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녀석, 맛나겠다 - 다문화 가정과 입양에 대한 풍자 우화
다소 원초적인 제목을 가진 애니메이션 [고 녀석, 맛나겠다]는 일본에서만 150만부 이상이 팔려나간 미야니시 타츠야의 그림동화를 원작으로 만든 작품입니다. 공룡시대를 다룬 이 작품은 원작의 눈높이처럼 아동취향에 걸맞은 귀여운 캐릭터와 아기자기한 이야기가 잘 어우러진 가족용 애니메이션이지요. 물론 원작의 캐릭터 디자인이나 내용과는 많이 달라졌지만 나름 탄탄한 원작의 재구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 宮西達也/ ポプラ社.
어느날 암컷 초식공룡이 버려진 알을 주워다 정성껏 키우기 시작합니다. 거친 야생의 풍파 속에서 무사히 자란 알은 어미의 다른 알과 함께 부화하는데, 이렇게 태어난 아이가 주인공 하트입니다. 그런데 이 녀석은 생김새가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다름아닌 초식공룡의 적, 육식공룡이기 때문이지요. 무리의 우두머리는 전체의 안전을 위해 아이를 내다버릴 것을 종용하지만 어미는 차마 그러질 못하고 무리를 이탈해 홀로 아이들을 키우게 됩니다.
아이들이 점점 자랄 무렵 하트는 우연히 자신과 동류인 육식공룡들의 사냥장면을 목격합니다. 같은 공룡을 먹어치우는 모습을 본 하트는 충격에 빠지지만 이내 자신도 그들과 같은 종족임을 알게 되는 순간, 가족의 곁을 떠나게 되지요. 그렇게 세월이 흘러 늠름한 육식공룡으로 자란 하트는 길에 버려진 초식공룡의 알을 발견합니다. 때마침 부화한 아기공룡은 하트를 아빠라 부르며 따라 다니고, 이렇게 두 이종의 공룡은 서로 부자간의 정을 나누게 됩니다. 하트의 어머니가 그러했듯이 하트 역시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이 과정에서 많은 난관들을 극복하게 되지요.
ⓒ 宮西達也/ ポプラ社/おまえうまそうだな 製作委員会.
이렇듯 이 작품은 이종간의 적대감이나 편견도 갈라놓을 수 없는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을 모태로 험난한 자연의 법칙을 극복하는 공룡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사실 천적간의 우정을 다룬 드라마는 그리 새롭다고는 할 수 없는데, [고 녀석, 맛있겠다]가 더욱 괜찮아 보이는건 여타의 상업적 애니메이션과는 달리 살아가는 데 필요한 미덕들을 아이들이 쉽게 배울 수 있도록 교훈적인 우화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사실 작품의 내용을 요모조모 뜯어보면 제법 어른들의 입맛에 맛게 이끌고 갈만한 요소들이 보이지만 욕심을 부리지 않습니다.
일본인들 특유의 비장미와 사무라이 정신을 투영하는 1:1 대결씬 같은 요소들은 확실히 좀 오버스런 면도 없잖아 있습니다만 전반적으로는 훈훈한 우화입니다. 다문화 가정과 입양에 대한 여러가지 우려가 사회적인 화두로 떠오르려는 지금 어른들에게도 많은 점들을 시사하는 작품이기도 하지요. 약육강식의 백악기를 배경으로 한 만큼 다소 잔혹스러울 수 있는 부분들도 아이들이 거부감없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영리하게 연출한 점도 칭찬할만 합니다.
거품경제의 몰락과 더불어 일본 애니메이션의 르네상스가 끝난 현 시점에서 극장판다운 작품들이 점점 사라져가고는 있지만 이렇게 간간이 나와주는 작품들을 보면 여전히 건재한 일본 애니메이션의 저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눈요기나 말초적인 재미를 추구하는 작품이 아닌 관계로 흥행성은 조금 의심스럽습니다만 여튼 극장 상영이 오래 지속되는 한 방학철을 맞이한 아이들과 꼭 함께 관람하시길 권합니다.
P.S:
1.일본어 제목을 한국어로 잘 번역한 사례 같습니다. 하트의 아들이 되는 꼬맹이는 일본어로 '우마소'(맛있겠다)인데, 한국에서는 '맛나'로 번역했어요. 감칠맛나는 작명센스가 아닌가 싶습니다. (다만 도서판은 그냥 '고 녀석 맛있겠다'로 번역했군요)
2.[폭풍우치는 밤에]와 비슷한 톤의 작품이지만 전체적인 캐릭터의 완성도와 재미면에선 이 작품이 훨씬 낫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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