 하나같이 람보가 무슨 사슴을 키우냐고 나를 허언증 환자처럼 취급하는 것이 아닌가. 결국 이 일로 나는 만화책의 결말도 못보고 되려 영화를 본 아이들에겐 이상한 녀석으로 손가락질 받게 되었다. 더 웃기는 건 훗날 내가 [람보 2]를 봤을 때 내가 기억하던 이 사슴 살해씬은 정말로 영화 어디에서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난 도대체 무엇을 봤단 말인가...

그런데 그 미스테리를 최근에야 풀었다. 어렵게 입수한 7권짜리 대본소용 [람보] 만화책. 어린 시절 결말을 보지 못했던 바로 그 작품이다. 워낙 그 사슴 장면이 강렬하게 남아있어서 이 작품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었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세월이 흘러 책장을 넘기니 아차! 이건 [람보 2]의 코믹컬라이징이 아니라 [람보 2] 이후의 사건을 다룬 작품이란 걸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 만화판 [람보]는 백산 작가가 창작한 100% 오리지널 스토리였던 것이다. 사실 해외에서도 [람보 2]의 개봉 이후 코믹스 버전이 잠시 출간되긴 했었는데, 국내에서 이처럼 독자적인 스토리를 가진 만화가 나왔다는 점이 나름 신선한 충격이다.

1986년에 출간된 [람보] 포켓코믹스판

일단 내용을 잠시 소개하면 이 작품은 영화 [람보 2]에서 머독에게 배신당한 람보가 본부의 최첨단 설비를 부수며 절규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아시다시피 영화에서 전개되는 이후의 이야기는 람보가 태국으로 가 은둔 생활을 하다 아프가니스탄의 전장으로 몸을 던진다는 내용이며 그것이 [람보 3]다.

만화판에서는 이 사건을 계기로 람보가 전역을 한다. 사실 말이 안되는 것이 [람보 2] 역시 사법거래로 용병처럼 투입된 것이어서 정규군이 아닌 람보가 전역을 한다는 게 말은 안되지만 여하튼 람보는 전역 후 미국으로 돌아온다. [람보 4: 라스트 블러드]가 나오기 무려 20여년 전에 이미 백산 작가는 람보가 미국으로 돌아올 줄 알고 있었던 것인가!

고향으로 돌아온 람보는 옛날 자신의 아내를 죽인 엑스큐즈너가 보복이 두려워 자신을 제거하려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악당들과의 결전을 준비하던 람보는 우연하게 자신의 딸을 만나게 되지만 재회의 기쁨도 잠시, 적들과의 교전에서 그만 딸이 죽고 만다. 복수를 다짐하는 람보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 중동으로 출국, 테러리스트 집단의 우두머리인 엑스큐즈너에게 접근하기 위해 그의 조직으로 잠입해 복수를 완수한다는 내용이다.

만화 [람보]는 말하자면 1인 부대인 람보가 테러리스트 조직을 송두리채 날려버리는 액션물로서 전쟁의 희생양인 람보의 트라우마와는 무관하게 개인사와 얽힌 복수라는 테마를 다루고 있다. 구성이 탄탄한 편은 아니지만 언더커버로 조직에 침투해 활약을 펼치는 람보의 색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영화상에서는 다뤄지지 않았던 람보의 개인사, 특히 람보가 이미 결혼해 다 큰 딸래미까지 둔 품절남이었다는 충격적인(!) 사실까지 밝혀지는 등 제법 흥미로운 내용이 많다.

더 놀라운 건 이 만화가 나온 시기는 1987년인데, 아직 [람보 3]가 나오기 전에 이미 아프카니스탄을 작품 속 배경으로 설정해 놓았다는 것이다. 신기하지 않은가.

만화가 백산은 원래 1960년대 스포츠 만화계에 한 획을 그었던 중견작가의 이름인데, [람보]를 그린 작가가 [빅토리 야구단], [태양을 향하여 달려라] 등을 내놓은 그 작가인지는 현재로선 알 수 없다. 다만 그는 [람보] 외에도 [록키] 만화판을 내놓으면서 명실공히 80년대 실베스터 스텔론 주연 영화의 코믹컬라이징 작업을 주로 했던 만화가임엔 분명하다.

