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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최고의 인기작이었던 [마징가제트].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방영된 에피소드는 거의 다 챙겨봤지만 정작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별로 없다. 반대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그만큼 어린 시절에도 큰 인상을 준 내용이었다는 방증이기도 하겠다. 그 중 하나가 바로 38번째 에피소드인 '수수께끼의 로봇 미네르바X (謎のロボット ミネルバX)'편이다.

ⓒ ダイナミック企画・東映アニメーション All rights Reserved.

이 작품은 일본 내에서도 화제가 될 만큼 독특한 에피소드로 알려져 있는데, 그 이유는 바로 '로봇간의 사랑'이라는 기이한 소재가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내용을 대략 살펴보면 닥터 헬이 여성형 기계수 미네르바X를 만들어 출격시킨다. 그런데 미네르바 X는 마징가와 맞닥드리자 싸움을 회피하고 급기야 눈물을 흘리며 기절(!)한다.

알고보니 이 로봇은 카부토 쥬죠 박사가 생전에 마징가 제트의 파트너 로봇으로 설계한 것으로 닥터 헬이 설계도를 빼돌려 기계수로 만들었던 것. 하지만 설계도를 고스란히 반영한 과정에서 양심회로까지 카피하게 되었고 이 회로가 작동하면서 미네르바는 마징가를 공격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제부터 마징가와 미네르바의 닭살돋는 애정행각이 시작되는데, 마징가가 미네르바의 머리에 꽃장식을 달아준다든가 미네르바가 무릎배게를 해준다든가 하는 실로 손발이 오그라드는 커플 염장극이 펼쳐진다. 마징가가 아프로다이A의 격납고를 빼앗아 미네르바X에게 주자 아프로다이가 웅크리고 앉아 뾰로통해져있는 장면에서는 그야말로 빵터진다.

ⓒ ダイナミック企画・東映アニメーション All rights Reserved.

그러나 행복한 시간도 잠시, 다른 기계수를 출격한 헬 박사의 명령으로 인해 미네르바의 양심회로가 파괴되고, 제어기능을 상실한 미네르바X는 광분해 파괴를 일삼기 시작한다. 위기에 몰린 광자력 발전소를 앞에 두고 미네르바를 설득하는데 실패하자 결국 유미 사야카는 아프로다이A의 엽기적인 가슴미사일을 발사해 미네르바를 쓰러뜨린다.

슬픔을 뒤로한 채 미네르바를 일으킨 마징가는 그녀(?)에게 새로운 양심회로를 장착시켜주고 죽어가는 미네르바를 수장시켜준다. 아~ 이 얼마나 애절하고 가슴찡한 러브스토리란 말인가. 아마 소싯적 이 장면을 MBC를 통해 본 소년이라면 뜨거운 눈시울을 아니 적실 수가 없었을 것이다.

ⓒ ダイナミック企画・東映アニメーション All rights Reserved.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이 에피소드가 정작 나가이 고의 원작 코믹스에는 빠져 있다는 점이다. 대신에 오다 고사쿠 버전의 코믹스에는 이 에피소드가 실려있는데[각주:1], 이 둘을 비교해보면 다소 차이가 있다. 우선 미네르바의 디자인을 보면, TV판이 좀 더 여성미가 강조되고 미형의 로봇 형태를 갖춘 반면, 코믹스판의 미네르바는 조금 투박하다.

ⓒ 桜多吾作/ 双葉社. All rights Reserved.

또한 코믹스판에서 마지막 순간에 미네르바를 처치하는 건 아프로다이A가 아니라 위기에 빠진 아프로다이를 구하기 위해 광자력 빔을 발사한 마징가 제트다. 사소한 차이일지는 몰라도 오다 고사쿠 버전의 코믹스에서는 미네르바X 에피소드가 상당히 밋밋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아마도 나가이 고에 비해 캐릭터를 가볍게 다루는 오다 고사쿠 버전의 특징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세호 작가의 [마징가 제트와 신비의 로보트 미넬바 엑스]는 가히 기념비적인 로컬라이징 코믹스라 하겠다. 현대코믹스를 통해 발간된 이 만화는 ''수수께끼의 로봇 미네르바X'편을 따로 리메이크해 극화한 작품인데, 작화의 유려함이나 연출의 박진감이 오리지널을 훌쩍 뛰어넘는 수작이다.

