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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반게리온: 파(破)에 관한 10가지 담론

페니웨이™ 2009. 12. 7.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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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리뷰는 [에반게리온: 파]의 스포일러가 대량 포함된 것으로서 작품을 관람하지 않은 독자분들의 감상은 적절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스포일러 없는 리뷰를 보시려거든 여기(클릭)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필자는 그다지 [에반게리온]의 매니아라고 불릴만큼 열성적인 팬은 아니다. 기존 TV판과 구 극장판을 고작 총 4번정도 감상했을 뿐이고, [에반게리온: 서] 역시 4번정도 감상했으며, 이번 [에바게리온: 파]를 이제 두 번 관람했을 뿐이다. 따라서 기억하지 못하고 넘어간 사실이나 또는 기존 [에반게리온]의 세계관을 미처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있음을 인정한다. 이 글은 어디까지나 [에반게리온: 파]에 생긴 변화를 기점으로 생긴 담론을 잡담식으로 재미삼아 풀어놓은 글일 뿐이다.



    1.시키나미 아스카 랑그레이  


개인에 따라 느낌의 차이가 있겠지만 [에반게리온: 파]에서 가장 큰 변화를 겪는 캐릭터는 바로 아스카다. 그녀는 고정 멤버들 중 유일하게 이름이 '소류'에서 '시키나미'로 바뀌었는데 이는 항공모함의 이름에서 구축함으로의 변화가 암시하듯 극중 배역에 있어서도 아스카가 차지하는 비중이 축소됨을 의미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신지,레이와 비등한 존재감이 여전한 것에 비해 생각보다 빨리, 그것도 에바 3호기의 테스트 파일럿으로 토우지를 대신해 만신창이가 되어 퇴장하면서 기존팬들에게 큰 충격을 준다는 점은 대단히 파격적이다.

첫 등장씬도 TV판과는 전혀 다르다. 다소 코믹하게 설정된 해상에서의 조우씬과는 달리 아스카는 제7사도와의 공중전을 통해 신극장판에서 데뷔전을 치룬다. 그것도 신지와 함께 탑승한 것이 아니라 단독 출격으로 말이다. 까칠한 성격은 여전하지만 잠꼬대로 엄마라고 웅얼대며 눈물 흘리는 어린아이같은 모습이 사라졌다. 그녀는 함께하는 것의 즐거움을 깨닫는다는 점에서 레이와 같이 진보하는 캐릭터로 바뀌지만 타인의 행복을 위해 홀로 남는 것을 선택하는 자주적인 어른의 모습에 가깝다. 특히 레이가 준비한 식사마련을 깨지 않기 위해 말없이 테스트를 자원한다는 점에서 그녀의 진보는 놀랍다. 레이는 그런 아스카의 배려에 대해 '고맙다'며 음성메시지를 남긴다. 끝까지 화해하지 않았던 TV판과는 크게 달라진 '관계의 변화'다.

ⓒ GAINAX/ Project Eva/ TX. All rights reserved.

▲ TV판에서 아스카의 첫 등장씬. 고상한 척 원피스 치맛자락을 휘날리며 바보 삼총사와 조우하는 코믹한 장면을 모두 기억할 것이다. 또한 박력만점인 해상에서의 전투도 신지와 함께 출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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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반게리온: 파]에서 아스카의 첫 등장씬. 레이아웃은 흡사하지만 느낌은 전혀 다르다. 또한 해상이 아니라 공중에서 단독 데뷔전을 치루는것도 차이점을 보인다.  


무엇보다 아스카는 '대위'의 직책을 가진 에바 파일럿 유일의 직업 군인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녀는 더 이상 카지에게 메달리거나 응석부리지 않으며 엄마와 관련된 트라우마에 시달리지도 않는다. 아스카는 분명히 성장했다. 그녀의 비중이 작아진 점은 아이들의 성장담에 초점을 맞춘 [에반게리온]의 특성상 그녀가 이미 어른에 근접한 캐릭터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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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생각보다 짧은 등장에 당혹스럽기도 하지만 [에반게리온: Q]에서 멋지게 재등장할 것이라는 점은 차회예고를 통해 이미 밝혀졌다. 하지만 애꾸눈 하록의 안대를 착용한 그녀라니! 그간 가이낙스의 오타쿠들이 [천원돌파 그렌라간]이나 [에반게리온] 구 극장판, [에반게리온: 서]에서 하록선장의 걸음걸이를 패러디한 적은 있지만 이것만큼은 순간 웃음이 나왔다. 그러나 그녀의 컴백 예고로 관객들의 환호성이 가장 많이 터져나온 것도 사실이다.



