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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보트 태권브이 마나문고 리프린팅에 대한 고찰 (2부: 차성진 편)

페니웨이™ 2020. 5. 1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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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2부를 쓰기 까지 시간이 걸렸던 점을 양해 부탁드린다. 원래는 2부작으로 심플하게 마무리할 예정이었으나 갈수록 점입가경(漸入佳境)에 접어드는 사태에 풍미가 더해져서 글이 길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미리 밝혀 두고 싶은 것은 본 포스팅은 비난이나 비방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소비자의 한 사람으로서 내가 펀딩해서 받은 상품에 대한 리뷰로 개인의 소견을 밝히는 것 외에 어떠한 다른 의도도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본 글을 다른 곳에 퍼가거나 마치 마나문고에 대한 항의성 포스팅으로 인식하지 않도록 부탁드리는 바이다.

그럼 스타트.

마나문고의 복간 기획 두 번째는 차성진 작가의 태권브이 시리즈 복간이었다. 이 부분은 개인적으로도 솔직히 좀 놀라웠는데, 그간 휴민트를 통해 입수된 정보에 의하면 아직 차성진 시리즈를 낼 만큼의 소스가 확보되지 못했다는 얘길 들어서 시기적으로 예상보다 훨씬 빨리 복간 발표가 나왔기 때문이다.  

단지 울궈먹기식 GnS판본의 재탕에 불과했던 김형배판 태권브이 삼부작과는 달리 차성진판 태권브이는 현대식 개념의 복간이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고, 편수가 한 두 권이 아니라 시리즈 5권 전체를 복간하는 것이어서 사실상 이 세계의 마니아들이라면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대형 프로젝트'였다. 당연히 이번 펀딩도 목표치의 4500%를 초과 달성했다. 1억에 육박했던 김형배 판에 비해 패키지의 단가를 낮춘 탓인지 4500만원 정도가 모였지만 그래도 만화책 5권에 이 정도 규모면 가히 대성공이다. (최근 복간만화의 총 판매량을 생각해보면 태권브이 니까 이 정도의 저력을 보여준 것일 게다) 기획사인 마나문고로서는 2연속 홈런을 친 셈.

 

 



그리고 기대했던 패키지가 도착을 했다. 그런데…

이제 부터는 각 작품으로 세분화 해 이번 마나문고판 태권브이 복간본을 살펴볼까 한다.

1.태권브이 대 로보트 캉가 편

아는 분은 아시다시피 [84 태권브이]의 원작으로 사용된 작품이다. 사실상 차성진판 태권브이 중에서는 완성도가 가장 높고 재미도 출중하다. 그런데.. 이번 복간본에서는 가장 저열한 퀄리티를 보여주는 작품이 되어 버렸다. 

통상 인쇄에 필요한 최소 화질은 300 dpi는 되어야 선의 뭉개짐이나 왜곡 없이 지면으로 표현이 가능하다. 인쇄업에 종사하고 책을 찍는 사람이라면 그걸 모를 리가 없다. 그런데 [로보트 캉가]편의 경우 마나문고가 사용한 원 소스의 해상도는 72dpi ~150 dpi급의 저화질일 것이라고 감히 추측한다. 그걸 바탕으로 만든 ‘복사본’을 마나문고에서 입수했고, 이를 다시 스캔받아 재인쇄를 했으니 그 결과물은 안 봐도 블루레이인 상황. 

자, 단적인 예시를 보여드리겠다. 이번 마나문고 복원판과 원본을 비교한 모습이다.

자세히 보면 캉가의 얼굴이 찌그러져 있는 것 같고 디테일은 다 뭉개져 있으며 음영 효과는 거의 전멸이다. 그림 자체가 뭔가 좀 이상하다. 차성진 화백이 저렇게 그림을 그렸을 리가 없지 않나?  대략 추측해보면 마나문고 판본에 사용된 소스는 원본 책을 전문 장비가 아닌 일반 스캐너로 스캔하는 과정에서 책장이 접히는 부분이 동그랗게 말리면서 화면 왜곡이 일어난 결과물일 것이고, 이것을 입수해 엉터리로 후보정하면서 저런 우스꽝스런 장면이 연출된 거다. 원본 사진을 보면 차이가 확연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정상적인 판매자라면, 책을 이렇게 만들어선 안 된다. 적어도 전문가를 고용해 후보정을 거치던가, 아니면 작가와의 협의 후 작가 본인이 수정을 가해 ‘제대로 된’ 그림을 복원해야 한다. 복간의 의미란 그런거니까. 그것도 아니라면 제대로 된 소스를 입수할 때까지 출판은 보류했어야지. 복원해서 출간하는 것이 복간이지 불완전한 스캔 소스를 받아다가 그대로 인쇄 하는 게 복간은 아니지 않나? 여튼 [캉가]편의 퀄리티는 이거 하나로도 설명 가능하다. 지적할 사항은 엄청 많지만 시간이 없어서 여기까지.

