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ㅅ,ㅇ

월-E - 2008 최고의 멜로 드라마

페니웨이™ 2008. 8. 30.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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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하는 생쥐의 경이로움이 채 가시기도 전에 어느덧 1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애니메이션의 명가 픽사 스튜디오는 여전히 흥행불패의 자존심을 이어나갔지만, [라따뚜이]의 완성도가 거의 완벽에 가까운터라 사실상 이 이상의 작품이 나올 수 있을까 하는 행복한 불안감을 주는 것도 픽사 스튜디오니까 가능한 일이다.

반면 경쟁사인 드림웍스의 도전도 만만치 않다. 올해 중순에 개봉된 라이벌 드림웍스의 [쿵푸 팬더]는 픽사의 독주를 견재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만족감을 선사했고, 이 정도라면 올해 최고의 애니메이션은 더 볼것도 없이 [쿵푸 팬더]가 되지 않겠나 싶었던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같은 견해는 필자의 짧은 식견을 나타내주었을뿐, 픽사 애니메이션의 수준은 이미 범인이 생각하는 수준을 가뿐히 뛰어넘는 것이었던 것이다.


*.결정적이지는 않지만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1.[나는 전설이다]의 픽사 버전?

[월-E]는 인간이 살고 있지 않은 미래 어느 시점의 지구를 보여준다. 우뚝 솟은 빌딩, 그러나 황폐한 도시. 아무도 살지 않는 폐허 속 한복판을 누군가가 부지런이 헤짚고 돌아다닌다. 이것이 우리의 주인공 '월-E'. 지구의 쓰레기 전담을 위해 대량 생산된 로봇으로 그 이유는 모르지만 홀로 살아남아 700년 동안이나 자신의 임무을 묵묵히 수행중이다.

ⓒ Walt Disney/Pixar Animation Studios. All rights reserved.


마치 [나는 전설이다]의 주인공 네빌처럼(심지어 애완충(?)인 바퀴벌레도 데리고 다닌다)홀로 남은 세상에 적응해 외로이 살아가는 월-E는 뛰어난 학습능력을 통해 인간에 근접한 인격체로 진화한다. 월-E에게 유일한 낙이라곤 인간들이 쓰다 버린 잡동사니를 수집하거나, 자신의 처소로 돌아가 뮤지컬 [헬로 돌리]를 감상하는 일 뿐이다. 영화속 남녀를 보며 누군가와 손을 맞잡는 것을 꿈꾸는 월-E에게 어느날 기적같은 일이 일어난다. 우주선을 타고 '이브'라는 로봇이 지구에 도착한 것이다!


2.우주에 남겨진 가장 인간적인 존재

[월-E]의 감독 앤드류 스탠튼은 '우주에 남겨진 가장 인간적인 존재가 기계'라는 아이러니함에 매력을 느껴 이 작품을 맡게 되었다. 실제 월-E가 이브에게 갖게되는 순진무구한 사랑의 감정은 어쩌면 상대방에게서 이득을 탐하고, 배우자의 학벌이나 재산규모를 먼저 따지는 오늘날 인간사회의 뒤틀어진 사랑보다는 훨씬 더 인간적으로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반지는 던져 버리고, 반지 상자만 간직하는 월-E의 모습을 떠올려 보라)

생명체를 발견해 대기모드로 돌입한 이브를 비가오나 눈이오나 늘 옆에서 필사적으로 감싸고 보호하는 월-E의 무조건적인 헌신을 보면서 가슴이 훈훈해지는 감동을 느끼지 않는 관객이 어딨을까. 반대로 [월-E]에 등장하는 인간들의 모습이 훨씬 더 수동적이고 기계적인 존재라는 사실은 다소 충격적이다. 그저 로봇들이 먹여주고 입혀주고 모든 시중을 다 들어주니 의자에 누운채 살아만 있으면 되는, 그야말로 사육되는 동물과도 다를바가 없는 삶을 사는 것이 과연 인간답다고 말할 수 있을까.

ⓒ Walt Disney/Pixar Animation Studios. All rights reserved.


