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각기동대 SSS - 미래 세계를 조명하는 선구안적 주제의식의 발현
[공각기동대]는 확실히 대중적인 취향의 작품은 아니다. '전뇌화'니 '의체'니 '고스트'니 알아듣지 못할 대사가 쉴새없이 오가고, 무엇보다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조명하는 소재 자체가 애니메이션으로는 다소 부담스럽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오시이 마모루의 극장판 [공각기동대(1995)]가 개봉된 이래 총 26화에 달하는 TV시리즈가 두 번 제작되었고, 연달아 [이노센스]라는 두 번째 극장판까지 제작되는 등 [공각기동대]는 그 어떤 시리즈물 보다도 풍성한 스토리로 팬들의 요구에 응해왔다.
아쉽게도 [이노센스]의 흥행 실패 후 (이것은 어디까지나 오시이 마모루식의 난해한 해석에 문제가 있었다고 본다), 2기 TV판 [공각기동대: 2nd GIG]가 사실상 마지막 작품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을무렵, 제작진들이 105분짜리 TV단막극을 제작한다고 발표했을 때 필자를 비롯한 [공각기동대]의 팬들은 날아갈 듯 환호성을 질렀다.
ⓒ 士郞正宗/ Production I.G/講談社/ 攻殼機動隊製作委員會
기본적으로 [공각기동대 Solid State Society] (이하 SSS)는 극장판에 비해 성공적이었던 TV판 SAC시리즈에 베이스를 두고 있다. 먼저 워낙 종류가 많은 [공각기동대]에 대한 이해를 돕기위해 첨언하자면, [공각기동대]라는 작품자체가 오시이 마모루의 극장판으로 알려지긴 했으나, TV판은 오시이 감독의 극장판과는 다른 세계관을 가진다.
극장판 [공각기동대(1995)]에서 주인공인 쿠사나기 소령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위해 공안 9과의 신분을 버리고 추적중이던 인형사라는 무형의 인격체와 동화되어 넷상으로 흘러들어가면서 마무리된다. 반면 TV판의 세계는 "쿠사나기가 인형사와 만나지 않았다면"을 가정하고 출발하는 일종의 패러렐 월드인 셈이다. 따라서 TV판 [공각기동대 SAC]에서 쿠사나기는 여전히 공안 9과의 리더이며, 모호한 철학적 관념에 고뇌하기 보다는 사건에 파고들면서 행동하는 수사관의 이미지를 보다 강하게 어필한다.
ⓒ 士郞正宗/ Production I.G/講談社/ 攻殼機動隊製作委員會
[공각기동대 SSS]는 TV판 2기의 '개별11인 사건' 종료후 2년뒤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어떤 이유에서인지 소령은 공안 9과에서 사라진 상태다. 혹자는 이러한 설정을 두고서 극장판 [공각기동대(1995)]가 TV판 1,2기의 뒤에 연결되는 스토리이며, [공각기동대 SSS]는 바로 극장판 1기의 후속작에 해당한다는 주장 (즉, TV판 1,2기->극장판 1->공각기동대 SSS의 순서라는 얘기)을 하고 있으나, 이는 전적으로 틀리다.
한가지 예를 들자면 극장판 [공각기동대(1995)]에서의 토그사는 신참요원으로 등장하는데, 만약 극장판 1기의 내용이 사건의 시간상 [공각기동대 2nd SAC]뒤에 위치한다고 가정할때, 이미 여러 사건을 해결한 팀의 중요한 멤버인 토그사를 극장판에서 신참으로 묘사한 것에 대한 설명이 되질 않는다. 따라서 앞서 말했듯 [공각기동대]의 극장판과 TV판은 서로 다른 세계관을 가진 별개의 작품이며 TV판은 극장판의 What if..버젼이라고 보는 것이 정석이다. 현재로선 극장판 [공각기동대(1995)]의 정식 후속작은 [이노센스] 뿐이다.
이제 1,2기의 뒤를이어 공개된 [공각기동대 SSS](여기서 3기라고 칭하지 않는 이유는 이 작품이 TV시리즈물이 아닌 단막극 형태이기 때문이다)는 '괴뢰회'라는 수수께끼의 해커가 주적으로 등장한다. 공안 9과의 핵심인 쿠사나기 소령은 행방불명인 상태이며 현재 9과를 이끄는 인물은 뜻밖에도 토그사다. 쿠사나기의 강력한 리더쉽 아래 소수정예의 성격이 강했던 공안 9과는 20명의 인력을 보충, 그 규모를 키워 예전과는 다른 조직이 되어 버렸다.