이야기의 진행과 구성은 오리지널을 따라가지만 몇몇 설정이나 연출에 있어서는 나름의 독자성을 유지한다. 먼저 미네르바X (작품상에서는 미넬바엑스)를 제작하는 장본인이 닥터 헬이 아니라 훗날 [그레이트 마징가]에서 부활하는 닥터 헬의 또다른 모습인 지옥대원수가 암흑제왕(검은 마왕)의 지시로 만든다.[각주:2] 사야카(애리)의 기체도 아프로다이가 아닌 다아아난A다. 따라서 내용상으로 보면 이 작품에서의 미네르바는 이미 미케네인들이 등장한 이후의 시간으로 설정되어 있는 것이다.

ⓒ 이세호/ 현대코믹스. All rights Reserved.

TV판 에피소드를 한권 분량으로 담아내기에는 조금 부족했는지, 오다 고사쿠판의 다른 에피소드에서 설정을 조금 가져왔는데, 바로 '다모스 시그마9과 메도루사에젠'편이다. 잠시 소개하자면 텔레파시 기능으로 카부토 코우지(쇠돌이)의 생각을 미리 읽어 마징가의 공격을 봉쇄하는 기계수 다모스 시그마9 때문에 핀치에 몰린 마징가를 카부토 코우지의 동생인 시로가 대신 조종하게 되는데, 조종이 미숙한 시로의 생각을 읽는 기계수가 의도치 않게 공격에 걸려들게 된다는 설정이다. 이세호 작가는 이 설정을 고스란히 가져와 코믹하게 재구성했다.

ⓒ 이세호/ 현대코믹스. All rights Reserved.

각 장면의 연출 방식에 있어서 이세호 버전의 마징가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다음의 한 장면만으로도 이해가 될 것이다. 양심회로가 파괴된 직후 미네르바X가 돌변하는 장면인데, 악당이 된 미네르바의 압도적인 포스가 오다 고사쿠 버전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 桜多吾作/ 双葉社. All rights Reserved.

ⓒ 이세호/ 현대코믹스. All rights Reserved.

엔딩에서는 TV판이 아닌 오다 고사쿠 버전을 따르고 있는데, 이를 통해 이세호 작가가 TV판보다는 고사쿠판의 마징가를 기초로 이야기를 재구성했음을 알 수 있다. 아무래도 미네르바의 연적인 아프로다이보다는 마징가의 손에 의해 쓰러지는 게 극적인 효과가 더 크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 이세호/ 현대코믹스. All rights Reserved.

이처럼 원작에서는 단 한편의 에피소드에 출연했을 뿐이지만 미네르바X는 아프로다이A나 다아아난A 또는 사야카 유미를 제치고 마징가 월드의 히로인로서 대중에게 각인된다. 마징가 월드의 여성캐릭터만 따로 모은 스핀오프 [마징가 엔젤]에서 중요한 배역을 맡은 것이나 근래에 출간된 [진 마징가 제로]에서 인간형 사이보그로 리파인된 미네르바가 등장하는 것만 봐도 이 캐릭터가 얼마나 강렬한 인상을 남겼는지를 가늠케 한다.

주로 오다 고사쿠판의 코믹스를 베이스로 이를 새롭게 재해석한 이세호판 [마징가 제트] 중에서도 [마징가 제트와 신비의 로보트 미넬바 엑스]는 유독 극적 효과가 두드러지는 수작이라 하겠다. 이제는 그의 놀라운 솜씨를 감상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  본 리뷰에 사용된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해당 저작권자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단, 본문의 내용은 작성자에게 저작권이 있습니다.


 

  1. 그 이유는 나가이 고가 원작으로서의 코믹컬라이징 형태라는 구색을 맞춰주기 위해 마징가 제트를 그렸던 반면 오다 고사쿠는 TV판의 에피소드를 베이스로 미디어믹스 전개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본문으로]
  2. 흥미롭게도 이세호 버전에서 미케네인들의 장군급 캐릭터들은 모두 보통의 인간과 비슷한 크기로 설정되어 있다. 나가이 고의 원작에서 암흑대장군을 비롯한 7대장군은 모두 전투수급의 거한들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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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체불명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네르바X 캐릭터는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존재감이 강한 캐릭터로 남았다는건 몰랐네요.

