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편열전(續篇列傳) : 인디펜던스 데이: 리써전스 - 안일한 자기복제의 함정
속편열전(續篇列傳) No.37
아마 영화 마니아들이라면 1996년을 잊지 못할 겁니다. 이 해의 극장가는 정말 대단했었거든요. 어디 한번 볼까요? 먼저 [트위스터]가 있습니다. [스피드]로 실력을 인정받은 얀 드봉 감독이 [고질라]를 고사하고 선택한 작품으로 흥행돌풍을 일으켰지요. 톰 크루즈가 직접 제작사를 차려 모든걸 쏟아 부은 [미션 임파서블] 리메이크의 흥행신화가 시작된 것도 1996년입니다.
어디 그 뿐인가요? 마이클 베이 감독의 순도 120% 오락영화 [더 록]과 아놀드 슈왈제네거 형님의 [이레이저], 오우삼 감독의 [브로큰 애로우] 이 해에 나온 영화죠. 한국에 국한되는 일이지만 마이클 만 감독의 걸작 [히트]도 1년 늦게 수입되는 바람에 1996년 극장가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그럼 가히 역대급이라 할만큼 치열헸던 1996년의 극장가의 승자는 누구였을까요? 바로 롤랜드 애머리히 감독의 [인디펜던스 데이]였습니다. 북미에서만 3억 달러를 벌어들이며 당당히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지요.
사실 [인디펜던스 데이]는 개봉 전부터 대박 조짐이 보였던 영화입니다. 다른 건 볼 것도 없이 예고편의 백악관 폭파씬 하나만으로도 당시로선 정말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이후 이 압도적인 비주얼 쇼크의 스케일은 에머리히 감독의 전매특허가 되다 시피합니다. 오죽하면 에머리히의 차기작 [고질라]의 캐치 프라이즈가 “Size Does Matter”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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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인디펜던스 데이]의 내용만 가지고 보면 허접합니다. 실제로 특수효과만 빼면 개연성이 거의 없다시피하죠. 가장 문제가 되었던게 외계인의 모선에 컴퓨터 바이러스를 심는다는 설정이었는데요, 외계인의 컴퓨터와 애플이 서로 호환된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서 보는 내내 실소가 터져 나왔었지요.
그럼에도[인디펜던스 데이]는 외계인 침공 영화의 대명사가 되었고, 1996년의 박스오피스에서 최종 승자가 되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러니 저러니 말은 많아도 [인디펜던스 데이]는 적어도 하나의 목적만큼은 확실하게 달성한 블록버스터니까요.
[인디펜던스 데이]로부터 20년 후…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은 속편인 [인디펜던스 데이: 리써전스]를 내놓습니다. 어찌보면 굉장히 뜬금없으면서도 한 편으론 좀 놀랍죠. 이렇게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속편이 나오는 경우는 그리 흔한 경우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드문 것도 아닙니다.
가령 [2010: 우주여행]의 경우는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로부터 16년만에 나왔지요. [월 스트리트: 머니 네버 슬립스]는 23년만에, [컬러 오브 머니]는 무려 25년만의 속편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러한 작품들은 그 오랜 세월을 딛고서 속편을 낼 만큼의 의미가 있는 작품들이라는 공통점이 있긴 하죠. 근데 [인디펜던스 데이]라면? 다소 고개가 갸웃거릴만한 작품이긴 합니다.
하지만 원래 [인디펜던스 데이]의 속편은 1편의 성공 직후에 기획된 바 있습니다. 제작자이자 각본을 썼던 딘 데블린은 폭스 측으로부터 속편의 각본 작업을 위해 거액의 돈을 받았지만 막상 탈고를 한 후 각본이 너무 허접하다는 생각에 돈을 환불한 일이 있습니다. 그만큼 이 영화의 각본 작업이 쉽지 않았다는 뜻이지요.
한편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에게도 이 영화는 생애 첫 속편이 될 예정이었습니다. 실제로 [유니버셜 솔져] 같은 작품은 자신의 작품임에도 속편에서는 손을 뗀 지라, 그가 [인디펜던스 데이]라는 작품에 얼마나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는지를 짐작케 하는 대목인데요, 마침내 2014년 11월에 속편 제작이 공식적으로 확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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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버셜 솔져]의 속편, [유니버셜 솔저 2: 그 두번째 임무]. 흥미롭게도 이 작품이 개봉되기 전에 TV영화인 [유니버셜 솔저 II: 브라더스 인 암즈]란 작품이 제작된 바 있다. 두 작품 모두 짝퉁이 아닌 진짜 [유니버셜 솔저]의 속편인 셈인데, 극장판이 개봉되면서 TV판은 자연스레 흑역사화 되버린 케이스. 어쨌거나 두 영화 다 1편의 감독인 롤랜드 에머리히는 참여하지 않았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의 속편이니만큼 가장 큰 관심사는 오리지널 캐스트를 몇 명이나 데리고 올 수 있느냐 하는 점이었습니다. 물론 윌 스미스가 그 첫번째 대상이었구요, 결과적으로 그는 캐스팅되지 못합니다.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돈 때문이었는데요, 2,3편의 패키지 계약을 맺는 조건으로 5천만달러를 요구했다가 폭스 측의 강한 반발을 사게 되었지요. 정작 윌 스미스는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비롯한 스케줄 중복 문제라고 밝혔습니다만 대체적인 언론의 시각은 출연료 문제로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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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스팅 과정에서 불거진 또 하나의 문제점은 바로 1편에서 대통령의 영애로 출연했던 메이 휘트먼의 출연여부였습니다. 사실 그녀도 이젠 어엿한 숙녀인데다, 현재까지도 왕성한 배우 활동을 하고 있어서 캐스팅이 안될 이유가 없었지만 석연찮은 이유로 마이카 먼로가 배역을 따냅니다. 휘트먼 자신은 별다른 코멘트를 하지 않았으나 친구이자 배우인 안나 켄드릭이 트위터를 통해 공개적으로 이 사실을 비난하면서 팬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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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원년멤버로 재합류한 인물로는 제프 골드브럼, 빌 풀만, 비비카 A. 폭스, 주드 허쉬, 브렌트 스피너, 존 스토리, 그리고 로버트 로지아 이렇게 6명이었지요. 세월의 흐름을 생각하면 나름 선방한 것이라고 봐야 할까요? 특히나 전편에서 죽은 것처럼 보이던 오쿤 박사역의 브렌트 스피너가 재합류한 것은 좀 의외였지요. 그 외에 리암 햄스워스와 샤를로트 갱스부르그, 윌리엄 피치너, 그리고 안젤라 베이비가 새롭게 합류합니다.
