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정원 - 소년, 여인을 만나다
[언어의 정원]은 1인 제작자로 실력을 인정받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신작입니다. 주로 중단편을 만들던 그는 바로 전작인 [별을 쫓는 아이: 아가르타의 전설]을 통해 처음으로 장편 메이저 장르에 도전했지만 정작 좋은 반응을 얻지는 못했죠. 아직까지 2시간 남짓한 러닝타임을 책임지기엔 연출력의 깊이가 모자랐을 수도 있고, 아니면 애초에 스튜디오 지브리의 아류작 같은 작품의 성격이 감독과는 안맞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언어의 정원]은 신카이 마코토의 장기가 가장 잘 드러나는 1시간 안쪽의 중편 연애물로 돌아온 작품입니다. 영화는 비내리는 날이면 신주쿠의 공원으로 가서 스케치에 몰두하는 15세 소년의 독백으로 시작합니다. 장차 수제구두장인이 되길 꿈꾸는 그는 평범한 고교생이지만 어느날 공원에서 초콜릿을 안주삼아 맥주를 마시고 있던 한 여인과 만나게 되지요. 비오는 날이면 항상 만나는 두 사람은 이윽고 서로에게 다가서며 상대의 나이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감정의 단계에 다다르게 됩니다.
이미 검증된 분야이기도 하거니와 감독의 성향에도 충실한 내용이니만큼 결과물은 매우 좋은 편입니다. 극사실주의에 가까운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배경연출과 그만이 구사할 수 있는 독특한 색감과 광원의 미학은 이미 일본, 아니 전세계 톱클래스의 반열에 올랐다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늘 그래왔듯 이야기의 여백 또한 상당부분 존재하는데, 환상적인 비주얼과 감성적인 연출의 흐름이 작품의 적막한 분위기가 잘 어우러져 탁월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합니다.
ⓒ Makoto Shinkai /Comix Wave Films, TOHO Animation
물론 스토리텔링이 모두에게 만족스러울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회, 윤리적인 측면에서 보면 다소 불편한 부면도 있고, 마지막 엔딩의 허무함만을 따진다면 이건 뭐지 싶을 정도로 기승전결의 '결'이 생략된 느낌이죠. 반면 장면 하나하나에 감정을 담아내는 서정성의 농도는 매우 짙은데, 이러한 연출의 특성은 신카이 마코토의 팬이라면 익숙하지만 처음 입문하는 사람에겐 조금 생소할 수도 있습니다.
어쨌거나 [언어의 정원]은 신카이 마코토의 연출 특성이 잘 반영된 작품입니다. 스토리로 이해하기 보다는 감정으로 이해하는 작품이며 특히 눈 앞에 펼쳐지는 비주얼의 압도적인 아름다움은 대세가 되어버린 헐리우드의 CG와는 또다른 차원의 예술성을 지닙니다. 비온 뒤 적막이 흐르는 오후 2시의 평온함과 같은 느낌을 준달까요.
P.S
1.이제 신카이 마코토도 40줄에 접어들었으니 커플파괴류 갑의 꼬리표는 슬슬 떼어도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과 더불어 문득 떠오른 생각은 이 양반이 [최종병기 그녀]를 만들었더라면? 울컥울컥.
2.'언어의 정원'이라는 제목처럼 언어, 즉 대사의 은유가 상당히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작품입니다. 어떤 의미에선 어설픈 자막판 보다는 비교적 퀄리티가 우수한 한국어 더빙판이 몰입도 면에서는 더 유리할 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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