    2.아야나미 레이  


레이와 유이, 그리고 에반게리온 초호기. 이 셋은 신지의 어머니라는 하나로 연결된 동질성을 지닌다. 그리고 TV판에서는 초호기와 유이의 동일성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신지와 초호기의 첫 대면에서 초호기는 스스로의 의지로 움직여 신지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한다. 하지만 [에반게리온: 서]에서는 이 의미심장한 장면이 생략되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추측이 가능했는데, 이번 [에반게리온: 파]를 통해 보다 분명해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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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바로 아야나미 레이의 변화와 관련되어 있다. TV판에서 신지를 직접적으로 보호하는 초호기의 존재 대신 신극장판에서는 레이가 그 자리를 메꾸기 때문이다. 레이는 [에반게리온: 파]를 통해 신지에게 연민의 정을 느낀다. 이러한 감정은 놀랍게도 신지를 위해 요리를 배우는 것으로 표면화된다. 이렇게 요리를 배우는 행동의 이면에는 신지와 겐도 사령관을 이어주기 위한 유이의 무의식이 투영되어있다. 똑같이 요리를 연습하는 아스카가 레이를 대적할 수 없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TV판 22화 '적어도, 인간답게'에 나온 엘리베이터 씨퀀스는 [에반게리온: 파]에서 확연하게 바뀐다. 우연히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아스카와 레이 사이에 긴장감이 흐르는 가운데, 아스카가 레이를 비난하며 따귀를 날리는 순간 레이는 아스카의 팔을 막아낸다. 이는 그대로 따귀를 맞는 인형같은 느낌의 레이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자기방어와 주관의 표현을 할 줄아는 캐릭터로 바뀌었다는 암시다. 그리고 앞으로의 전개에 있어 신지와 가장 밀접한 관련을 맺는 캐릭터가 아스카가 아닌 레이임을 알려주는 징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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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판 22화의 한 장면. 긴장감이 흐르는 이 엘리베이터씬의 마지막에서 아스카는 인형처럼 행동하는 레이에게 분노의 싸대기를 날린다. 아스카에게 맞아 뺨이 부어오른 레이는 역시나 인형처럼 무표정하다. 그러나 [에반게리온: 파]는 다르다. 이번 작품에서 레이는 아스카의 손찌검을 당당하게 막아낸다. 그리고 신지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보다 분명하게 표현하며 아스카가 신지를 '포기'하게 만든다.


더 나아가 제10사도와의 대결씬 중 그 유명한 레이의 자폭 시퀀스에서 레이는 이렇게 말한다. '신지가 더 이상 에바에 타지 않아도 되게 하겠어!'. 늘 과묵하게 행동으로 자신을 표현하던 레이는 비로소 자신의 의지를 분명하게 말로 표현할 줄 아는 강인한 캐릭터가 된다. 그리고 이는 곧 에바 초호기를 각성시키는 계기를 앞당기게 된다.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에서 리리스와 융합해 서드 임팩트를 일으키는 세 번째 레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3.이카리 신지  


소심하고 나약한 모습은 남아있지만 신지는 더 이상 예전의 찌질한 신지가 아니다. 이미 전작의 야시마 작전에서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를 거의 씻어낸 그는 이번 작품에서 능동적이고 열혈충만한 캐릭터로 바뀌었다. 그는 레이에게 보다 적극적으로 대쉬하며 (신지가 레이에게 도시락을 직접 건네주는 장면은 무려 두 번이나 등장하는데 이를 계기로 레이의 캐릭터도 급격한 변화를 이룬다), 제10사도에게 흡수된 레이를 구출하는 장면에서는 집요함마저 보여준다. 레이는 신지의 구출을 거부한채 초호기로부터 등을 돌리고 있지만 신지는 끝까지 레이를 향해 손을 뻗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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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군다나 신지는 아직 카오루와의 만남 이전에 이미 각성의 단계에 이르렀다. 때문에 카지는 예정된 사도들과의 만남 이전에 초호기의 각성이 너무 빨리 일어났기 때문에 '제레'가 가만있지 않을것이라며 중얼거린다. 막판 카오루가 초호기를 봉인하며 신지와의 조우를 예고한채 끝을 맺긴하지만, 과연 신지와 카오루와의 관계가 어떻게 바뀔 것인지는 현재로서 예측조차 불가능한 상태다.



