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괜히 봤습니다. 지금은 보지 말았어야 할 영화를 본 것 같아요. 오해는 마세요. [시라노; 연애 조작단]은 결코 못만들거나 재미없는 영화가 아닙니다. 그저 내가 겪고 있는 심리적인 우울함을 더욱 증폭시킨 영화라는 점에서 후회가 밀려오는 것 뿐이니까요. [시라노; 연애 조작단]을 선택하기 전에 알아두어야 할 사전 지식은 제목에 들어간 '시라노'라는 단어가 과연 무엇인가 하는 점입니다. 극중에서 우스게 소리처럼 던지는 대사처럼 공룡 티라노를 연상케하는 단어이지만 비교적 90년대 초 영화에 관심이 많았던 분들이라면 제라드 드 빠르디유가 주먹만한 코를 붙이고 나왔던 [시라노]를 쉽게 떠올리실 겁니다.
ⓒ Caméra One/Centre National de la Cinématographie (CNC). All Right Reserved.
맞습니다. 이 영화는 [시라노]에서 주인공 시라노 백작이 가진 딜레마, 즉 못생긴 외모 때문에 차마 사랑하는 여인에게 고백하지 못하지만, 그 여인에게 연정을 품은 자신의 부하를 대신해 연애편지를 써주는 참으로 아이러니하면서도 가슴 아픈 상황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입니다. '연애 조작단'이라고 해서 커플들을 엮어주는 연애 메니저들의 진부한 코미디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라는 얘기죠. 어찌보면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이민정과 최다니엘의 유명세에 편승한 얄팍한 작품이라고도 생각될지 모르지만 실상은 엄태웅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내용이라는 점에서 [시라노; 연애 조작단]은 관객의 예상을 벗어납니다.
극단의 파산으로 어쩔 수 없이 연애 메니지먼트라는 독특한 회사를 차려서 커플들의 사랑을 '인위적으로' 이루어 주는 시라노 에이전시에 의뢰인 상용(최다니엘 분)이 나타납니다. 같은 교회에서 만난 여인 희중(이민정 분)과의 인연을 만들어가고 싶다는 그의 의뢰를 시라노 대표인 병훈(엄태웅 분)은 탐탁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실은 병훈과 희중이 과거에 연인 사이였던 것이죠. 이제는 헤어진 여자친구와 의뢰인을 연결시켜주어야만 하는 전 남자친구... 상황이 좀 복잡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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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노; 연애 조작단]이 로맨틱 코미디를 표방하고 있긴 하지만 막상 그 내용면에서 보자면 무척 가슴 시린 구석이 많은 작품입니다. 연인과 헤어진지 얼마 지나지 않은 남성분들이나 혹은 용기가 없어 차마 사랑하는 여인에게 대쉬한번 해보지 못한채 평생솔로로 지내는 분들에게는 정말 공감가는 내용이 많거든요. 특히 연출을 맡은 김현석 감독은 [광식이 동생 광태]나 [스카우트]같은 작품들을 통해 주로 연애에 실패한 남성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비상한 재주를 보여주었는데, 이번 [시라노; 연애 조작단] 역시 예외는 아닙니다.
이 작품은 여인의 마음을 얻기 위해 진정 불철주야 피나는 노력을 쏟아붓는 이 세상 모든 수컷들의 마음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남성관객들의 공감대를 이끌어 냅니다. 또한 김현석 감독의 영화들에서 남자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과는 결실을 맺지 못하는데, 이 영화도 마찬가지에요. 그 대신 다른 사랑이 찾아온다는 희망을 던져주긴 하지만요. 일반적으로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가 여성편향적인 특징을 가진것과는 달리 김현석 감독의 작품이 이례적인 건 바로 이 때문이죠. [시라노; 연애 조작단] 역시 남자들을 위한 작품이라 봐도 무방합니다. (그렇다고 여성 관객들이 재미없어 할 만한 작품이란 얘기는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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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장점은 2시간의 러닝타임을 비교적 알뜰하게 사용한다는 점입니다. 인트로의 송새벽, 류현경 커플을 엮어주는 작전은 사실상 전체적인 극의 흐름과는 동떨어진 개별 에피소드임에도 영화의 중심을 잡아주는 매우 효과적인 구실을 합니다. 본 게임으로 들어와서 최다니엘과 이민정 커플의 이야기가 전개될 때도 엄태웅의 과거사를 심어놓아 이야기가 단순하게 흐르지 않도록 완충작용을 합니다. 덕분에 관객들은 꽤 오밀조밀하게 배치된 플롯의 묘미를 즐기면서 본 작품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물론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시라노; 연애 조작단]은 웰메이드 코미디라고는 볼 수 없습니다. 엄태웅의 고정화된 연기패턴이 좀 많이 눈에 거슬리는데다, 손발이 오그라드는 장면들이 더러 나오거든요. 굳이 말하자면 웰메이드와 평작의 중간 정도? 사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작품에서 의외의 수확을 거뒀다는 느낌은 듭니다. 워낙 경쟁작이 없는 추석시즌이라 상대적인 상승효과도 큰 것 같고 말이죠. 이민정, 박신혜, 류현경 등 출연 여배우들 전원이 굉장히 매력적이라는 점에서도 이번 추석 남자분들은 꼭 이 영화를 선택하라고 권하고 싶네요. 개인적으로도 이민정양을 꽤나 좋아하는 편인데 이 작품에서 만큼은 류현경의 압승이라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아, 또 하나 빼놓지 말아야 할 게 있네요. 오랜만에 스크린 나들이를 한 권해효의 까메오 연기입니다. 악덕 사채업자로 등장하는 그는 막판에 회심의 카운터 펀치를 날리는 유머로 관객들을 뒤집어지게 만드니 기대하셔도 좋을겁니다.
본 리뷰는 2010.9.16. Daum View의 인기 이슈에 선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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