백산 작가의 또다른 대본소용 코믹스 [록키]

[람보 2]의 영향으로 한 때 한국에는 '람보'라는 만화들이 무척 많이 나왔는데, 김영하 화백의 [짬보 람보]를 비롯해 김수철 작가의 [특수공작원 람보], 박삼 작가의 [생체 변신로보트 람보]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러나 적어도 내 기억에는 오리지널 람보 캐릭터와 연관된 작품은 백산 작가의 [람보] 뿐이다.

어쨌거나 이런 작품들을 보다보면 옛 추억들을 떠올릴 수 있어서 좋다. 그 내막이야 어쨌든 가난했던 그 시절, 영화관을 찾는 것이 연례행사처럼 드물었던 시기에 문화적인 갈망을 해소해 주었던 나름의 돌파구였으니까 말이다.

 

*  본 리뷰에 사용된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해당 저작권자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단, 본문의 내용은 작성자에게 저작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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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블랙하트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얼굴만 봐도 알겠는데 친절하게(?) '악당들'이라고 써놓았군요.

    중요인물들은 극화풍으로 세밀하게 그려졌는데 악당들은 선도 얼마 그어놓지 않은게 성의없어 보입니다.

    2014.10.13 14:37 신고
  2. BLUEnLIVE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볼 수록 눙물이… ㅠㅠ

    2014.10.13 23:14 신고
  3. marlowe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작권 개념이 없던 시절이라서 이런저런 괴작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김철호처럼 유명 스타를 그대로 쓰는 경우도 있었고, 이두호 선생처럼 영화나 드라마를 그대로 만화로 옮기거나 새로운 에피소드를 보여준 사례도 있지요. 개인적으로 이 방면의 최고 걸작(?)은 [소년중앙]에 연재되었던 [벤허]라고 생각합니다.

    2014.10.14 11:32 신고
    • 페니웨이™  댓글주소  수정/삭제

      김철호 작가는 주로 이소룡 전문으로 나갔지요. ㅎㅎ 이두호 선생은 [6백만불의 사나이], [쿵후] 같은 작품을 내놓았지요.

      [벤허]는 이두호 화백이 작품이 가장 유명하긴 하지만, [E.T]와 더불어 만화판 버전이 꽤나 다양한 작품 중 하나입니다.

      2014.10.14 12:06 신고
    • marlowe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는 김민의 [벤허]도 봤는 데, 이두호 선생의 작품이 윌리엄 와일러의 영화판을 각색한 반면, 이건 원작소설에 가깝더군요.

      좀 다른 얘긴 데, 저작권에 대한 보호가 점점 강화되는 요즘, 원작자의 동의 없이 나오는 패러디 또는 각색물([삼국 전투기]같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입니다. 독자와 동종업계에 종사하는 창작자의 입장은 다를 텐 데, 최소한 사전 양해는 구했으면 좋겠어요.

      2014.10.14 20:14 신고
    • 페니웨이™  댓글주소  수정/삭제

      당연히 사전 양해를 구하는게 도리에 맞는 것이겠지요..

      그나저나 김민의 [벤허]는 지금 남아있다면 상당히 값나가는 물건이겠군요. 특히나 김민 작가는 마니아층이 탄탄해서 말이죠.

      2014.10.14 21:08 신고
  4. <투머로우>김기자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문득 이두호 화백의 <무지개 행진곡>이 떠오릅니다.
    http://blog.naver.com/semisuper/10133101875
    '컨버전'이 아닌 '표절'에 가까운 작품입니다만,
    작품 못지 않게 노래도 많은 사랑을 받았죠.
    결말이 궁금합니다. 혹시 페니웨이님은 아시는지?

    2014.10.15 12:03 신고
    • 페니웨이™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상하게도 저 때 작품들 중에 엔딩이 기억나는게 몇 안되요^^;;

      2014.10.15 21:25 신고
    • 페니웨이™  댓글주소  수정/삭제

      참고로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무지개 행진곡]은 지바 데츠야의 [오뚝이 행진곡(원제:1,2,3과 4,5,로쿠)]란 작품의 컨셉을 상당수 차용했습니다. 스토리 자체는 오리지널리티가 강합니다만 이 당시 많은 작품이 그랬듯 표절이라기 보단 아류에 더 가깝던 작품이었죠. 개인적으로는 [무지개 행진곡]보다는 이원복 교수의 [시관이와 병호의 모험]쪽이 훨씬 더 표절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캐릭터 표절면에서 말이죠.