 

 



2.태권브이 마이크로 결사대 편

[로보트 태권브이] 관련 만화 중에서는 아마도 입수 난이도가 꽤 높은 편에 속한다. 우선 이번 [마이크로 결사대]에 사용된 소스가 무엇이었든 나는 제대로 된 정식 원고나 정상적으로 출판된 원본 소스를 받아 사용한 것이 아니라는 심증을 갖고 있다. 해상도 문제는 [캉가]편에 비하면 양호하지만 상당히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해상도 문제. 해상도는 언급했듯이 도저히 정식 출간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캉가]에 비하면 양호하나 역시나 차성진 작가 특유의 섬세한 필치는 다 뭉개고 지나간다. 미세한 부분의 선이 지워지면서 미묘한 캐릭터의 표정 변화까지 일어나는 부분도 발생한다. 물론 이는 오래된 책의 복간과정에서 심심찮게 이루어지는 것이니 마나문고판의 문제만이라고 주장하지는 않겠다. 즉, 이해 가능한 범주라는 의미.

그러나 다음 부터는 묵과하기 힘든 문제들의 연속이다. 우산 [마이크로 결사대] 편만 아니라 모든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인데, 도무지 이유를 모르겠지만 이번 복간본에서는 원고에서 풀 사이즈로 표현된 그림들을 그냥 임의대로 재단해 버린 장면들이 너무나도 많다. 가령 다음과 같은 장면말이다.

 

 

그 다음 문제는 69페이지부터 74페이지의 편집 순서가 뒤죽 박죽이다. 누가 봐도 내용 상 페이지 순서가 바뀌었다는 것을 알아챌 만한데도 마나문고측에서는 ‘자신들이 입수한 원본이 원래 그랬다’는 말로 변명했다. 누가 되었든 상식을 가지고 만화책을 한 번만 훑어 봤더라도 편집 상에서 내용의 연결이 뭔가 부자연스럽다는 걸 눈치했을 텐데 그걸 몰랐다고 자인하는 셈이니 이건 두말할 것 없이 QC과정에서의 치명적 문제다. 마나문고 스스로가 마니아적인 마인드 내지는 문화 복원의 사명감을 가지고 엄청난 일을 하는 것처럼 말한다면 그에 걸맞는 결과물을 내놔야 하는 것 아닌가?

게다가 더 큰 문제는 내용 자체가 아예 빠져 있다는 거다. 90p~101p (초판본 기준)에 해당하는 약 12페이지 가량의 내용이 완전히 삭제되어 있다. 여기에 대한 더블 체크는 고사하고 아무런 QC 과정 없이 책을 완성해 출판해 놓고도 해당 부분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에 대해 이런 답변을 내놨다.

 

 

위의 내용만으로 보면 복간을 추진한 사람들이 삭제 내용이 있는지 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물건을 만들었다는 뜻이 된다. 이게 도대체 무슨 경우 인지는 각자가 판단하시길... 적어도  내가 불완전한 물건을 만들어 판매해 놓고, 부족한 부분을 소비자한테 도와 달라고 요구하지는 못하겠다. 

또다른 문제점으로 마나문고의 복간본은 말풍선의 대사를 모두 지우고 새로운 폰트로 다시 대사를 채워 넣었는데, 뭐 그런 시도 자체까지 폄하할 생각은 없다만 다음과 같은 문제들이 있다. 

1.일부 대사의 누락
2.일부 대사의 임의 변경.

 

해당 말풍선에 들어갈 대사가 누락되어 있다. 원본엔 '앗!'이라는 감탄사가 들어가 있다.

만화도 일종의 작품이다. 작가가 의도한 대사 하나 하나도 신경써야 할 판에 그걸 수정하는 작업자가 임의대로 누락시키거나 변경해도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그건 오산이다.  혹 실수라 하더라도 그건 그거 나름대로 감수의 문제이니... 이에 대한 판단은 역시나 각자의 몫으로 남긴다.


