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편열전(續篇列傳) : 미래세계의 음모 (퓨쳐월드) - 공포로 다가온 문명의 이기
속편열전(續篇列傳) No.36
스토커 기질을 가진 로봇이 인간을 공포로 몰아넣는다… 제임스 카메론의 [터미네이터]에서 알차게 써먹은 이 플롯은 원래 마이클 클라이튼의 [이색지대]에서 먼저 사용되었습니다. 거대 기업 델로스에서 성인들을 위한 테마파크를 개설해, 중세시대나 로마제국, 혹은 서부시대의 생활을 직접 체험하고 즐길 수 있는 아이디어를 실현시키지만 제어 시스템에 오류가 발생해 로봇들이 인간을 습격한다는 내용이지요.
[이색지대]에서의 백미는 명배우 율 브리너가 연기한 ‘총잡이’ 로봇입니다. 무표정한 얼굴로 집요하게 주인공을 쫓는 그의 연기는 그간 선굵은 남성적인 캐릭터로 인기를 모았던 율 브리너의 필모그라피에서도 가장 독특한 이력으로 남게 되었지요. 비록 지금보면 촌스럽지만 페이스 오프한 얼굴에 기계의 모습이 드러나는 장면은 어렸을 적 이불을 뒤집어쓰고 봐야 할 만큼 공포스러웠습니다.
ⓒ Metro-Goldwyn-Mayer (MGM) All Rights Reserved.
리처드 T. 해프론 감독의 [미래세계의 음모 (퓨쳐월드)]는 전편의 사건에서 이어지는 영화입니다. 웨스트월드의 참사 이후 델로스는 시스템의 오류를 전면 재검토한 업그레이드형 테마파크인 퓨처월드를 새로 개장하고 안정성을 검증하기 위해 각계의 유력인사들을 초대하게 되지요.
시니컬한 기자인 척(피터 폰다 분)도 초대 명단에 오르게 되는데 한 내부 고발자가 그에게 무언가를 말하려던 순간 살해당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이에 척은 여기자 트레이시와 함께 퓨처월드의 내부로 잠입, 델로스가 꾸미고 있는 거대한 음모의 실체를 파헤치려 한다는 내용입니다.
ⓒ American International Pictures (AIP), Aubrey Company All Rights Reserved.
[미래세계의 음모]는 전작의 세계관을 그대로 가져오는 한편, 주인공과 스텝을 전면 교체시키고 오락적인 요소를 줄이는 대신 기술의 발전이 가져올 수 있는 무서운 재앙을 예고하는 철학적 담론에 비중을 둡니다. 덕분에 황당하긴 해도 대기업이 꿈꾸는 음모의 궁극적 실체가 밝혀지는 부분은 굉장히 섬뜩하게 와 닿습니다. [이색지대]가 SF를 섞어넣은 스릴러였다면 [미래세계의 음모]는 다분히 르포르타주 형식의 영화라 볼 수 있죠.
흥미로운 사실은 전작에 이어 이번에도 율 브리너가 같은 역할로 출연한다는 점입니다. 다만 현실에서가 아니고 여주인공이 꿈꾸는 무의식 속에서 까메오로 등장한다는 것인데, 아쉽게도 이 작품은 율 브리너의 유작이 되고 맙니다.
영화사적인 의미를 살펴보면 [미래세계의 음모]는 최초로 CGI가 사용된 메이저 영화입니다. 물론 대단한 수준은 아닙니다만 주인공의 얼굴과 손 등을 3D 스캐닝하는 장면이 삽입되어 당시로선 꽤 신기한 기술을 보여주었지요. 당시 자신의 왼손을 직접 CG 작업한 인물이 바로 애드 캣멀인데 이 장면으로 기술력을 인정받아 루카스 필름에 전격 입사, 훗날 픽사의 사장으로 취임하게 됩니다.
ⓒ American International Pictures (AIP), Aubrey Company All Rights Reserved.
영화에 대한 일부 평론가의 호평과는 달리 [미래세계의 음모]의 배우들에 대한 평가는 대체적으로 좋지 않습니다. 특히 [이지 라이더]로 폰다 가의 명성을 잇는 배우로 떠올랐던 피터 폰다는 이후의 작품들에서 그리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는데, 이 작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캐릭터의 개성을 부여하는 면에서도 그렇지만 연기 자체도 썩 좋은 편이 아니라 아무래도 상업 영화의 단독 주연을 맡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해 보이지요.
감독을 맡은 리처드 R 헤프론은 주로 TV 영화의 연출을 담당하던 인물로서 이 작품 이후 [도시의 블루스 Outlaw Blues]란 작품에서 다시 한번 피터 폰다와 일하지만 이렇다 할 반응을 얻지 못한 채 경력의 대부분을 TV 영화 전문 감독으로 보내다가 생을 마감합니다. 어찌보면 극영화 연출 데뷔 후 갑작스럽게 찾아온 메이저 영화였는데 그 기회를 잘 살리진 못한 케이스죠.
어쨌거나 미래 세계의 테마파크를 무대로 벌어지는 이 이야기는 꽤나 매력적인 것이어서 1980년에 도 하나의 후속작으로 이어지는데요, 극장판 영화는 아니고 TV시리즈로 제작된 [비욘드 웨스트월드]라는 작품입니다. 델로스 내부의 보안 담당자 존 무어가 로봇을 이용해 세계를 지배하려는 미친 과학자를 막아낸다는 이야기로서 CBS를 통해 2시간 짜리 파일럿이 방영되었지만 호응이 좋지 않아 총 5부까지만 제작되었고, 그마저도 3편만 방영된 채 조기종영의 수모를 겪게 되었지요.
ⓒ CBS/ Metro-Goldwyn-Mayer (MGM) All Rights Reserved.
그리고 올해 HBO에서 [이색지대]의 리메이크 버전을 방영됩니다. 무려 조나단 놀란이 각본에 참여했고, 에드 해리스가 율 브리너의 역할로 나올 예정이라고 합니다. 여기에 안소니 홉킨스, 제임스 마스덴, 에반 레이첼 우드 등 캐스팅이 후덜덜하니 기대해도 좋을 듯 합니다.
P.S
1.메가톤급 히트작 [쥬라기 공원]의 원작자도 마이클 클라이튼입니다. 뭔가 감이 오시나요? 네, [쥬라기 공원]은 사실상 [이색지대]의 또 다른 변주인 셈입니다. 그걸 생각하면 [이색지대]가 얼마나 시대를 앞선 작품이었는지를 알 수 있죠. 한편 [미래세계의 음모]에는 마이클 클라이튼이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2.율 브리너의 총잡이 역할은 그가 출연한 1960년 작 [황야의 7인]에 대한 오마주입니다. 그 예로 그는 똑같은 의상을 입고 출연했습니다.
3.이 작품은 중국에서 상영된 최초의 현대극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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