    4.마키나미 마리 일러스트리어스  


아마도 [에반게리온]의 세계관을 부수는 핵심적인 인물이라고 생각되나 아직 그 존재감이 확실하지 않아 수많은 추측만을 낳은채 차기작을 기다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 성격적으로는 열혈 및 외향적인 성향을 띄는 과거의 아스카와 오버랩되는 부분이 있지만 어딘지 모르게 나기사 카오루의 신비스런 분위기도 느껴지는 캐릭터다. [에반게리온: 파]의 파격성은 그녀가 프리타이틀의 첫 액션씬을 주도하는 장면으로 시작되는데, 사실상 [에반게리온: 파]의 두드러진 변화를 이루는 중요 사건들은 모두 그녀의 존재 때문에 가능한 일들이다.

아스카가 에바 3호기에 탄채 치명적인 부상을 입는것도 에바 2호기를 타고 출격할 마리를 위한 복선이며, 각성 직전의 초호기를 타기 직전, 전투 장소에 신지를 내려놓아 레이의 영호기가 사도에게 먹히는 것을 바라보게 한 것도 마리의 행동이다. 사실상 이 때문에 카지의 비중은 확 줄어버렸다. 더군다나 가설 에바 5호기의 예정된 자폭과 봉인되어있던 제3사도의 각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아직 해답이 나오지 않은 상황이지만 이 역시 마리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설정이다. [에반게리온: 서]에서 익숙한 사도들의 번호가 하나씩 뒤로 밀렸던 것도 마리의 등장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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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카의 퇴장 이후 에바 2호기를 조종하며 숨겨진 궁극의 모드인 '더 비스트'를 발동시키는 그녀의 모습은 무척이나 섬뜩하게 느껴지는데, 전투의 승리를 위해선 팔하나쯤은 줘도 상관없다는 식의 냉철한 판단력, 전투 그 자체를 즐기기 위해 에바에 탑승하며, 자신의 목적을 위해 오히려 어른들을 이용한다는 그녀의 말로 미루어 보면 싸움을 무척이나 싫어하고, 어른들의 목적을 위해 이용당하는 신지와 완전한 대칭점에 있는 캐릭터로 보아도 무방하다. [에반게리온: Q]에서는 그녀의 등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보다 분명하고도 구체적으로 드러날 것이라 생각된다. 극단적으로 말해 마리는 '인간이 아닌 그 어떤 존재'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하나의 가능성은 마리가 아스카의 클론(혹은 그 어떤 혈연적인 연관이 있는 인물)일 가능성이다. 이는 다소 억측에 가깝기는 하나, '시키나미'라는 이름을 쓰는 아스카와 '마키나미'라는 이름을 쓰는 마리 사이에 묘한 대칭점이 느껴진다는 점, 그리고 둘 다 에바 2호기에 탑승이 가능하다는 점, 캐릭터 상으로도 유사한 부분이 있다는 점 등으로 추측이 가능하다.

그나저나 '냄새가 좋군. 너에게 LCL의 냄새가 나'라니! 헐, 뭐야 이 여자, 무서워. 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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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이름없는 사도들  