ⓒ 士郞正宗/ Production I.G/講談社/ 攻殼機動隊製作委員會
이렇게 달라진 공안 9과는 아이들의 불법적 유괴 인프라이자 전뇌해커인 '괴뢰회'의 정체를 찾아나서는 과정에서 실종되었던 쿠사나기의 흔적을 발견한다. 특히나 사건 현장에서 직접 소령과 맞닥드린 바트는 쿠사나기가 '괴뢰회'일 것이라는 의심을 떨칠수가 없다. 한편 9과를 이끌던 토그사는 유괴 인프라의 계획가운데 자신의 딸 역시 대상자에 포함되어 있음을 알게 되는데.... 1
[공각기동대 SSS]는 '의식의 병렬화'가 가능해진 근미래에 무의식의 집합체가 형성해낸 정의감이 어떠한 부작용으로 작용할 수 있는지를 심도있게 그려낸 수작이다. 이전의 [공각기동대] 작품들이 인격의 데이터화로 야기되는 범죄를 다루었듯이 이 작품 역시 물리적 육체가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미래사회의 딜레마를 철학적이고 냉소적인 측면에서 비추고 있다.
ⓒ 士郞正宗/ Production I.G/講談社/ 攻殼機動隊製作委員會
특히나 전작의 난민문제에 이어 노인문제와 아동학대, 저출산 문제 등 현재에도 겪고 있는 사회적 이슈가 근미래라는 가상현실을 통해 조명되는 점은 매우 신선한 충격이다. 아마도 [공각기동대] 시리즈의 매력은 이러한 현 시대의 문제점들이 곧 도래하게 될 세상에서 어떻게 재현될 것인지를 보여준다는데 있는게 아닐까.
또한 이전과는 달리 '공안 9과'라는 조직을 떠나 독자적으로 사건을 수사하게 되는 쿠사나기의 모습또한 실제적으로는 괴뢰회의 일면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이는 아무리 사회적 부조리에 맞선다 하더라도 체제밖의 정의는 올바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결론과 상응점을 이룬다. 이 결말은 [공각기동대 SSS]를 보는 관객의 시각에 따라서는 매우 찜찜한 주제의식이기도 하다.
ⓒ 士郞正宗/ Production I.G/講談社/ 攻殼機動隊製作委員會
사실상 [공각기동대 SSS]가 TV판의 연장선이자 후속작이라 할지라도, 네트워크 속을 2년간 표류하다가 돌아온 소령의 모습은 인형사와 동화되어 "넷은 방대해"라는 대사를 남기면서 끝맺는 극장판 [공각기동대(1995)]의 마지막 장면과도 묘한 연계성을 느끼게 만드는게 사실이다. 따라서 [공각기동대 SSS]를 극장판의 후속작으로 '착각'하는 것도 그리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어쨌거나 [공각기동대]가 계속 그 생명력을 유지한채 새로운 작품이 발표된다는 점은 대단히 고무적이다. 인터넷이 채 보급되기도 전인 1995년에 극장판 [공각기동대(1995)]에서 벌써 네트워크에 대한 개념을 활용하고 있던 것을 감안한다면, [공각기동대] 시리즈의 선구안적인 주제의식과 작품에 담긴 수많은 메시지들이 얼마나 의미심장한 것인가를 새삼 깨닫게 만든다.
비록 생소한 용어와 철학적 접근법이 다소 어렵게 느껴지더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보길 바란다. 그리고 진정한 [공각기동대]의 재미를 발견할때쯤에는 아마도 새로운 [공각기동대] 시리즈가 나와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 [공각기동대 SSS]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士郞正宗/ Production I.G/講談社/ 攻殼機動隊製作委員會 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2007/06/25 - 공각기동대 SAC - 최고의 반열에 오를만한 TV애니메이션
2007/06/25 - 공각기동대 2nd GIG - 절반의 성공으로 만족하는 후속편
- infrastructure의 줄임말로서, 본래는 하부구조·하부조직을 뜻하는 말이지만 일반적으로 기반, 기초 조건을 구성하는것으로서의 의미로 사용된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