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편열전(續篇列傳) : 정무문속집 - [정무문]의 정통 후속편을 찾아서 (1부)
속편열전(續篇列傳) No.31
최근 추억의 영화를 재개봉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른바 '리마스터링'이라는 핑계 하에 [라붐], [시네마천국], [터미네이터 2] 같은 작품들이 개봉되었거나 개봉을 앞두고 있는 상태이지요. 이런 재개봉 사례들은 개인적으로도 환영할만한 것이, 옛날에는 극장 한번 찾아간다는 것이 연례행사처럼 사치에 가까운 문화생활이었기 때문에 아무리 유명한 영화라 하더라도 극장에서 놓친 작품이 꽤 되거든요.
아무튼 이런 재개봉 추세 속에서 눈에 띄는 작품이 하나 있었는데, 지난 8월 29일에 개봉된 [정무문]이 그것이었습니다. 사실 생전에 고작 5편의 작품을 남기고 간 (뭐 [그린호넷]이나 [말로위]같은 작품은 예외로 둡시다) 터라 이소룡의 최고작을 꼽으라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정무문]과 [용쟁호투]인데, [용쟁호투]가 헐리우드 시스템에 의해 철저히 다듬어진 상업영화라면 [정무문]은 가공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홍콩 무술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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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무문]은 이소룡이 홍콩행을 결심한 뒤 [당산대형]에 이어 두 번째로 나유 감독과 작업한 작품으로 곽원갑의 제자 진진(陳眞)이 사부의 사망소식을 듣고 그 원한을 풀기 위해 일본 무술인들을 닥치는대로 응징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정무관 밖에서 대기중인 일본군을 응시하다가 특유의 괴조음과 함께 발차기를 하며 정치되는 화면 뒤로 여러발의 총성이 울려퍼지는 마지막 장면은 [내일을 향해 쏴라]에 비견될 만한 명장면으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아마 아직도 이소룡의 대표작을 꼽으라면 [정무문]이라고 대답할 사람이 가장 많을 것이라고 봅니다.
실제로 이소룡의 사후 [정무문]을 소재로 한 작품들은 실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쏟아져 나오게 되는데요, 그 몇몇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정무문]의 감독 나유가 성룡을 기용해 만든 [신정무문](국내명: 끝없는 용기, 성룡의 정무권), 짝퉁 이소룡의 한명인 거룡 주연의 [최후의 정무문]과 [정무문 81], 여소룡(이여룡) 주연. 남기남 감독의 [불타는 정무문], 역시 남기남 감독이 만든 [신 정무문], 이연걸이 주연을 맡은 [정무영웅](국내명: 이연걸의 정무문), 주성치의 코미디 영화 [신 정무문], 석천룡, 양리칭 주연의 [중진정무문]. 그리고 근래에 개봉한 견자단의 [정무풍운] (국내명: 정무문- 100 대 1의 전설) 등 최근까지 다양한 작품들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이들 '정무문' 영화들은 이소룡의 [정무문]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인데요, 뜬금없이 조선에서 태권도를 배우고 정무문에 돌아온 소청룡이 일본군을 무찌른다거나 (불타는 정무문), 정무문의 문하 사범들이 조선의 태권명인 금산선생을 찾아 왔다가 금산의 수제자 충이 이를 어여삐 여겨 몸소 중국으로 가 일본인들을 쳐부수거나 (최후의 정무문), 정무문의 혈통을 찾기 위해 한반도로 찾아왔다가 일본인 사부로오 일당을 처지하고 (남기남의 신 정무문), 카라데의 고수 하야가와에게 형과 노모를 잃은 정무관의 소청룡이 이역만리 한국에서 태권도를 전수받아 복수를 이루는 등 (남석훈의 속 정무문) 원작과 동떨어진 짝퉁영화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나마 견자단이나 이연걸이 나온 작품들은 [정무문]의 리메이크 내지는 오마주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지요.
자, 그럼 여기에서 정리해야 할 것이 이렇게 많은 정무문 영화 가운데 진짜 [정무문]의 적통을 이어받은 작품은 무엇이냐 하는 문제입니다. 일반적인 정설로는 [정무문]의 감독인 나유의 [신정무문]이 가장 속편의 성격에 가깝다고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진진의 사망 이후 정무관이 대만으로 이주해 그곳에서 우연히 좀도둑인 아룡(성룡 분)이 진진의 유품인 쌍절곤을 훔쳤다가 인연을 맺게 되어 평소 증오해오던 일본인들에 맞선다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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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인 [정무문]과의 접점은 우선 정무관의 존재, 진진의 유품인 쌍절곤, 진진의 연인인 려아(묘가수 분), 그리고 이소룡이 맡았던 진진의 등장씬이 회상장면으로 잠깐 나온다는 점, 무엇보다 [정무문]의 감독인 나유가 직접 감독을 맡았다는 점 등이 되겠습니다. 물론 이 작품은 성룡을 포스트 이소룡으로 키워보겠다던 나유의 판단미스가 불러온 결과물로 흥행에 실패, 성룡의 커리어가 한동안 바닥을 치게 만들었던 계기가 되고 맙니다.
내용만으로 보자면 석천룡, 양리칭 주연의 [중진정무문]도 [정무문]의 속편격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전작의 진진이 죽은 것이 아니라 살아남아 은둔생활을 하다가 일본인들의 만행을 보고는 다시금 욱해서 주먹을 휘두른다는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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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실 잘 알려지지 않는 또 하나의 작품이 더 있는데요, 바로 이번 시간에 소개할 [정무문속집]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작품은 Bruce Li, 혹은 여소룡(黎小龍) (주: [불타는 정무문]의 여소룡(呂小龍=Bruce Le=이여룡)과는 다르다)으로 불리던 하종도가 주연을 맡은 작품이지만 [불타는 정무문]이나 [최후의 정무문] 같이 한국에 의해 제작된 짝퉁과는 달리 홍콩에서 제작된 작품으로 영어 제목으로는 Fist of Fury II 혹은 Chinese Connection II 등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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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작품 역시 기본적으로는 졸속으로 제작된 여느 브루스플로테이션 무비와 크게 다를 바는 없습니다만 작품의 면모를 자세히 살펴보면 [신정무문]과 함께 [정무문]의 적통에 꽤나 가까운 작품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본격적으로 [정무문속집]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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