퀼 - 어느 맹도견의 삶과 죽음
아마도 [퀼]을 접한 관객들은 영화의 오프닝 크레딧에 처음 뜨는 감독의 이름을 보며 의아하다는 느낌을 받았을지 모른다. 최양일 감독. 귀화하지 않은 재일교포의 신분으로 일본 영화계에서 활동중인 그는 국내 관객들에게 있어 [피와 뼈], [수] 같은 하드보일드한 영화로 더 잘 알려진 감독이기 때문이다. 그런 최양일 감독이 [퀼]이라는, 모름지기 정상적인 '전체관람가' 등급의 영화를 만들었다는 사실이 상당히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가.
2004년작인 이 작품의 국내개봉이 6년이나 늦어진건 아쉽지만 그래도 요즘같이 온가족을 동반해 볼 수 있는 영화가 드문 환경속에서 [퀼]의 개봉은 일단 환영할 만한 일이다. 더욱이 [퀼]은 일본내 개봉당시 꽤나 좋은 흥행스코어를 기록하며 사랑받았던 영화다. 몇몇 극장에서만 한정개봉하는 모양새로 보아하니 한국에서도 그만큼의 좋은 성적을 거둘리는 없겠지만.
이시구로 켄고와 아키모토 료헤이의 베스트셀러 [내 마음의 눈 쿠이루](원제: 맹도견 퀼의 일생 盲導犬クイ-ルの一生)를 원작으로 만든 이 작품은 애완견의 차원을 넘어 동반자로서의 개를 조명하고 있다. 따라서 일반적인 일대기적 작품이 사람을 중심으로 전개되는데 반해 [퀼]은 리트리버 한마리의 일생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엮어나가는, 조금은 독특한 시각의 영화다.
ⓒ 2004 Quill Film Partners. All rights reserved.
하지만 [퀼]은 [벤지]나 [에이트 빌로우] 등 개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여타의 헐리우드 영화처럼 영웅주의적인 색채나 인공적인 감동코드, 혹은 극적인 사건사고 없이 일본영화 특유의 잔잔함으로 승부하고 있는데, 영화 초반 강아지들이 태어난 순간부터 서서히 눈을 감는 주인공 퀼의 모습을 비추기까지 마치 십수년의 기간을 실시간으로 촬영해 온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생생하다.
오히려 이렇게 잔꾀를 부리지 않는 영화의 잔잔함과 도식적 플롯이 자극적이고 다이나믹한 영화를 찾는 관객에게 있어서는 수면제처럼 작용할 가능성도 있겠지만 일본영화의 조용한 감동을 맛볼 줄 아는 관객이라면 충분한 감동과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영화초반 귀여워 미칠것만 같은 퀼의 강아지 시절 모습은 그야말로 웬만한 돌심장이 아니고서야 마음에 내제된 극강의 애견본능을 일깨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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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양일 감독이 '정말로 이 녀석을 죽여버릴까 싶은 생각이 든 적도 있었다' 고 말할 정도로 촬영장에서 속을 썩였다는 주인공 퀼 역의 래피는 그 비하인드 스토리야 어쨌든 사람보다 더 훌륭한 연기를 선보인다. 혼자 극장을 찾아 [퀼]을 보고 나니 유독 추운 이 겨울, 여친도 없는데 나도 개를 한 마리 키워볼까 싶은 생각이 든다.
* [퀼]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2004 Quill Film Partners. 에 소유됨을 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