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 - 세련된 첩보물로의 완벽한 장르전환
원제인 [캡틴 아메리카]가 아니라 부제인 [퍼스트 어벤져]로 개봉된 국가는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 3곳 밖엔 없었습니다. 물론 그 이유는 뻔했죠. 주인공의 이름부터 미국적인 색체가 너무 강한 캐릭터이니까요. 하지만 [퍼스트 어벤져]는 그런 우려를 불식시키고 캡틴 아메리카라는 캐릭터를 [어벤져스] 프로젝트에 적합한 슈퍼히어로로 리모델링하는데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둡니다.
하지만 약점도 명확했죠. 전편이 2차 세계대전을 무대로 클래식한 전쟁 홍보영화의 공식을 패러디하며 나름대로 드라마에 공을 들인 반면, 액션을 포기하는 바람에 밋밋한 히어로물이 되어버린 것도 사실입니다. 이는 [토르]나 [아이언맨] 시리즈가 지닌 비주얼과 스케일의 강점을 지니지 못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캡틴 아메리카의 모범생 이미지로 인해 오히려 캐릭터 자체의 매력이 반감되는 현상 또한 이 작품의 단점으로 작용합니다.
그렇다면 초유의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던 [어벤져스]의 속편에 앞서 또다시 마지막 포석을 다지는 역할을 맡은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는 어떨까요? 전편이 캡틴의 과거사를 다루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21세기의 인물이 된 스티브 로저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시대가 바뀌었어도 여전히 열혈 애국 청년인 그는 쉴드에 소속된 요원으로 맡은 바 사명에 충실한 삶을 살아 갑니다.
ⓒ Marvel Enterprises, Marvel Studios . All rights reserved.
하지만 그의 가치관을 송두리 째 흔드는 사건이 생깁니다. 쉴드의 수장 닉 퓨리가 습격을 받고, 조직내의 동료들이 하루 아침에 적이 되어버리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이지요. 조직의 가치를 최우선을 생각하던 캡틴 아메리카는 누구도 믿지 못하는 가운데 '개인적으로' 난관을 극복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합니다.
이 기막힌 설정은 그간 캐릭터의 매력을 드러내지 못했던 캡틴 아메리카에 생명력을 불어 넣습니다. 이제 팀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모범생이 아닌 내부의 배신자를 색출하는 독자적인 행동을 통해 캡틴 아메리카는 어벤져스의 부분집합이 아니라 마블 페이즈 2가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개별 캐릭터로서의 가치를 되찾게 되는 것이죠.
더군다나 촌스런 전쟁영화에서 세련된 첩보물로의 완벽한 장르전환은 그야말로 대성공입니다. 단순히 장르적 변화만이 아니라 액션의 컬러가 바뀌었습니다.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가 지향하는 액션은 규모나 스케일보다는 내러티브에 녹아드는 정교함과 사실성에 있는데, 이는 제이슨 본 시리즈가 추구했던 시대적 트렌드와도 부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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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영화에 볼거리만 가득한 건 아닙니다. 의외로 플롯이 탄탄해서 클리셰적인 익숙함에도 불구하고 몰입도가 대단히 좋습니다. 즉 이야기만으로도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는 충분히 재미있다는 얘깁니다. 이렇게 되면 이야기를 위해 액션을 희생한 1편의 선택이 꼭 옳았다고는 할 수 없겠네요.
한편으로 부제인 ‘윈터 솔져’의 활약이 기대만큼은 아닌 점이 아쉽긴 합니다만 1편에서의 시시한 퇴장보다야 훨씬 더 감흥있는 등장으로 돌아온 점에 더 의의를 둘 수 있겠습니다. 이제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개봉까지 약 1년 가량 남았는데, 솔직히 조스 웨던 감독 입장에서는 고민이 클 듯 합니다. 어찌보면 이번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는 모든 슈퍼히어로 영화들에게 과제를 던져 준 [다크 나이트]에 대한 마블측의 회답 중에서 가장 정답에 가까운 영화랄까요.
P.S: (스포일러있음)
1.로버트 레드포드는 국가에 의해 버림받은 CIA의 이야기를 다룬 [코드네임 콘돌]에 나온 적이 있죠. 어찌보면 의도된 캐스팅이기도 한데, 그럼에도 로버트 레드포드의 캐릭터는 조금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가 히드라를 선택한 개연성이 너무 평면적으로 처리되어 버렸어요. 적어도 설정만을 놓고 보면 상당히 입체적인 인물인데 말입니다.
2.쿠키가 두 개라더군요. 저는 한 개만 보고 나왔습니다. OTL
3.영화 초반 캡틴의 수첩에 적힌 박지성이나 올드보이 같은 메모들은 로컬라이징 된 장면입니다. 국가별로 다른 메모가 나온다는 얘기.
4.많은 분들이 첩보물의 장르에 슈퍼히어로를 녹여낸 부분을 극찬합니다만 사실 그건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가 먼저 시도했죠. 오히려 장르적 완성도로만 평가한다면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 쪽이 더 클래식 첩보물의 공식에 충실합니다.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는 이를 21세기식 트렌드에 맞게 가공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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