[에반게리온] 신극장판에 이르러 가장 눈에 띄는 변화들 중 하나는 사도의 이름이 사용되지 않고 단지 제3사도, 제4사도와 같이 순번으로만 호명된다는 점이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고, 아마도 [에반게리온: Q]에서도 별다른 해답은 주어지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아마도 TV판에 등장했던 사도들 중 몇몇이 이번 신극장판에 등장하지 않게 되면서 이름에 대한 필요성 자체가 사라졌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TV판에서 아스카의 첫 데뷔전 상대를 장식한 제6사도 가기엘은 [에반게리온: 파]에서 등장하지 않는다. 제7사도로 명명되어 에바 2호기와 공중전을 치루는 새로운 사도는 얼핏보면 TV판의 제7사도 이스라펠의 설정과도 닮아있다. 일단 아스카의 선방에 의해 한번 깨진 코어가 실제로는 페이크라는 것이 그 점을 입증한다. 덕분에 신지와의 유쾌한 합동작전을 펼쳤던 에피소드는 송두리째 날아갔지만 적어도 아스카의 등장씬 만큼은 대단히 카리스마있고 폼나게 연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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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반게리온: 파]에서 아스카와 첫 일전을 치루는 사도는 가기엘이 아닌 그냥 '제7사도'다. 형태면에선 완전히 새로운 디자인의 사도이지만 아스카의 일격에 의해 깨진 코어가 아닌 또다른 코어를 가진 것으로 보아 TV판의 제7사도 이스라펠(위의 사진)과 비슷한 설정이다. 다만 신지와의 합동작전으로 인해 합숙을 하게되는 이벤트, 신지와 아스카가 서로에게 한발짝 다가가는 중요한 계기가 이번에는 생략되어 있다.


TV판에서 등장했던 제8사도 산달폰과 제9사도 마타라엘, 제11사도 이루엘, 제12사도 레리엘, 그리고 제 15사도 아라엘은 출연기회를 박탈당했다. 그러나 제10사도 사퀴엘은 이번에 제8사도로 등장하고, 사도화 된 에바 3호기(제13사도 발디엘)가 제9사도로 등장한다. 문제의 제10사도는 생김새와 파괴력 면에서 TV판의 제14사도 제루엘과 닮았으나 0호기 및 레이와의 융합을 시도한다는 면에서 제16사도 알미사엘의 특징도 동시에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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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바 초호기의 각성은 제10사도는 외형과 파괴력에서 TV판의 제루엘과 닮았지만 레이와의 물리적 접촉 및 융합을 시도한다는 점에서는 오히려 알미사엘과 가깝다. 특히나 레이와의 융합이라는 설정을 이미 사용해 버린 관계로 다음 작품에서는 더 이상 TV판에 등장한 사도의 설정을 가져다 쓸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남은 3개체의 사도는 뭔가 획기적으로 다른 사도가 될 확률이 크지만 이미 나머지 사도의 출연 이전에 초호기가 각성 단계에 이르렀기 때문에 더이상의 사도는 등장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에반게리온: 서]에서 제5사도를 쓰러뜨린 직후 이카리 사령관은 '어떠한 수단을 써서라도 앞으로 8개체의 사도를 쓰러뜨려야만 한다'는 얘기를 한다. 이를 통해 신극장판에 등장하는 사도의 수는 총 13개체임을 알 수 있으며 이미 10개의 사도가 등장했고, 여기에 나기사 카오루를 사도로 포함시킨다면 등장하지 않은 사도는 2개. TV판에서 뽑아 쓸 카드 중 제16사도 알미사엘의 컨셉을 이미 끌어다 쓴 것을 고려할 때 [에반게리온: Q]에서는 완전히 다른 형태의 새로운 사도가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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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토벤 심포니 No.9와 함께 큰 임팩트를 남겼던 카오루와 신지의 대결장면은 아마도 [에반게리온: Q]에서는 보지 못할 것 같다. 원래대로라면 마지막 사도여야 할 카오루가 제10사도의 소멸 직후 등장한다는 점도 충격이지만 무엇보다 그가 완전히 새로운 기체인 에바 6호기를 타고 나타난다는 점도 다음편에서는 TV판의 골격을 완전히 벗어날 것임을 예고한다.  


한편 전작인 [에반게리온: 서]에서 왜 기존 TV판과는 달리 등장하는 사도의 순서가 하나씩 뒤로 밀렸는가에 대한 의문은 프리타이틀 시퀀스에서 제3사도가 등장하면서 해결되었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네르프의 남극기지 지하의 봉인지역 '림보'에서 각성해 에바 가설 5호기와 맞붙어 사멸한 것으로 추측된다. 따라서 프리타이틀 시퀀스는 일종의 프리퀄로 인식해도 좋을 듯.