    2014.12.08 23:04 신고
  2. 마장군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슬램덩크 이전 어린 저에게 첫 감동을 주었던 만화였죠 .. 몇번을 읽고 또 읽었었는지 ㅋ

    2014.12.09 01:03 신고
  3. 잠본이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릴때 분명 보긴 봤는데 내용을 다 까먹은게 아쉽군요. 오다는 아무래도 메마른 사막같은 느낌인데 이세호씨는 감정이 참 풍부하게 그리신 듯 합니다.

    2014.12.09 23:08 신고
    • 페니웨이™  댓글주소  수정/삭제

      분명 저 시절에 오다 고사쿠 버전의 [마징가 제트]도 같이 봤는데 (놀랍게도 국내에 헤적판 형태로 나온 바 있지요) 감성적으로는 이세호 버전이 훨씬 설득력이 있었더랬습니다.

      2014.12.10 16:14 신고
  4. 블랙하트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나라 작가가 그린 마징가 Z 만화는 기계수로 가짜 마징가Z 만들어 속였다가 실패하는 것, 그레이트 마징가 나와서 같이 활약했던 것 2개가 기억납니다.

    2014.12.11 21:01 신고
    • 페니웨이™  댓글주소  수정/삭제

      일단 말씀하신 작품 중 전자는 현대코믹스 레이블에서 발간된 건 아닌거 같네요. 아마도 스타문고판을 보신거 같고, 그레이트와 합동작전하는건 현대코믹스 레이블에서 1권, 스타문고에서는 2권인가 3권 발행되었을 겁니다. 워낙 희귀작이라서 요즘은 존재 자체가 확인하기 어려운 작품들이지요.

      2014.12.12 11:11 신고
  5. 시그너스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런데 마징가는 별도의 인공지능이 있었던가요? 미네르바와 엽기적인 애정행각을 벌이려면 일단 자아(?)가 있어서 스스로 움직여야 할텐데. 쇠돌이가 마징가를 조종해서 물아일체의 상태로 애정행각을 벌였다면.. 그거야말로 정말 엽기적인거 같고.. 이상하게도 마징가는 제대로 본적이 없어서 모르겠네요.

    2014.12.14 21:34 신고
    • 천마  댓글주소  수정/삭제

      인공지능이 아니라 정말 쇠돌이(카부토 코우지)가 직접 타고 저 애정행각을 한겁니다.^^; 그땐 몰랐는데 커서 생각해보니 참 묘하더군요. 미넬바X 의 머리에 꽂은 꽃은 대체 크기가 얼마나되는 건지도 그렇고^^;;; 하지만 상당히 인상적인 캐릭터였던건 분명합니다.

      2014.12.14 23:41 신고
    • 페니웨이™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 작품이 (원작포함) 괴랄한 것이... 미네르바는 쇠돌이에게 전혀~ 관심이 없고 오직 마징가만 사랑하는데, 정작 마징가는 지능이 없는 일게 로봇인지라 결국 마징가와 미네르바의 애정행각 자체는 미네르바와 '마징가를 탄 쇠돌이'의 러브라인이 되는 것이거든요. 그렇담 정말 정신이 이상한건 미네르바가 아니라 쇠돌이 녀석이란 얘기죠. 껄껄...

      새로 리메이크한 [진마징가 제로] (혹자는 Z + ero라고...쿨럭)에서도 인간형 사이보그로 환골탈태한 미네르바가 여전히 마징가에 대한 일편단심의 사랑을 나타내는 걸로 나옵니다.

      2014.12.15 11:21 신고
    • 시그너스  댓글주소  수정/삭제

      컥!!! 설마했는데 역시나 그랬군요.
      파일더에 타고 므흣한 미소를 지으면서 거대로봇과 애정행각이라니..
      쇠돌이는 결국 (뭔가 위험한 상태의)거대로봇성애자였군요.
      정신이 아득해집니다... @_@

      2014.12.15 20:16 신고
    • 적멸  댓글주소  수정/삭제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이게 뭐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쩐지
      내려서 연애하면되지, 왜 굳이 로봇에 올라타서 저러는건가 싶엇는데
      그런 사정이 있었군요.

      로봇성애녀와 그런 성애녀에게 잘보이려는 남자의 눈물겨운 몸부림

      2015.02.20 20:49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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