월-E와 인간의 대조적인 모습을 통해 픽사 스튜디오는 다시한번 전통적인 가치관의 회복이라는 메시지를 드러낸다. 흥미로운 점은 만약 다른 작품들에서 이런 진부한 소재로 교훈을 주려고 했다면 대다수의 관객은 식상하다며 하품을 했을테지만 픽사의 작품들은 대단한 설득력을 준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불패신화를 이어가는 '천재집단' 픽사의 경이적인 노하우인 것이다.


3.무성영화로의 회귀

[월-E]는 무려 초반 30분간을 아무런 대사없이 캐릭터의 판토마임만으로 이끌어가는 독특한 전개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는 과거 무성영화의 낭만적 시선을 현대적으로 표현한 것으로서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이라고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 더군다나 영화 전체를 통해서도 대사가 별로 없다. 월-E와 이브가 서로 마주보며 'I Love You' 따위의 촌발날리는 대사를 날리지도 않는다. 그저 '워~~~리'와 '이~~~바'를 반복하는 두 로봇의 애뜻한 모습만으로도 무성영화의 로맨틱한 판타지를 충분히 맛볼 수 있다는 건 실로 대단한 경험이다.

ⓒ Walt Disney/Pixar Animation Studios. All rights reserved.


4.고전 SF영화의 오마주

[월-E]의 시대적 배경의 특성상 이 작품은 SF적 색체가 강하게 드러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작품의 전반에 고전SF의 흔적을 여기저기서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에이리언2] (쓰레기 더미와 함께 우주공간으로 폐기되는 폐기장 씨퀀스)라든가, [스타워즈] (이브와 월-E, 또는 다른 로봇들과의 컴비네이션은 다분히 C3PO와 R2D2의 관계를 연상시킨다),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 (음악의 사용과 컴퓨터의 반란이라는 설정) 등 걸작 SF의 설정을 군데군데 배치한것도 [월-E]를 감상하는 또다른 재미다.


5.끝이 보이지 않는 기술력

픽사의 장점은 스토리도 뛰어나지만, CG 기술의 끝이 보이지 않는 비주얼의 완성도를 자랑한다는 것이다. 아날로그의 느낌을 잔뜩 간직한 월-E의 기상천외한 디자인이나, 잘빠진 매킨토시 컴퓨터를 연상케하는 이브의 대비도 탁월하며, 혐오동물인 바퀴벌레마저 귀엽게 탈바꿈시키는 픽사의 기술력은 정말 혀를 내두를 정도다. 세세한 디테일이 살아있는 배경과 특히나 황폐된 미래도시에서 쓰레기 더미로 고층빌딩을 쌓아올리는 광경도 압권이다.


6.기억할 만한 명장면

고장난 월-E를 붙들고 광속의 스피드로 부품을 갈아 낀 이브가 월-E의 이마를 맞대고 슬퍼하는 씨퀀스. 표정없는 로봇이 희노애락을 발산하도록 만드는 최고의 장면이자 안구에 쓰나미가 밀려올 정도로 가슴뭉클한 감동적인 장면이다. 이 순간만큼은 관객들 모두의 눈시울이 뜨거워 졌을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7.2008 최고의 멜로물

분명 [월-E]는 올해 최고의 애니메이션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다만 이것은 [월-E]가 성인층을 겨냥한 작품이라는 전제를 놓고 볼 때 가능할 것이다. (물론 성인용이라고 해서 이브와 월-E가 껍데기를 벗고 뒹군다거나 하는건 아니다 ㅡㅡ;;) 객관적으로 말해 아이들이라면 [월-E]의 수준높은 주제의식과 각종 오마쥬를 이해하기 보다는 [쿵푸 팬더]의 신나는 활극쪽에 더 높은 점수를 주게 될 테니 말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월-E]가 2008년에 개봉한 어떤 작품들 보다도 훌륭하며 가슴찡한 러브 스토리라는 점이다. 가을의 문턱에 접어든 요즘 [월-E]를 보고나니, 나도 누군가의 손을 잡아보고 싶다.





* [월-E]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Walt Disney/Pixar Animation Studios. 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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