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비 - 우연과 필연 사이의 영리한 줄타기
[강철비]는 [브이] 때 부터 함께 작업했던 제피가루-양우석 콤비의 웹툰 [스틸레인]을 실사화 한 작품입니다. 웹툰의 시나리오 작가보단 영화 [변호인]의 연출로 더 성공을 거두었던 양우석 감독이 자신이 쓴 웹툰을 실사로 옮긴 특이한 이력을 가지게 되었지요. 연재 당시에도 북한 쿠데타라는 충격적인 소재를 담아서 꽤 화제를 모았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남한에서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고 정권이 바뀌는 과도기적 시기에 북한에서는 쿠데타 세력이 개성공단 공격을 감행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쿠데타를 막아내기 위해 막후실세들의 암살 임무를 맡은 전직 요원 엄철우는 얼떨결에 사건에 휘말려 절명상태에 놓인 북한 ‘1호’를 남한으로 이송하게 되지요.
뜻밖의 쿠데타에 비상에 걸린 건 남한도 마찬가지입니다. 몇 달 후면 정권 이양과 함께 현직에서 물러날 외교안보 비서관 곽철우는 사태를 파악하기 위해 동분서주 하던 중 우연히 엄철우와 맞닥드리게 됩니다. 전쟁을 일으키려는 자와 전쟁을 막으려는 자. 남과 북을 떠나 서로 다른 계산법을 가진 세력들의 대결로 한반도는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강철비]는 전 세계 유일한 분단국가인 한반도의 정세를 잘 이용한 첩보 스릴러의 틀을 갖추고 있습니다. 전시작전권이 없어 미국의 제안에 따라 피해상황을 시뮬레이션하고, 계엄선포에 이어 북폭을 결정하는 일련의 프로세스는 비록 영화가 허구라 하더라도 무척 소름끼치고 무시무시한 느낌을 주더군요. 그만큼 현실에 기반한 서스펜스가 잘 갖춰졌단 뜻입니다.
어떤 면으로는 냉전시대의 첩보물 그대로 우직한 정공법을 택한 영화입니다. 그래서인지 요즘 시대에는 조금 걸맞지 않은 촌스러움도 느껴지고요, ‘우연’과 '필연'을 가장한 실마리의 해법이 너무 좀 작위적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는 후반부로 갈수록 더 심화되는 편이고요. 대놓고 작위적이지만 꽤 영리하게 접근한다는 게 또 하나의 장점입니다.
주연인 곽도원과 정우성의 캐미도 좋은 편입니다. 특히 전직 북한군 요원으로 등장한 정우성의 절제되고 때론 코믹한 연기가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차 안에서 지디의 ‘삐딱하게’가 흐를 때 -묵음처리되어- 궁시렁대는 장면에서 웃음을 참을 수 없었네요.
짝퉁 [레드 히트] 같았던 [공조]와는 달리 [강철비]는 톰 클랜시의 잭 라이언 시리즈에 더 가까워 개인적으로는 [공조]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조금 무리수를 둔다면 곽철우 캐릭터를 기반으로 비슷한 컨셉의 시리즈를 만드는 것도 가능해 보입니다. 이런 아재스런 느낌의 작품이 괜찮게 다가오는 걸 보니 저도 나이를 먹어가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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