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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 당신은 살아있음을 감사하는가?

페니웨이™ 2010. 8. 5.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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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쉰들러 리스트]를 나치 독일의 유태인 학살극을 다룬 영화 중 최고의 작품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는 건 아카데미 작품상의 위력이 그만큼 크다는 뜻일까. 1,100명의 유태인을 나치 치하의 폴란드에서 구출해 낸 한 독일인 사업가의 이야기를 그린 [쉰들러 리스트]는 애초에 스티븐 스필버그가 홀로코스트를 실제로 경험했던 로만 폴란스키 감독에게 연출을 제안했던 작품이었다. 이때 로만 폴란스키는 아우슈비츠에서 어머니가 죽음을 당했던 자신의 개인사와 너무 민감하게 결부된 작품이라고 판단해 제안을 거절했다.

결국 스필버그 스스로가 [쥬라기 공원]과 함께 동시에 연출을 진행했던 [쉰들러 리스트]는 스필버그 특유의 감상적인 휴머니즘이 담긴 시각으로 홀로코스트를 조명한 영화로서 그 해 아카데미 7개부문을 독식하며 생애 최초로 아카데미 감독상의 영예를 안겼다.

한편 [쉰들러 리스트]를 거절했던 로만 폴란스키는 9년이 지난 2002년, 지극히 객관적면서도 냉정한 시각으로 바라본 유태인 대학살의 현장으로 관객들을 안내한다. 그 작품이 바로 2002년 칸느 영화제 황금 종려상 수상에 빛나는 [피아니스트]다. 실존했던 피아니스트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의 자전적 회고록 'Death of a City'에 기반한 이 작품은 1939년 독일의 폴란드 침공부터 1945년 소련군에 의해 해방이 될 때까지 만 6년간 자행된 독일군의 잔혹한 학살을 고발하는 영화다.

ⓒ Studio Canal/ Focus Features. All rights reserved.


아마 [피아니스트]라는 제목만 보면 단순히 전쟁을 배경으로 한 연주가의 예술적 열정을 다룬 작품 쯤으로 오인하기 쉽겠지만 섣부른 판단은 일찌감치 접어두는게 좋다. 이 작품은 그동안 홀로코스트를 다룬 그 어떤 영화보다도 사실적이며 감정이입에 충실한데, 주인공 스필만이 독일군의 눈을 피해 숨어지내는 과정에서의 서스펜스는 웬만한 스릴러물에 버금갈 정도의 긴장감을 선사한다. [피아니스트]는 나치의 만행을 여과없이 그려내긴 하지만 영화가 주목하는 건 스필만의 생존, 그 자체다. 어쩌면 유년시절을 홀로코스트의 악몽에서 보낸 폴란스키 본인의 자전적 이야기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영화의 디테일은 매우 섬세하면서도 풍부하다.

이에 더해 바르샤바 유대인 거주 지역인 게토(The Warsaw Ghetto)에서의 삶에 대한 묘사는 마치 한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듯 소름끼칠 정도로 차분한 시각을 유지한다. (영화가 이처럼 시니컬한 감정선을 유지하는 이유는 실제 스필만의 원작 자체가 매우 무덤덤한 느낌으로 기술되어 있기 때문이다) 굶주림과 질병, 무관심과 죽음이 지배하는 게토의 현실은 노파의 음식을 빼앗다가 바닥에 엎어진 배급 식량을 손으로 긁어 먹는 한 남자의 모습을 통해 적나라하게 표현된다. 훗날 게토에서의 유태인 봉기 이후 폐허가 된 거리를 스필만이 홀로 걷는 장면은 [피아니스트]의 명장면.

1400명의 경쟁자를 뚫고 주연을 맡은 에드리언 브로디는 [피아니스트]를 통해 30세의 나이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최연소 수상의 기록을 세웠는데, 그는 이 작품을 찍으며 진정한 메소드 배우의 근성을 보여주었다. 그는 영양실조에 걸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스필만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두 개의 삶은 계란과 녹차로 아침을 떼워가며 6주일만에 14Kg의 몸무게를 감량했다. 또한 외부와 단절된 캐릭터의 상실감을 표현하기 위해서 자신의 아파트를 없앴고, 차도 팔았으며, 심지어 TV도 시청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역시나 피아니스트의 삶을 다룬 영화이니 만큼 음악이 차지하는 부분도 적지 않다. 독일군의 포격을 받는 와중에 라디오 방송국에서 스필만이 연주하던 쇼팽의 야상곡이나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 등 주옥같은 명곡들이 사용되었고 무엇보다 영화의 후반부에 독일 장교 호젠페르트 앞에서 쇼팽의 발라드 No.1 in G Minor, Op.23을 연주하는 장면은 로만 폴란스키의 뛰어난 미장센이 절정을 이루는 클라이막스다.

ⓒ Studio Canal/ Focus Features. All rights reserved.


분명 [피아니스트]는 유명한 배우도 등장하지 않을뿐더러 스필버그식의 감상적인 휴머니즘을 강조한 드라마도 아니지만 홀로코스트를 조명한 수많은 영화들 중 그 표현이나 주제의 전개에 있어서 가장 탁월하다. 별로 새롭지도 않고 진부하기까지 한 유태인 학살의 소재를 자신의 경험에 근거해 격조있게 그려낸 로만 폴란스키의 연출력은 그의 필모그래피 중에서 단연 최고라고 하겠다. [피아니스트]는 예상을 뒤엎고 2003년 아카데미 감독상과 각색상, 남우주연상 등 3개부문을 휩쓸며 깐느 영화제의 영예를 이어나갔음에도 정작 불미스런 일로 미국에서 추방되었던 폴란스키는 직접 시상식에 참석해 오스카 트로피를 수상할 수 없는 아이러니를 낳았다.

한편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의 저서 'Death of a City'는 1946년 출간되었으나 주인공을 도와준 장본인이 독일군 장교라는 사실 때문에 폴란드 공산정부 당국으로부터 판매금지 되었다. 이 책의 원고는 훗날 스필만의 아들 안드레이에 의해 발견되었고 1998년에 독일의 'the ECON Verlag'에 의해 재발간되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러나 정작 스필만은 자신의 저서가 영화로 완성되기 2년전인 2000년 7월 6일에 88세를 끝으로 세상을 떠났다.

P.S: 흥미로운 사실. [피아니스트]에 출연했던 애드리언 브로디와 토마스 크레슈만은 2005년작 [킹콩]에서 다시 한번 호흡을 맞췄다.


* [피아니스트]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Studio Canal/ Focus Features. 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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