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니웨이™의 궁시렁

로봇찌빠의 저조한 시청율, 이 시대 아이들의 불행

페니웨이™ 2010. 1. 27.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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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개봉한 [아스트로 보이]의 원작이 1952년 '아톰대사'로 시작한 만화 '철완아톰'이라는 것은 어지간하면 다 아는 사실. 일본의 원작만화가 헐리우드에서 재탄생한 것은 그 완성도를 떠나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쯤되면 '철완아톰'이 일본인의 국민적 캐릭터를 넘어 전 세계로 뻗어나갈 동안 한국에는 그만한 캐릭터를 키울 수 없었나? 하는 의문이 들만도 하다. 물론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 몰지각한 기성세대들이 매년 5월 5일이면 만화책을 싸그리 모아다 화형식을 치루며 만화를 백해무익한 사회악으로 몰아갔으니 문제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자료화면: MBC 무릎팍도사 '허영만편' 2008.9.24 ⓒ MBC. All rights reserved.



'로보트 태권브이'나 '아기공룡 둘리' 같은 7,80년대의 아이콘들과 더불어 신문수 화백의 '로봇찌빠'역시 한 시대를 풍미한 캐릭터였다. 1979년 '소년중앙'에 연재를 시작한 '로봇찌빠'는 그 당시 가장 인기있는 장르물이었던 명랑만화의 주인공으로서 큰 인기를 모았다. 최근에는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후원하는 명작 리메이크 사업의 일환으로 김상욱 작가가 그린 '로봇빠찌'라는 작품이 웹툰으로 연재될 만큼 로봇찌빠의 상품적 가치는 꽤나 크다고 할 수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국데이타하우스. All rights reserved.

 

그리고 얼마전 공영방송 KBS2에서는 (주)GOGUMI에서 제작한 26부작 [로봇찌빠] 애니메이션을 방영하기 시작했다. 고전만화의 애니메이션화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지금의 3040세대에 있어서 무척이나 감개무량한 일이다. 아마도 누군가의 아빠, 엄마가 되었을 그들에게는 자녀들에게 자신들이 갖고 있던 추억의 한켠을 공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꽤나 의미있는 작품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 2009 GOGUMI. All rights reserved.


그런데 현실은 기대만큼이나 낭만적이지가 않다. 지난 1월 18일자 서울신문(링크)에 실린 기사에 의하면 [로봇찌빠]의 시청율은 2%가 채 안되는 (AGB닐슨미디어리서치 기준 1.5%, TNS미디어코리아 0.4%) 처참한 기록을 보였다. 이쯤되면 보는 이들이 거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로봇찌빠]의 방영시간은 오후 4시40분. 서울신문의 기사는 [로봇찌빠]의 방영시간대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사실 본 작품의 타겟 연령층이 초등학생이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4시40분이라는 시간이 문제가 된다는 주장은 언뜻 보면 이해가 가질 않는다. 적어도 내가 그 나이었을 때를 생각하면 말이다. 그 시절에는 아이들의 생활이라는게 무척 단순했다. 학교가 파하면 친구와 놀다가 해지기 전 집에 돌아와 TV에서 해주는 만화영화를 보며 하루를 보냈다. 부모님과 극장에 가는 것이 거의 연례행사나 다름없던 그 시절은 TV에서 해주는 만화영화가 문화생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다. 인터넷이 왠말이며 PSP가 왠말인가. 학원은 일부 부잣집 아이들이나 부리는 사치쯤으로 여겼다. 그것을 부럽다고 느끼지도 않았다.

ⓒ 신문수. All rights reserved.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방과후에 학원 한두 개쯤은 기본으로 다닌다고 한다. 그렇게 학원투어(?)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저녁시간이 훌쩍 넘는다. 가끔 퇴근길에 집에 돌아오는 아이들의 표정을 보면 지친 직장인의 얼굴에서 보는 피로감 그 이상의 어두운 기운이 느껴지는 아이들도 종종 눈에 띈다. 딱하고 가엽다.

 

그 이유는 명백하다. 다른 아이들에게 뒤처질까봐 하는 부모의 욕심.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이른 나이에 벌써부터 경쟁사회에 끼어든 아이들은 [로봇찌빠]와 같은 부모들의 아날로그 정서를 공유할 만한 시간적, 정신적 여유를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꿈같은 미래를 위해 빼앗겨 버렸다. 그저 사회적 지위는 있고 도덕적 의무는 없는 부유층의 특권이 그렇게도 부러운 부모들에 의해 아이들은 4시40분의 만화를 볼 수 있는 시간을 저당잡힌게 아닌가.

ⓒ 2009 GOGUMI. All rights reserved.


[로봇찌빠] 애니메이션이 시대의 걸작이라 불릴만큼 대단히 높은 완성도를 갖췄는데도 외면당해서 억울하다는 뜻이 아니다. 이래서야 아무리 좋은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고유의 전통적인 캐릭터를 살려낸다 한들 정작 그 컨텐츠를 소비해야 할 주체가 원천적으로 기회를 차단당한 상황에서 어찌 '철완아톰'과 같은 영향력을 구현할 수 있겠는가 하는 얘기다. 현 시점에서 작품의 완성도는 둘째 문제다. 보는 사람이 있어야 잘했니 못했니 말들이 있을텐데 지금은 이슈조차 되지 못하는 상황 아닌가. 실제로 비교적 원작에 가까운 캐릭터 리모델링을 단행해 호평받은[2009 아기공룡 둘리]도 시청율 5%를 넘지 못하고 종영했다. 참으로 암울하기 짝이 없다.

 


ⓒ 프로웍스/둘리나라/SF 스튜디오/투니버스/동우 애니메이션. All rights reserved.

1987년작 보다 오히려 캐릭터 디자인 면에 있어서 원작에 가깝다는 평을 받았으나 둘리 붐을 재현하는데는 사실상 실패한 [2009 아기공룡 둘리]

 


예전에야 만화를 그저 어린이들의 불량식품 정도로만 생각했던 기성세대에 의해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고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변했지 않은가. 기성세대들에게 멸시받던 만화를 보고 자란 그 세대의 아이들이 부모가 된 지금, 전혀 달라지지 않은 국내 컨텐츠 시장의 상황을 보면 한치도 나아간 것이 없어 보인다.

부모들이여, 아이들에게 [로봇찌빠]를 볼 기회를 주자. 그 작은 배려가 미래의 캐릭터 산업을 위한 초석이자 잊혀진 우리 문화의 주옥같은 컨텐츠들을 재발견할 수 있는 기회의 밑거름이 될 것이라 믿는다. 비록 가진 것 없이 가난했지만 그래도 나는 그 시절, 속셈학원 안다니고 만화영화 보느라 불행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필요한건 한단어의 영어가 아니라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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