    6.느부갓네살의 열쇠  


갈수록 태산이다. 카지 감찰관이 베타니아 베이스에서 가져와 이카리 겐도에게 내민 화석모양의 샘플은 원래대로라면 제1사도 아담의 태아형태여야 맞다. 그러나 [에반게리온: 파]에서는 이를 '느부갓네살의 열쇠'라 명명하며 '신과 인간을 이어줄 이정표', '인류보완의 문을 열 느부갓네살의 열쇠' 라는 모호한 말만 남긴채 자세한 언급을 회피한다. 인류보완계획, 그리고 서드 임팩트와 가장 밀접한 관련을 가진 물건임은 분명하나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다음 작품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제1사도와 같이 번호를 사용하지 않고 단지 '로스트 넘버'라고 부르는 것도 이 물건이 '아담'과는 다른 어떤 개체임이 틀림없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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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판에 등장했던 제1사도, 아담의 태아. 나중에 이카리 겐도는 이것을 자신의 손에 이식해 지니고 다닌다. 반면 [에반게리온: 파]에서는 태아형태의 아담 대신에 '느부갓네살의 열쇠'가 등장하는데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현재로서 알길이 전혀 없다.



    7.세컨드 임팩트  


미사토는 세컨드 임팩트 현장을 살아남은 유일한 생존자다. 이는 TV판과 신극장판에서 모두 동일한 설정이지만 아담을 수정란으로 환원시키는 과정에서 일어난 세컨드 임팩트와는 달리, 정지화상으로 보여지는 [에반게리온: 파]의 세컨드 임팩트는 네 개체의 사도에 의한 것으로 묘사된다. 즉, 기존 [에반게리온]의 세계관에서 알려져있던 그 세컨드 임팩트와는 무엇인가 다른 계기로 발생한 세컨드 임팩트라는 강한 암시가 주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로서 [에반게리온] 신극장판의 서드 임팩트 또한 다른 양상을 띄게 될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 아니, 어쩌면 서드 임팩트는 아예 없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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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 극장판에 등장했던 세컨드 임팩트의 한 장면. 아담의 강제적 환원과정에서 일어난 세컨드 임팩트에 대해서도 기존의 TV판은 명확한 해답을 내놓지 않았다. 다만 TV판과 구 극장판에서 주어진 정보의 조각과 코믹스에 덧붙여진 설정을 조합해 보면 세컨드 임팩트는 인류의 인위적인 조작에서 일어난 것만큼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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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반게리온: 파]에 등장하는 세컨드 임팩트의 한 장면. 기존 세계관에서 아담의 환원과정이라는 설정과는 달리 정체를 알 수없는 사도들의 모습이 등장하고, 이어서 4개의 '롱기누스의 창'도 등장한다. 이는 기존 세계관의 세컨드 임팩트와는 다른 그 무엇이 세컨드 임팩트를 일으켰거나 아니면 TV판에서 암시한 세컨드 임팩트의 원인이 모두 날조된 것임을 의미할 수 있다.  



    8.나기사 카오루  


대체로 TV판과 유사한 평행선을 그렸던 [에반게리온: 서]에서 나름대로의 파격적인 점이라면 바로 아스카보다도 먼저 나기사 카오루가 등장한다는 점이었다. 영화의 라스트씬을 장식하는 그는 월면위의 긴 잠에서 깨어나며, '또 세 번째라니. 변하질 않는구나, 너는.' 이라는 알 듯 모를한 말을 남긴채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이 말이 [에반게리온: 서]에 등장하지 않은 제3사도를 가리키는 게 아니라는 것이 분명해진 이상, 이제는 루프설에 보다 중심을 실어주는 의도라고 보여지는데, 구체적으로 신극장판에서 퍼스트,세컨드,서드 칠드런이 아닌, 'X번째 아이'로 호칭을 변경한 것으로 미루어 볼때 여기서의 '세 번째'라는 건 이카리 신지가 이번에도 '세 번째 아이'로 발탁되었다는 것, 즉 동일 세계의 반복이라는 점을 추측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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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세 번째라니. 변하질 않는구나, 너는...' [에반게리온: 서]에서 메가톤급 떡밥을 던졌던 카오루의 발언. 과연 이 대사는 화면에 보이는 거인(실은 달에서 건조중인 에바 6호기였음이 이번 [에반게리온: 파]에서 밝혀진다)에게 하는 것일까, 아니면 이카리 신지를 향한 말일까. 세 번째라는 건 도대체 무엇의 세 번째라는 것일까. 알쏭달쏭하기만 하다.