      2014.10.17 11:48 신고
    • marlowe  댓글주소  수정/삭제

      무지개 남매의 아빠는 동물원 사육사, 엄마는 부잣집 딸이였는 데, 외할아버지는 결혼을 반대해서 의절했지만, 고아가 된 후 막내 외손녀 얄숙이와 친해지면서 교류가 있었죠. 마지막회에 태풍으로 배가 침몰한 줄 알았던 부모가 기적적으로 구조되어 다같이 얼싸 안는 것으로 끝납니다.

      구글링을 해보니 치바 테츠야의 [1,2,3과 4,5,로쿠 (1・2・3と4・5・ロク)]를 말씀하신 것 같은 데, 이원복의 [오뚝이 행진곡]이 그림체까지 그대로 옮긴 표절이였다면, 이두호의 [무지개 행진곡]은 설정만 가져온 번안에 가깝지 않나 싶네요. 고릴라가 탈출하거나 까목이가 주워온 자식으로 오해받는 독창적인 에피소드도 있구요.

      여담이지만, 이화백이 생전 인터뷰에서 한 말이 떠오릅니다. 생계를 위해 H 미대를 중퇴하고 만화가로 활동하다 동창회에 참석했는 데, '만화를 그려서 학교 망신을 시킨다'는 동창의 비난에 절교선언을 하고 집에 돌아와 '앞으로는 진짜 작품만 그리겠다'는 결심을 했다는군요. 번안/표절만화를 주로 그리다가 역사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으니, 결과적으로는 그 친구의 쓴 소리가 약이 되었다고 봅니다.

      한국의 옛날 만화, 영화, 소설, 잡지 등이 소멸된 것은, 일본의 북오프, 만다라케같은 체계적인 중고물품 거래가 국내에서는 늦게 시작된 탓이 크다고 봅니다. 부모가 내다버리지 않아도, 신간은 계속 나오는 데 놔둘 공간은 점점 줄어드니 버릴 수 밖에 없겠죠.

      2014.10.17 11:53 신고
    • 페니웨이™  댓글주소  수정/삭제

      한가지만 더 부언하면... 이두호 화백은 당대 만화가들이 가난과 비난 속에서도 나름의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자기 일을 사랑했던 것에 반해 미술학도 지망생으로서의 자괴감이 더 강하게 남아 만화가로서의 자존감이 떨어졌던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실 다른 작가들에 비해 나름의 대표작이라고 부를만한 작품인 [머털도사]나 [객주]가 한참 후에나 등장한 걸 보면 대략 짐작할 수 있지요. 요즘은 성공한 원로급 만화가로 자리매김했습니다만.

      2014.10.17 11:54 신고
  5. 정체불명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주 어릴적에 마지막에 언급된 특수공작원 람보를 본것 같기도 하고...가물가물 하네요;;;

    2014.10.16 19:44 신고
  6. 헬몬트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터키 람보같은 영화를 보면 해외에서도 얼마든지 그런 게 많을 듯...책이나 여러 분야로도요% ^ ^&ㅣㅣ

    90년대 초반 만해도 멋대로 후속소설이 나왔죠

    속 죽은 시인의 사회
    속 양들의 침묵
    속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죄다 쓰레기에 넣어도 아깝지 않을 종이 낭비작입니다...

    20년이 넘게 보관중인 속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보면 하하하하;;

    2014.10.21 01:26 신고
  7. 강석완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국에서 영화 람보 나올 당시에... 장난감과 TV애니메이션 시리즈가 나온건 최근에 유튜브를 통해서 알게되었는데... 국내에서도 저런 만화가 나왔었군요....(어린시절 만화잡지 보물섬 외 여러 만화를 재미있게 본 기억이 납니다만... 기억나는 만화가 몇 안되는지라....)
    그리고 위에 언급된 스타워즈 말입니다만... 당시 영화가 크게 히트쳐서 그런지는 몰라도 TV시리즈로 C3PO와 R2D2가 주인공인 애니메이션이 나왔는데... 유튜브에서 찾아보면 볼수있을겁니다...

    2014.10.27 20:03 신고
  8. 헬몬트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람보 애니야 비디오로 국내에 나왔기에 성우 박일이 람보를 맡았죠
    비디오로 1편 가지고 있습니다

    2015.05.05 12:39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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