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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쎄시 걸 - 헐리우드로 간 엽기적인 그녀, 그 결과는?

페니웨이™ 2008. 10. 30.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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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PC통신소설의 성공신화  


1999년 중반, 이제 막 인터넷이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일 무렵 PC통신 나우누리의 유머 게시판에 '지하철의 엽기적인 그녀'라는 3부작의 게시물이 연재되었다. 지하철에서 한 아저씨의 머리 위에 과감하게 오바이트를 한 아가씨와 얼떨결에 그 광경을 목격한 처량한 청년의 만남을 다룬 이 이야기는 당시의 트랜드인 '엽기 코드'의 열풍을 타고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 '엽기적인 그녀'라는 타이틀을 달고 본격적인 연재에 들어갔다.

ⓒ 신씨네. All Rights Reserved.


독특한 형식과 친근한 통신체로 실시간 연애담을 들려주었던 '엽기적인 그녀'는 '견우74'라는 아이디의 주인을 일약 스타덤에 올려놓으며 'PC통신소설'의 성공신화를 기록했다. 이 작품은 책으로 출판되었고 곧이어 영화화가 진행되어 차태현과 전지현이라는 걸출한 청춘 스타를 배출한 히트작이 되었다. 단지 3부작 게시물로 끝내려 했던 생활속 유머 한편이 이 만큼의 파급효과를 낳을 줄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2.헐리우드 리메이크의 가능성  


'엽기적인 그녀'의 성공담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세계 영화의 메카, 헐리우드에서도 이 한편의 한국식 로맨틱 코미디에 큰 관심을 보였고, 2002년에 드디어 [엽기적인 그녀]의 판권이 당시로선 최고기록을 경신하며 드림웍스에 팔리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게 되었다. 그러나 판권만 팔렸다고 해서 제작까지 이어지기란 쉽지 않은 법. 2002년에 판권이 팔린 [엽기적인 그녀]의 소식은 소문만 무성한 채 가시적인 움직임을 보여주지 않았다.

일부 헐리우드 관계자들은 [엽기적인 그녀]는 판권을 팔게 아니라 개봉을 했어야 한다고 했을 정도로 원작이 가진 매력이 이대로 그냥 묻히게 되는 것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실제로 비공식 루트를 통해 [엽기적인 그녀]를 감상한 일부 영화 매니아들은 이 독특한 로맨틱 코미디에 극찬을 보냈고 이는 한국식 코미디가 북미시장에서도 통한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판권이 팔린지 2년이 지난 2004년 3월, '헐리우드 리포터'를 통해 [슈팅 라이크 베컴]의 거린다 차다가 리메이크작의 감독으로 발탁되었다는 뉴스가 전해졌으나 그외에 이렇다 할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프로젝트는 계속 정체된 상태에 있었고 다시 2년이 지난 2006년에는 거린다 차다 에서 '러브 미 이프 유 데어'의 얀 사뮤엘로 감독이 교체되기까지 했다.


 

    3.적절한 캐스팅  


얀 사뮤엘이 공식적인 감독으로서 메가폰을 잡게 되자. 제작은 급물살을 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가장 관심의 대상이었던 '그녀'의 캐스팅이 발표되었다. 바로 [24]와 [내겐 너무 아찔한 그녀]의 엘리샤 커스버트. 전지현을 대체할 만한 헐리우드 배우가 딱히 누구라고 집어내지 못했던 까다로운 국내 팬들도 이 캐스팅 만큼은 완벽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곧이어 남자 주인공 역으로는 [브링 잇 온]의 제시 브래포드가 캐스팅되었는데, 이 역시 나름 괜찮은 선택처럼 보였다.

ⓒ Variety Film. All Rights Reserved.