이번에도 극의 마무리를 장식하는 건 여전히 카오루이지만 극의 중간에 한번 더 등장한다는 점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월면에서 건조중인 에바 6호기의 손에 산소마스크도 없이 걸터앉아 있는 카오루와 그를 놀라운 눈으로 쳐다보는 겐도, 후유츠키와의 짧은 조우장면은 상당히 눈여겨 볼만한 부분이다. 여기서 카오루는 겐도(혹은 후유츠키)를 '아버지'라 부르기 때문이다. (이 장면은 TV판에서 겐도와 후유츠키가 남극탐사를 다녀오는 부분과 시간적인 장면이 일치한다. 즉, 남극→ 달로 공간적 배경이 이동되어 있다. 물론 TV판에서 카오루와의 조우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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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으로 등장하는 에반게리온 6호기. 조종사는 무려 나기사 카오루이며, [에반게리온: 파]의 마지막 쿠키씬에서 서드 임팩트 직전의 에바 초호기를 봉인하는 역할을 한다. TV판에서는 언급되지 않았던 사해문서 외전과 관련이 있는 기체로서 건조방식도 기존의 에바와는 다르다는 대사가 언급된다. [에반게리온 Q]에서는 에바 6호기가 센트럴 도그마로 침입할 것이 확실시 되나, 서드 임팩트를 봉인했다는 점에 있어서 에바 6호기의 역할이 과연 무엇일지는 현재로선 알 수 없다.
 

그리고 에바 초호기의 각성과 동시에 서드 임팩트의 발생 직전, 엔드 크래딧이 끝나고 갑작스레 등장하는 쿠키씬에서 카오루는 에바 6호기를 타고 내려와 롱기누스의 창과 똑같이 생긴 창으로 초호기를 봉인한다. "이번에는 반드시 널 행복하게 해주겠어" 라면서.. 이 마지막 대사에서 '이번에는'이란 표현에 주목하길 바란다. 이것이아말로 [에반게리온] 신 극장판이 동일세계의 반복인 '루프'임을 암시하는 강력한 증거다.



    9.신지의 SDAT 카세트  


잠자기 전이나 등하교길에 늘 신지가 몸에 지니고 다니는 신지의 SDAT 카세트의 정체. 사실 TV판에서는 단지 신지의 애용품 정도로 인식되었을 뿐 정확히 이게 어떤 물건인지에 대한 언급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허나 [에반게리온: 파]에서는 신지의 SDAT가 어떤 물건인지를 구체적으로 언급한다. 아버지가 집을 나갈때 놔두고 간 물건. SDAT는 말하자면 신지와 아버지를 연결하는 유일한 매개체다.

하지만 TV판 에바 3호기와의 격전 이후 겐도와의 사이가 급속도로 나빠진 신지는 SDAT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네르프를 떠난다. 이 SDAT의 의미를 잘 알고 있고, 신지가 버린 SDAT를 주워 잘 간직하며  다시 신지의 손에 쥐어주고자 하는 건 제10사도에 흡수된 레이 그 자신이다. 즉, 신지의 SDAT는 아버지와의 인연을 이어주는 매개물로서의 역할을 함과 동시에 신지와 레이를 연결하는 고리로서의 역할도 수행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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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지 더 유념해 보아야 할 씨퀀스가 있다. 바로 SDAT에서 재생되는 트랙의 번호다. 구 TV판을 비롯, [에반게리온: 서]에 이르기까지 SDAT에서 재생되는 트랙은 오직 25번과 26번 트랙뿐이다. 이는 기존의 [에반게리온]이 25,26화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음을 은연중에 암시한다. 생뚱맞은 마무리로 빈축을 샀던 TV판의 25,26화나 이를 보강하기 위해 진짜 결말임을 내세우며 개봉했던 구 극장판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의 'Air'편과 '진심을, 너에게'편, 그리고 아직까지 기존 [에반게리온]의 세계관에 상당부분 묶여 있었던 [에반게리온: 서]까지 어쩌면 25,26화의 한계내에서 머무르고 있었음을 간접적으로 암시하려 했던게 아닐까.

