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왕국 - 디즈니 클래식의 정상탈환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진정한 강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탁월한 각본? 뛰어난 작화? 실사 영화를 방불케하는 연출력? 뭐 틀린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인어공주]에서 [미녀와 야수]. [알라딘]으로 이어지는 황금기 작품들의 공통점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고전을 디즈니식으로 해석한 뮤지컬 동화로 풀어놓았다는 겁니다. 물론 나르시즘에 빠진 디즈니가 자의식 과잉의 징후를 보인 [포카혼타스] 이후 허송세월을 보내는 바람에 드림웍스나 픽사의 약진을 허용하긴 했습니다만 그렇다고 손을 완전히 놓고 있었던 건 아니었지요.
디즈니 나름대로는 꽤 오랜 기간 이런 저런 시도를 해 보며 돌파구를 찾으려 했습니다. 존 라세터를 끌어다가 만든 [볼트]로 픽사의 스타일을 적용시켜보기도 했고, [공주와 개구리]처럼 구식 셀 애니메이션의 부흥도 타진해봤습니다. 하지만 좀처럼 디즈니의 색깔에 꼭 맞는 작품을 찾아내기란 쉬운일이 아니었습니다. 의외로 정답은 가까이 있었는데 말이죠. CG와 3D, 그리고 디즈니 정통 스타일에 충실한 고전의 재해석. 적어도 [라푼젤]만큼은 CG시대에 디즈니가 대응할 수 있는 최선책이 무엇인가를 가장 잘 보여준 작품이었습니다.
디즈니가 선보이는 신작 [겨울왕국]은 [라푼젤]이 디즈니에게 얼마나 소중한 교훈이었는지를 새삼 느낄 수 있는 작품입니다.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눈의 여왕'과 디즈니의 만남. 생각만으로도 그림이 그려지지 않습니까?
ⓒ Walt Disney Pictures. All Right Reserved.
모든 것을 얼려 버리는 능력을 타고난 아렌델 왕국의 왕위 계승자 엘사 공주는 어린 시절 동생인 안나와 놀아주다가 불의의 사고를 저지릅니다. 딸을 데리고 급히 트롤를 찾아간 왕과 왕비는 엘사의 능력을 타인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봉인할 것을 심각하게 권합니다. 더불어 안나의 기억에서 이 사실을 지워버리게 되지요. 엘사는 스스로를 고립시켰고, 그렇게 언니와 멀어진 안나는 궁전에서 외롭게 성장합니다.
마침내 엘사가 왕위 계승을 받는 날, 모처럼 마주한 두 자매가 서먹한 감정을 정리하게도 전에 엘사의 숨겨진 능력이 만천하에 드러납니다. 순간에 아렌델은 눈덮힌 겨울로 변모하고 엘사는 산 속 깊은 곳으로 도망갑니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건 오직 안나 뿐. 언니를 설득하러 가는 길에 만난 얼음장수 크리스토프와 순록 스벤, 그리고 눈사람 울라프와 함께 안나는 아렌델을 원래대로 돌려놓기 위한 모험을 시작합니다.
예상한대로 [겨울왕국]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모든 전통이 담겨있는 작품입니다. 매사에 긍정적인 왈가닥 여주인공, 캐릭터 프렌차이즈를 대놓고 노리고 만든 조연 캐릭터들, 귀에 착 감기는 뮤지컬 스코어, 전형적인 악당, 적절한 유머와 위기, 그리고 시대를 초월한 해피엔딩. 모든 것이 디즈니스럽습니다. 익숙한, 너무나도 익숙하지만 그리운 첫사랑에 대한 향수와도 같은 이 작품은 모든 애니메이션사가 픽사같은 파격성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는 진리를 깨닫게 해줍니다.
ⓒ Walt Disney Pictures. All Right Reserved.
비록 셀 애니메이션에서 CG로 스타일을 바꾸었지만 변화된 시대에 맞게 리모델링된 디즈니의 비주얼은 여전히 환상적이며 눈부십니다. 실제로 궁전에서의 향연 장면은 전설적인 걸작 [미녀와 야수]를 떠올리게 합니다. (사실 최첨단 기법이 적용된 작품과 비교가 된다는 자체만으로도 [미녀와 야수]는 기념비적인 작품입니다만...) 과거의 디즈니 작품처럼 뮤지컬의 비중이 부쩍 늘어난 것도 [겨울왕국]을 감상하는 또다른 즐거움입니다.
캐릭터 간의 균형감도 꽤나 좋습니다. 적절한 시기에 반전을 선사하는 캐릭터도 괜찮았고, 위기감을 조성하는 얼음여왕의 고통에 감정이입하는 과정도 나쁘지 않습니다. 주인공인 안나와 크리스토프는 다소 스테레오 타입이긴 합니다만 아무렴 뭐 어떻습니까. 그토록 지겹다고 생각했던 클래식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이토록 반갑게 느껴질 줄이야. 디즈니의 완벽한 부활을 보며 다른 경쟁사들은 과연 어떤 느낌일까나요.
P,S:
1.실은 (대부분 관심도 없었겠지만) 작년 이맘때 즈음 러시아에서 만든 [눈의 여왕]이라는 애니메이션이 개봉된 바 있습니다. 박보영과 이수근이 더빙을 했었는데... 결과는 뭐... 안봐도 블루레이죠.
2.눈의 여왕 캐릭터인 엘사에 대한 재해석이 신선합니다. 모든 것을 얼어붙게 만드는 초능력은 선물인가 저주인가 하는 차원에서의 담론을 가능케하며, 이는 '엑스맨'을 관통하는 뮤턴트들의 딜레마와도 묘한 연관성을 지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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