3.로보트 태권브이 지하 결사대 편

[지하 결사대]편은 위의 두 작품보단 상황이 좀 더 낫다. 다행스럽게도 마나문고 측에서 입수한 판본이 ‘적어도’ 다이나믹 콩콩 문고판에 기초한 소스를 입수했을 것이라고 추정하기 때문이다. 만약 소년한국도서 판본을 입수했다면, 또 다시 누락된 내용 때문에 곤혹을 치뤘을 것이다. [지하 결사대]편에 내용 누락문제는 없다. 아마 마나문고측에서 자신있게 생각하는 작품 중 하나일 것이다.

뭐 그렇다 해도 문제가 아주 없었던 게 아니다. 

바로 책 자체가 파본이었던 것. 가령 필자가 받은 책을 보면 [지하결사대] 1,2권의 93페이지 부터는 각각 [캉가]편의 내용이 실려 있다. 이에 대한 마나문고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뭐… 할 말이 없다. 더 재미있는 건 이러한 교열 파본이 다른 책에서도 무더기로 발견되었다는 것. 일단 핑계가 참 재미있는데, '하필 자신들이 보유한 책에서는 불량이 발견되지 않았'단다. 두 번째 공지에서 "책 제본은 사람이 하는 일이라서"라는 부분으로 퉁치고 넘어간다. 미안하다는 말은 어디에도 없다. 

상식적인 선에서 봐도 교열 체크를 랜덤으로 했어야 하는데, 그 체크한 책들이 전부 정상이었다? 정말 기가 막히는 확률로 불량 책만을 피해서 QC를 진행했거나 아님 QC 표본 수 자체가 비약적으로 적었던가.. 아님 그냥 설렁설렁 했던가.. 뭐 가능성은 많다.  

결국 총 5권에 해당하는 책을 모두 리콜해 주는 과감한 AS를 실시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감동한 모양이다. 아니. 이 정도로 파본이 발생한 경우에는 AS를 안 해 줄래야 안 해 줄수가 없다고... 


4.황금날개와 로보트 태권브이의 대결

이 작품은 차성진판 태권브이 중에서도 가장 입수 난이도가 높은 책이다. 몇 년 전부터 소년한국도서판 복사본이 누군가의 손에 의해 만들어져 암암리에 돌아다니는 것 같긴 했다만 내용을 삭제해 재출간하기로 유명한 소년한국도서판의 악명을 생각하면 굳이 입수할 가치를 느끼지는 못한 바, 개인적으로도 책을 쓸 당시 본 책의 온전한 원고를 구하기 위해 참 고생도 많이 했던 기억이 난다.

뭘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간단하게 말하자면 다이나믹 프로에서 발간한 대판본이 가장 온전한 내용을 담고 있고, 재판된 다이나믹 콩콩의 문고판은 그보다 약간 내용이 삭제되어 있으며 (악당 로봇의 변신장면과 엔딩), 소년한국도서판은 다이나믹 콩콩 문고판 보다 더 삭제되어 있는 (가장 소장가치가 떨어지는) 판본이다.

거두절미하고 이번 마나문고판 [황금날개와 로보트 태권브이의 대결]은 유감스럽게도 (삭제량이 가장 많은) 소년한국도서판을 베이스로 했다. 이것만으로도 이번 복원판의 가치에 대해서는 충분한 설명이 가능할 듯. 그럼에도 이 기회에 본 작품을 접하게 된 것만으로 감동할 분들은 있을 듯 하다.


5.태권브이 황금마왕 편

[로보트 태권브이 대 황금마왕]은 차성진 작가 스스로도 자신의 작화력이 가장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만든 작품이라고 자찬하는 작품이다. 물론 캐릭터 도용에 대한 원죄적인 약점이 있는 작품이긴 하나, 이건 비단 이 작품에만 해당되는 건 아니니… 

한 가지 좀 웃겼던 게, 마나문고에서 차성진 편을 내놓는다고 선언했을 때 자신들이 심헐을 기울여 복원한 것 처럼 블러핑을 한 작품이 바로 황금마왕 편이었는데, 비교 예시에서 Before로 사용되었던 소스는 한 20년 전부터 음지를 통해 돌아다니던 스캔본이다. 

