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매그니튜드 8.0 - 감동적인 성장 드라마와 재난물의 완벽한 조합
여기 미라이(한자로 未來이며, 미래와 관련된 중의적 표현을 함축한 이름이다)라는 한 소녀가 있다. 맞벌이 때문에 자녀들을 잘 챙기지 못하는 부모에게 불만가득한 그녀는 명문여중에 다니고 있지만 장래 희망도 없이 매사에 시니컬하고 까칠하다. 그녀의 남동생 유우키는 순종적이고 속이 깊은 아이로 매사에 불만투성이인 누나를 신경쓰는 착한 아이다. 부모를 대신해 여름방학 첫날 로봇 전시회에 가고 싶다는 동생을 데리고 오다이바에 간 미라이는 짜증만 가득한 '세상이 모두 부서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직후, 진도 8.0의 강진이 도쿄를 덮친다.
2005년 후지 텔레비전은 애니메이션의 상식을 뒤집는다는 개념의 새로운 시도를 단행해 주목을 받았다. 이름하여 '노이타미나 (noitaminA, 애니메이션을 거꾸로 적은 단어)'로 알려진 이 계획은 애니메이션에 익숙치 않은 시청자들을 확보한다는 취지하에 목요일 새벽시간대로 방영시간을 편성, 주로 2030 세대의 여성층을 적극 공략하는 형태를 보여왔다. J.C STAFF의 [허니와 클로버]로 포문을 연 노이타미나는 대부분 인기 코믹스를 원작으로 제작된 작품들이 주를 이루어 작품의 개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에 직면했으나, 이를 극복하기 위해 [동쪽의 에덴]이라는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이 방영시키면서 이미지 쇄신에 성공한다.
TV 애니메이션의 홍수속에 단비와도 같았던 오리지널 작품 [동쪽의 에덴]은 노이타미나 작품군이 가진 '하이 퀄리티'의 특장점을 극대화 시킨 작품으로서 나르시즘에 빠진 제패니메이션계가 잊고 있던 독창성의 확보와 실험정신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주는 계기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러한 방향성의 일환으로 후속 방영된 작품이 바로 [도쿄 매그니튜드 8.0]이다. 노이타미나라는 테두리가 없었다면 이 작품을 만들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감독과 제작자의 말처럼 [도쿄 매그니튜드 8.0]은 노이타미나 시리즈 1회분 방송 사상 최고의 시청율(5.8%)을 기록하며 노이타미나 기획의 성공적인 변신을 알렸다.
ⓒ 東京マグニチュード8.0製作委員会. All rights reserved.
안타깝게도 [도쿄 매그니튜드 8.0]은 재난물이라는 소재를 애니메이션에 도입한 실험적 성향으로 일본내에서 큰 화제가 된것과는 달리 정작 방영이 이루어지지 않은 국내 애니메이션 팬들에게는 외면받았던 '비운의 걸작'이다. 비록 [일본침몰]이나 [블레임]과 같은 일련의 일본식 재난영화들이 기대이하의 허접함을 보여준 것은 사실이지만 [도쿄 매그니튜드 8.0]은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통틀어 역대 최고의 재난물 반열에 올려놓아도 손색이 없을 만큼 잘빠진 작품이다.
이야기의 기본적인 틀은 지진이 발생한 이후 실종된 남동생을 찾아 오다이바에서 집까지 걸어서 돌아가야 하는 주인공 미라이와 이들을 돕는 친절한 여성 마리, 이렇게 세 사람의 이야기를 일종의 로드무비 형식으로 그려나가고 있는데 미라이라는 사춘기 소녀의 감수성을 토대로 쌓아가는 이야기의 얼개는 일개 애니메이션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탄탄하며, 11화의 비교적 짧은 회차임에도 불구하고 재난물과 성장 드라마라는 장르물의 특성을 잘 이끌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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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대자연의 힘앞에 무력한 인간들에게 있어서 유일한 희망은 서로를 돕고 의지하는 것이라는 다소 진부한 휴머니즘적인 교훈과 역시 가족이 최고라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이처럼 효과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작품도 흔치 않다. 이 작품을 보고나니 외아들로 자라 어느덧 아저씨가 되어 버린 나이지만 문득 누나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웬수같을지언정 싸울 수 있는 형제가 있다는 건 그 존재만으로도 행복한 것이 아닐까. 2009 최고의 TV 애니메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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