그러나 [에반게리온: 파]에서 비로서 27번째 트랙으로 넘어간다는 사실은 무척 의미심장한 변화다. 그리고 그 27번 트랙이 처음 등장하는 장면은 다름아닌 마리와 신지가 조우한 직후다. 이것은 본격적인 변화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신호이며 실제로 마리와의 만남 직후, 탈의실에서 SDAT의 27번 트랙이 재생되는 순간 신지는 SDAT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알게되고 그 트랙의 음악을 제대로 감상하지 못한다. 이것은 앞으로 이야기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지 그것은 주인공인 신지조차 예측하지 못할 정도로 불확실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바야흐로 파(破)의 시작인 것이다.



    10.그 밖의 담론들  


에바 파일럿을 선발하는 네르프의 유령부서 '마르두크(멜덕) 기관'이 이번에는 '마르두크 계획'으로 바뀐다. 제3사도가 아케론에 이르기 직전 에바 가설 5호기의 자폭으로 소멸되는 바람에 '마르투크 계획'이 좌절되었다고 하는데, 정확이 이것이 어떤 계획인지는 알 수 없다. 추측컨데 '인류보완계획'과 모종의 관계가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과는 전혀 다른 떡밥으로서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짧은 등장이지만 강렬한 인상을 심었던 카지 료지의 경우는 리리스의 존재가 [에반게리온: 서]에서 미리 밝혀지는 바람에 비중이 확 줄어 버렸다. 그는 죽음을 당하지 않으며, 미사토와의 로맨틱한 관계도 제대로 살리지 못한다. TV판에서 수박을 재배하며 신지와 나누던 대화장면은 동일하게 사용되었지만 의미에 있어서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오히려 이 장면에서 카지는 미사토에 대한 신지의 미묘한 사랑의 감정을 확인하게 된다. 과연 살아남은 카지의 역할이 추후 어떻게 바뀔 것인가는 그저 기다려 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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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반게리온 Q]에서 에반게리온 8호기와 새로운 파일럿이 등장한다는 사실도 예고편에서 확인되었다. 그러나 마리의 등장을 미리 보여준 전편의 예고와는 달리 이번에는 새로운 파일럿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게다가 에반게리온 7호기의 존재가 나타나지 않은 상태에서 8호기를 먼저 언급한다는 점도 의문. 2호기의 완파로 인해 마리가 어떤 에반게리온에 오를것인지도 관심의 대상이다.


이상으로 [에반게리온: 파]에서 몇몇 눈에 띄는 변화와 담론들에 대해 언급해 봤다. 분명한 것은 TV판 없이도 감상에 큰 지장이 없었던 [에반게리온: 서]와는 달리 이번 작품은 불행(?)하게도 기존 팬들에게 더 적합한 작품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결국에는 변화된 부분에 초점을 맞춰 비교, 분석하고 떡밥에 대해 즐거운 분노를 터트리는 것이 [에반게리온]의 본질적인 재미가 아닐까.

아무튼 [에반게리온: 급]에서 [에반게리온: Q]로 제목을 바꾼 차기작을 보기까지 또 얼마만큼의 시간을 감내해야 할 것인지. 고문도 이런 끔찍스런 고문이 없다.

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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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지적하지 않는 분이 많으신데, [에반게리온: 파]의 예고편에 보면 원래는 미사토가 리츠코의 싸대기를 사정없이 후려치는 장면이 등장한다. 허나 막상 본편에서는 이 장면이 빠져 있다. 아마도 [에반게리온: 파]의 초기 제작당시 콘티를 완전히 뒤엎고, 새로 판을 짰다는 후문이 들리는데 그 과정에서 누락된 듯. 하긴 [에반게리온: 서]의 TV방영판에 나온 예고편은 극장판과는 다른 새로운 장면들이 삽입되어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기회가 있으면 포스팅하게 될 듯.

본 리뷰는 2010.1.11. 프레스블로그의 MP(밀리언포스팅)에 선정되었습니다.



* [에반게리온: 파]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Khara/ GAINAX. 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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