그러나 2008년 초반으로 예정되었던 [마이 쎄시 걸]의 개봉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오랜 시간을 기다려 온 만큼 헐리우드 시장에서 나름 선전해주기를 기대했던 국내 팬들은 이 작품이 완성은 된 것인지조차 확인할 길이 없었다. 급기야 [마이 쎄시 걸]은 DVD 시장으로 직행하는 불운을 겪는다. 그렇게나 뜸을 들였던 작품이 고작 안방극장용 영화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왜 이렇게 어이없는 결과가 나타난 것일까? 추측하건데 앞서 개봉한 [콰어어트 맨]과 [4.4.4]등을 통해 하이틴 스타의 이미지를 벗어 버린 엘리샤 커스버트의 (성인급 연기자도, 청춘스타도 아닌) 애매한 위치는 [마이 쎄시 걸]의 개봉시기를 저울질 하는데 어려움을 더했을 것이며, 한 번 타이밍을 놓친 영화는 어쩔 수 없이 비디오 시장으로 제작비 회수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나마 커스버트에게 남아있는 하이틴 스타의 이미지가 고갈되기 전에 말이다.


 

    4.생략으로 변질된 원작의 묘미  


그럼 이제 [마이 쎄시 걸]을 한번 들여다 보도록 하자. 전체적인 플롯은 변화된 것이 별로 없다. 우연히 만난 괴팍한 여성과 즐겁고도 특이한 데이트를 즐기다가 갑자기 이별을 통보하는 그녀를 만나기 위해 일년을 기다린다는 한 청년의 순애보 같은 이야기가 핵심 줄거리다. 문제는 헐리우드 영화의 특성상 설정의 변경과 일부 씬의 삭제는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것이지만 [마이 쎄시 걸]의 경우는 원작이 가지고 있는 주요 장면들을 너무 밋밋하게 변화시켰다는 점이다. 이는 그녀의 시나리오 속에 등장하는 '소나기'의 엽기 버전이 '타이타닉'으로 변화했다는 식의 문제가 아니다.

ⓒ CJ 엔터테인먼트(주) All Rights Reserved.


그 대표적인 예가 두 사람이 만나는 계기가 된 '지하철 오바이트씬'이다. 이는 (좀 지저분하긴 해도) '엽기적인 그녀'의 엽기성을 가장 함축적으로 드러낸 장면인데, 전지현 같은 청초한 미인이 남의 머리에 구토를 하는 행동이야 말로 상식의 파괴와 엽기적인 그녀를 동질화시키는 중요한 설정이었던 것이다. 특히나 이 장면이 원작 소설의 연재를 결정지었던 중요한 도입부 임에도 [마이 쎄시 걸]은 그녀가 단지 술취해 쓰러지는 장면으로 축약시켜 버렸다.

ⓒ CJ 엔터테인먼트(주) All Rights Reserved.


그뿐만이 아니다. 수심이 얼마나 깊은지 알아보기 위해 한겨울에 남친을 주저없이 물속으로 밀어 버리는 그녀의 엽기적인 모습은 어디가고, [마이 쎄시 걸]에서는 남자 '스스로' 물속으로 뛰어든다. 사소한 것 같지만 이 차이가 의미하는 바는 매우 크다. 그녀의 캐릭터가 단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아쉬움은 120분짜리 원작을(감독판은 무려 150분이다) 90분으로 각색한 것에서도 분명히 나타나 있다.


 

    5.평면적 캐릭터의 한계  


사실상 배우들의 이미지만을 겹쳐놓고 본다면, 캐스팅은 적절하다고 볼 수 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엘리샤 커스버트 만큼 전지현을 대체할 만한 조건을 가진 배우(몸매되고, 얼굴되고, 연기되고)는 헐리우드에는 없다. 제시 브래포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물론 남자배우의 경우는 선택의 폭이 다소 넓은 편이라고 생각되지만 그럼에도 제시 브래포드의 순한 이미지는 차태현과의 싱크로가 비교적 높은 축에 속한다.

ⓒ CJ 엔터테인먼트(주) All Rights Reserved.


