벡실 - 실사 영화에 도전하는 일본 CG애니메이션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야심작 [베오울프]의 개봉이 눈앞에 다가온 지금, CG애니메이션의 발전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미 픽사 스튜디오의 사례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이제 CG애니메이션은 선택이 아닌 필수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일본과 미국은 발전가능성이 무한한 이 시장에서 서로 앞다투어 경쟁을 하고 있는데, [파이널 판타지]를 발표하면서 경이적인 기술력을 자랑한 일본이지만 시장성에 있어서는 아직 미국내의 애니메이션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애플시드(2004)]는 이런 일본의 CG애니메이션을 한 단계 도약시킨 작품이다. 동명의 작품을 리메이크한 [애플시드]는 미국 애니메이션이 보여주지 못한 기술로 승부를 걸었다. 툰셰이딩(Toonshading)기법이 그것인데, 배우의 움직임을 모션캡쳐로 저장해, 이를 셀로 변환시키는 작업이었다.(쉽게말해 3D의 인물에 2D를 입힌것이다) 덕분에 3D로 렌더링된 배경속에서 2D의 인물들이 입체적으로 표현된 화면속의 경이는 대단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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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3년뒤 [애플시드]의 제작진은 두 편의 작품으로 돌아왔는데, 그중 하나는 [애플시드]의 후속작, [애플시드: 엑스머시나]이고, 다른 하나는 [벡실]이다. 두 편 다 부산 국제영화제에서 화제가 되었고, 특히 [벡실]의 경우 전회매진을 기록할 정도로 폭발적인 관심을 모았던 작품이다.
그중에서도 [벡실]이 특히 관심을 끄는 건 이러한 CG기술적인 부면뿐만이 아니라 작품의 충격적인 설정때문이다. UN의 안드로이드 생산 규약에 반감을 품은 일본이 쇄국정책을 시작, 10년간이나 세계에서 고립된 2077년이 배경이다. 아무도 일본으로 들어갈 수 없고, 나올 수도 없다. 위성과 모든 통신수단이 차단되어 그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이런 일이 과연 가능할까? 요즘처럼 하루가 멀다하고 발전하는 과학기술을 보면 이런 상상이 현실이 될까봐 오싹하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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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설정은 겉으로는 전혀 속내를 알 수 없는 일본인의 자화상을 상징화한 것으로 풀이된다. 세계 최고의 선진국 반열에 들어선 일본이지만 과거사 문제등으로 국제적인 마찰 속에 스스로를 고립화해가는 일본의 실제 모습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일본에 잠입하는 임무를 맡게된 벡실이라는 여성은 다름아닌 미국인이다. 핵폭탄 투하로 일본을 초토화시켜 항복까지 받아낸 미국을 주인공으로 삼다니.. 가뜩이나 군국주의적인 색채가 풍기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홍수속에서 이러한 설정은 다소 진보적인 것으로 봐줘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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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충격적인 것은 스포일러상 말 못하는 결말이지만, 그렇다고해서 [벡실]이 엄청난 반전을 가지고 있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비록 주인공 벡실이 10년간 극비에 붙혀진 일본의 실상을 알게되는 부분에서는 약간의 짜릿함마저 느껴지긴 한다만 후반부에 들면서 액션과 주제의식 사이에 중심을 잡지 못하고 방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일본 애니메이션 특유의 철학적 요소는 없으나, 말하고자 하는 논점이 지나치게 피상적이다.
이러한 단점을 극복할 수 있을 만큼 [벡실]의 오락적 요소는 충분한가라고 반문한다면 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에서 충분히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초반의 오프닝에서 펼쳐지는 침투작전 장면은 실사영화를 방불케 하는 박력과 스케일을 선사해 주며, 작품 중반부에 등장하는 기계괴물 '잭'의 등장부터는 시청각적 쾌감을 충실히 전달한다. 물론 이는 전적으로 [벡실]을 '극장'에서 보았을 때의 경우다. 확실히 [벡실]은 극장용 애니메이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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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국내의 여건상 CGV에서만 제한상영을 하는 [벡실]은 과연 얼마만큼의 관객을 모을 수 있을까. 더군다나 홍보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필자는 일주일전만해도 개봉사실을 몰랐다 ㅡㅡ;;)에서, 그닥 끌리지도 않는 제목에다 ('최후의 여전사' 벡실이 뭐냐!) 보기에도 허접스런 홍보용 팜플렛을 가지고 관객몰이를 기대한다면 안봐도 DVD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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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스틸: 애플시드(ⓒ Shochiku Company, Ltd.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