자, 그럼 이제 영화를 좀 살펴봅시다. [인디펜던스 데이: 리써전스]는 개봉시점과 동일하게 전편으로 부터 정확히 20년 후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전편에서 기적적으로 외계인을 퇴치한 지구인들은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재침공에 대비해 외계인들의 기술을 연구하고 만반의 대비를 세워 놓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납니다. 외계인이 침공한 것이지요. 전편보다 훨씬 더 큰 모선이 외계인 여왕의 진두지휘 하에 지구를 깔아 뭉게니, 만반의 준비를 갖춘 지구는 또다시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맙니다. 그나마 달라진 상황이라면, 우주인과의 대전을 이미 한번 겪었다는 것과, 우주인과 링크되어 있는 전직 대통령이 있다는 것, 그리고 지구인을 돕기 위해 온 선의의 외계인이 새로 등장한다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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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요? 이게 답니다. 전편처럼 초반에 랜드마크를 신나게 부수고 나서는 말도 안되는 방식으로 반격의 기회를 만들고, 외계인들을 쓸어버린다…가 되겠습니다. 뭐 장르영화의 클리셰라는 것이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이 이상의 줄거리를 기대하는게 무리이긴 해요.
분명 시각효과는 진일보했고, 스케일도 나름 커졌다면 커졌는데, 그럼에도 전편만한 재미는 없습니다. 이미 이 정도 비주얼 쇼크는 질리도록 경험을 한데다 개연성 없이 기계적으로 조립된 이야기를 두 번이나 좋게 봐 줄 만큼 관객들이 너그러울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경기도 오산이겠지요. 게다가 어지간한 랜드마크는 1편에서 다 부쉈잖아요.
가장 큰 문제는 캐릭터의 증발입니다. 이야기야 그렇다 치더라도 전편의 캐릭터들은 나름 개성이 있었습니다. 위기의 상황에서도 호연지기를 잃지 않았던 윌 스미스와 제프 골드블럼의 조합, 용감한 지도자의 모습을 각인시킨 빌 풀먼의 캐릭터는 신선한 맛이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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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그런 캐릭터가 없습니다. 새 얼굴들은 그냥 얼굴마담격입니다. 안젤라 베이비야 당연히 중국 시장을 노리고 끼워넣은 전략공천같은 캐스팅이구요. 속속 죽어나가는 캐릭터들은 그저 소모적인 재료일 뿐이고 (하필 원년멤버들이 그런 포지션이라는게 참....) 어쩜 하나같이 발연기를 펼치는지… 그나마 제프 골드블럼 한 명만 개런티 값을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만 전편 만큼은 아닙니다.
롤랜드 에머리히가 무슨 명감독은 아니더라도 스케일이 큰 블록버스터의 때깔은 어느 정도 잘 낼 줄 아는 테크니션이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인디펜던스 데이: 리써전스]는 도무지 그런 고급진 때깔이 나오질 않습니다. 좀 심하게 비약하자면 돈 많이 들인 어사일럼 영화를 보는 것 같습니다. 자본과 기술만 있으면 쉽게 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한 것일까요? 이번 영화에서는 그런 안일함이 노골적으로 작품 전체를 뒤덮고 있습니다.
게다가 무슨 배짱인지 3편의 제작을 기정사실화 하면서 영화를 끝맺는데, 글쎄요… 이대로라면 3편의 성공은 매우 우려스러운 상황이라고 봐야겠지요. 아쉽지만 [인디펜던스 데이]의 추억은 그저 1996년의 여름에 머물러 있었어야 했습니다. 이렇게 영혼없는 속편을 보고 있자니 아까운 내 인생의 2시간을 날렸구나 하는 후회가 몰려옵니다.
P.S:
1.그렇게 무시무시한 과학력을 보유한 외계인들이 왜 하는 짓은 동물원 원숭이만도 못한 걸까요?
2.에머리히 감독은 [스타게이트]의 리메이크 3부작을 계획중이랍니다. 3부작이요? 제 생각에 에머리히 감독에게 속편을 또 맡기는 건 아무래도 아니지 싶습니다. 서사의 빈약함을 비주얼로 퉁칠려는 사람에게 같은 패를 다시 쓰도록 한다니요.
3.요즘 중국 시장을 겨냥해 너무 노골적으로 영화상에서 이를 드러내는 경향이 많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거북합니다. 중국 시장이 효자라 그러는 것 까진 이해가 가는데 그것이 영화 감상을 방해할 정도로 뜬금없다면 그건 분명 문제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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