 

ㅎㅎㅎㅎㅎㅎ

 

이건 그냥 그 때 스캔했던 만화책 자체가 운 나쁘게도 인쇄 품질이 떨어졌던 것 뿐이지 원래는 멀쩡하다. 굳이 복원이니 뭐니 있지도 않은 호들갑을 떨지 않아도 ‘정상적인’ 만화책 한 권만 입수하면 해결되는 문제라는 얘기. 장담컨데 저 Before에서 After 상태로 복원하려면 재창작의 수준으로 가야 한다. 정말로 영혼을 불태워서 저렇게 복원했다 치자. 그런 열정과 능력이 있었다면 [로보트 태권브이와 캉가]는 왜 그 상태로 내버려 뒀는지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여튼 이번 차성진판 태권브이 복원작들 중에서 그나마 쓸만한 게 바로 이 [황금마왕] 편이라는 건 분명하다. 다이나믹 콩콩 문고판에는 두 페이지가 삭제되어 있는데, 이 부분을 고스란히 실어놓았고 인쇄 퀄리티도 다른 작품에 비하면 나쁘지 않다.

흥미로운 지점 하나. 이전의 [황금마왕] 판본을 보다 보면 악당 카프로의 손가락이 육손처럼 그려진 옥의 티가 있다. (사실 난 이게 옥의 티가 아니라 카프로가 손에 무언가를 들고 있었고 이 것이 심의를 통과하지 못해 급히 수정이 가해진 흔적일 것으로 추정한다)

그런데 이번 마나문고판에는 그 부분이 수정되어 있다. 마나문고측의 영혼을 다한 복원의 결과로 인해 그렇게 수정한 걸까? '우연의 일치'인지, 언젠가 다이나믹 프로의 대판본을 기초로 개인이 복사해 만든 책이 유통되는 것 같던데, 그 복사본을 만든 제작자가 자신이 그 '육손 오류'를 수정했다며 자랑스럽게 올린 글을 한 카페에서 본 적이 있다. 과연 이번에 발간한 마나문고판 [황금마왕]은 어떤 걸 갖고 만든 걸까? 진실은 당사자만이 알테니 여기까지...

자, 이렇게 대략적으로 5편의 작품들에 대한 특징들을 대충 살펴보았는데, 보다시피 내용 누락은 물론이고 인쇄 품질 자체의 문제점 등 콜렉션 용으로는 함량미달의 한정판으로 펀딩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물론 나 한 사람, 개인의 느낌이다. 어느덧 나도 까다로운 콜렉터가 되어 있는 것일지도 모르니까. 이 감정, 이 판단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문제는 이렇게 라도 구입할 수 있었다는 것에 안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건데… 그 자기만족마저도 무참하게 짓밟는 사건이 발생하였으니….

 

* 본 리뷰에 쓰여진 사진에 대한 저작권은 (주)로보트태권브이 및 마나문고에 있습니다.

 

P.S. 1: 다소 비판적인 어조에 혹자는 글쓴이가 가진 원본책의 가치가 떨어질까봐 복간본에 대해 지나치게 비판하는 거 아니냐?는 의심을 할 수도 있기에 미리 말해 두지만 절대 그런거 없다. [한국 슈퍼로봇 열전]을 통해서도 누누히 주장했듯이 나는 기본적으로 고전 콘텐츠의 복간이라는 사업에 '매우' 긍정적인 스탠스를 취했던 사람이다. 오히려 책을 준비하면서 자신의 자료를 꽁꽁 숨기고 절대 내놓으려 하지 않았던 몇몇 분들의 싸늘한 태도 때문에 환멸을 느낄 정도여서 그 부분은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P.S. 2: 한 절반쯤 썼던 3부를 그냥 날려 버리기로 했다. 뭔가를 '바라고' 글을 쓴 게 아닌데, 본질과는 다른 시각으로 글을 읽으려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사실 바쁘기도 하지만 그간 블로그에 글을 잘 안 올리려 했던 이유가 이런 부분에서 좀 지쳐 있기도 했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자면 이 번에 굳이 1,2부에 걸쳐 이런 리뷰를 남겼던 건 그만큼 마나문고의 복간에 걸었던 기대와 관심이 컸다는 방증이며, 태권브이라는 콘텐츠에 대한 나름의 애증이 있어서다. 근데 이젠 그 마저도 없어지려고 한다. 

업체에서 새로운 제안을 내놓았기도 하고, 일단 태권브이 리프린트판의 리뷰라는 본래의 취지는 1,2부를 통해 이미 전달 되었다고 보기 때문에 더 이상 소모적인 일에 아까운 내 시간을 쓰고 싶진 않다. 내 의도가 어떤 것이 되었든 더 이상 마나문고 판에 대한 글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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