하지만 아쉽게도 각색과정에서 캐릭터가 지나치게 순화되어 버린 나머지, 배우들의 개성이 제대로 살아나지 못했다. [엽기적인 그녀]에서의 그녀를 떠올려 보라. 남친의 아구창을 사정없이 날리고, 많은 인파속에서도 따귀를 후려갈겨도 긴 생머리와 미소 하나만으로 수많은 남정네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그녀를. 헐리우드에서 탐냈던 건 전지현이 아니라 바로 그러한 영화속 캐릭터가 아니었던가.

ⓒ 신씨네. All Rights Reserved.

오리지널 [엽기적인 그녀]의 전지현. 이런 그녀라면 뭔짓을 하더라도 사랑스럽지 아니한가.


그러나 [마이 쎄시 걸]은 전형적인 헐리우드 로맨틱 코미디의 틀안에 [엽기적인 그녀]를 가두어 버렸다. 기존 로맨틱 코미디의 여주인공보다 조금 더 튀고, 조금 더 사고뭉치일 뿐인 그녀는 전혀 엽기적이지도, 그렇다고 파격적이지도 않다. 마찬가지로 견우(미국판은 찰리) 역시 그 엉뚱하고 개구쟁이 같은 모습이 사라졌다. 그저 착한 모습만이 남아있는 남자는 오히려 사고뭉치 그녀의 뒷수습이나 하는 바보같은 인물처럼 보인다. 이렇게 캐릭터의 단순한 모방 내지는 다운그레이드에 그친 리메이크판의 인물들은 원작인 [엽기적인 그녀]가 얼마나 경이적인 두 주인공의 화학작용으로 만들어진 결과물인지를 새삼 느끼게 만들 뿐이다.


 

    6.총평  


[마이 쎄시 걸]은 갖출건 다 갖추고도 제 맛을 내는데는 실패한 작품이다. 마치 썬글라스를 꼈는데 렌즈에 색상이 없는 격이랄까. 영화의 전반적 색체와 원작의 설정들을 카피하기 위한 노력이 군데군데 엿보이긴 하지만 그것을 온전히 재현하지는 못했다. 이것은 단지 '정서적 차이'라기 보다는 제작진이 보여준 원작의 이해도가 떨어진다는 증거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이럴바에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판권을 사서 리메이크 할 것이 아니라 원작 개봉을 추진하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 Tokyo Broadcasting System, Inc. All Rights Reserved.

일본판 리메이크 [엽기적인 그녀(獵奇的な彼女)]


ⓒ Pritish Nandy Communications (PNC) All Rights Reserved.

인도판 짝퉁 리메이크 [어글리 아우르 파글리]


이와는 별개로 [엽기적인 그녀]가 가진 원작의 매력은 전 세계가 인정할 만한 것인것 같다. 가깝게는 일본에서 TV 드라마판 [엽기적인 그녀]를 얼마전에 방영했으며, 인도의 발리우드에서도 무판권 버전의 [어글리 아우르 파글리]까지 만들어졌으니 말이다. 뭐 어느쪽이 되었던지 원작에서의 차태현-전지현 커플이 보여준 환상의 복식조를 뛰어넘는 일은 앞으로도 없을 듯 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두 사람은 아직까지 [엽기적인 그녀]의 캐릭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본 포스트는 2008년 10월 30일자 미디어몹의 메인 기사로 선정되었습니다.



* [마이 쎄시 걸]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CJ 엔터테인먼트(주) 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 참고 스틸: 엽기적인 그녀(ⓒ 신씨네. All Rights Reserved.), 일본판 獵奇的な彼女 (ⓒ Tokyo Broadcasting System, Inc. All Rights Reserved.), 어글리 아우르 파글리(ⓒ Pritish Nandy Communications (PNC) All Rights Reserved.), 엘리샤 커스버트 캐스팅 기사(ⓒ Variety Film.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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