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터스 투 줄리엣 - 데이트용 영화로는 합격점
[레터스 투 줄리엣]은 아만다 사이프리드라는 배우의 특징을 아주 잘 살린 작품입니다. [맘마미아]이후 최근까지 5편의 영화에 연달아 출연할만큼 과욕을 보여준 그녀이지만 실상 그녀의 그러한 폭발적인 행보와는 달리 주연급으로서의 인지도나 티켓파워는 아직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아직까지도 아만다의 대표작하면 [맘마미아]가 먼저 떠오르는데, 실상 [맘마미아]의 주연이 메릴 스트립이었던걸 감안하면 적시적소에 배치된 훌륭한 조연 캐릭터를 잘 소화했다는 방증이기도 하지요.
그런 의미에서 아만다 사이프리드는 원톱보다는 다른 배우들과의 앙상블을 통해 더 빛을 내는 배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레터스 투 줄리엣]은 아만다 사이프리드가 전면에 나와있긴 하지만 [줄리아]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배테랑 여배우 바네사 레드그레이브의 서포트를 받아 좋은 연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실 어설픈 팜므파탈을 흉내냈던 [클로이]나 동년배이면서도 훨씬 자극적인 카리스마를 지닌 메건 폭스에 가려진 [죽여줘 제니퍼] 같은 작품들은 아만다 사이프리드에게는 맞지 않아요. 인상적인 연기력이나 빼어난 외모를 가지지 못한 그녀로서는 사랑스럽고 귀여운 이미지를 십분 발휘할 수 있는 로맨틱 코미디가 아직까지는 안전합니다.
ⓒ Summit Entertainment/ Applehead Pictures. All Right Reserved.
자, 그럼 [레터스 투 줄리엣]의 만족스런 캐스팅에 대해 언급했으니 이제 작품적인 면을 좀 살펴봐야겠죠. 최근 헐리우드의 로맨스 장르는 미국이라는 공간적 배경을 탈피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현실의 미국이 너무 팍팍해지다보니 상대적으로 유럽이 더 낭만적으로 보이는 것일까요? 영화의 배경은 이탈리아입니다. 약혼자와 함께 이탈리아에 도착한 주인공 소피는 자기 관심사만 챙기는 약혼자에게 무료함을 느끼던 중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이 되었던 베로나에서 '줄리엣의 발코니'로 배달되는 팬레터에 일일이 답장을 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모처럼 소일거리를 찾아낸 소피는 이들과 함께 어울리던 어느날 담벼락에 고이 숨겨진 50년된 편지 한 장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 편지의 주인인 클레어에게 답장을 보내게 되지요.
답장을 받은 클레어는 당장 손자를 데리고 베로나까지 찾아옵니다. 근데 이 손자라는 녀석이 무척 까칠해요. 고마워하기는커녕 왜 쓰잘데기 없는 짓을 해서 할머니의 마음을 흔들어 놓느냐고 소피를 원망하거든요. 이내 소피와는 티격태격하는 사이로 발전합니다. 왜 옛말에 그런 얘기가 있죠. 싸우다가 정든다고. 이후의 이야기는 안봐도 블루레이에요. 이처럼 [레터스 투 줄리엣]은 수학공식만큼이나 과정과 결과가 정해진 정형화된 영화입니다.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닌, 딱 그만큼의 재미와 내용을 보여주는 영화죠. 결혼을 앞둔 여자의 흔들리는 여심과 옛사랑을 찾아나선 노년의 여인이라는 내러티브는 마치 [맘마미아]의 변주처럼 느껴집니다.
ⓒ Summit Entertainment/ Applehead Pictures. All Right Reserved.
너무나도 뻔한 내용과 로맨틱 코미디의 온갖 클리셰들을 모아다가 스파게트처럼 버무린 [레터스 투 줄리엣]은 그럼에도 제법 준수한 편입니다. 지난번 [로마에서 생긴 일]의 리뷰(바로가기)에서 정형화된 로맨틱 코미디의 밋밋함에 대해 혹평을 늘어놓은 적이 있는데, 적어도 [레터스 투 줄리엣]은 전형적이긴 해도 지루하진 않습니다. 이는 옛사랑을 찾아나선 클레어와의 여정에서 사랑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 소피의 성장에 쉽게 감정이입이 되기 때문이며, 까칠남과 소피가 티격태격하는 와중에서 남녀간의 밀고 당기는 맛이 살아있기 때문이죠. 영화의 배경이 된 이탈리아의 풍경을 멋지게 잡아내는 건 보너스입니다.
한편 클레어 역에 바네사 레드그레이브를 캐스팅한건 적절했어요. 품위있고 단아한 영국 레이디의 모습을 간직해 온 덕분에 세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아름답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왕년의 '장고', 프랑코 네로가 등장은 정말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너무 오랜만에 스크린에서 본 탓인지 이루 말할 수 없이 반갑더군요. 아직 마초적 매력이 물씬 풍기는 것이 숀 코네리처럼 노년에도 현역으로 계속 활동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대로 잊혀지기엔 너무 아깝잖아요.
결국 [레터스 투 줄리엣] 같은 헐리우드 로맨틱 코미디가 얼마나 신선하냐 진부하냐를 따지는 건 무의미한 일인 것 같습니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이런 작품들은 계속 나올 것이고 관건은 흥미로운 소재와 디테일, 그리고 얼마나 관객에게 어필할 수 있는 배우가 등장하는가의 문제겠죠. 적어도 볼 만한 영화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 시점에서 [레터스 투 줄리엣]은 하루 저녁의 데이트용 무비로는 그리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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