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편열전(續篇列傳) : 슈퍼맨 2 - 두 명의 감독, 두 개의 버전 (2부)
속편열전(續篇列傳) No.29
-2부-
그래도 [슈퍼맨 2]를 만드는데 리처드 도너보다 더 나은 인물을 찾을 수는 없었습니다. 제작자들은 고심끝에 도너에게 [슈퍼맨 2]를 완성시켜 줄 것을 당부하지만 도너가 폭탄선언을 하면서 상황은 갑작스럽게 바뀌고 맙니다. 리처드 도너가 요구했던 사항을 요약하자면 크게 두가지인데, 한가지는 '자신과 마찰을 빚어왔던 피에르 스팽글러가 제작에서 손을 땔 것', 또 한가지는 '영화의 제작에 있어 자신에게 전권을 부여할 것'이었습니다.
사실 도너가 이 같은 요구를 한데에는 어떤 사건이 영향을 미쳤었는데요, [슈퍼맨: 더 무비]의 성공에 큰 기여를 했던 말론 브란도의 등장씬을 [슈퍼맨 2]에서 모조리 빼라는 제작진의 지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조-엘 역으로 출연한 말론 브란도는 10여분의 출연에 370만 달러 + 영화수익의 11.75%를 가져가는 조건으로 계약을 맺었었는데, 370만 달러의 출연료만으로도 파격적이었던 까닭에 11.75%의 러닝개런티 지급을 거부한 제작사와 결국 소송까지 가서 브란도의 승소로 끝나게 되었지요. 만약 2편에도 브란도가 등장한다면 [슈퍼맨 2]의 수익금 11.75%는 말론 브란도에게 고스란히 갖다 바쳐야 했습니다.
ⓒ Warner Bros. All rights reserved.
이에 제작진은 '말론 브란도 효과'가 1편에서 충분히 끝났다고 판단했고, 이에 2편에서 브란도의 촬영분을 뺀다면 11.75%의 러닝 개런티를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가졌던 것이지요. 그러나 도너에게 있어서 말론 브란도가 맡은 조-엘의 역할은 단순한 슈퍼스타 이상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조-엘은 유사 메시아의 모티브를 지닌 [슈퍼맨 2]의 플롯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인물이었고 따라서 (리처드 도너의 계획에 의하면) 말론 브란도의 출연씬은 2편에 반드시 포함되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단지 '돈을 아끼고자' 브란도를 제외시키려던 제작진의 횡포를 완벽주의자인 도너로선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결국 도너의 요구조건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제작진은 결국 도너를 하차시키고 대타로 리처드 레스터를 지명하게 됩니다. 여기서 리처드 레스터라는 인물에 대해 조금 짚고 넘어가야 하는데요, 레스터는 원래 도너와는 꽤 친한 사이로 앞서 제작진과 도너가 갈등을 빚고 있을때 중재를 섰던 바로 그 인물입니다. 이미 [삼총사] 2부작으로 솔카인드 부자와는 인연이 있었고 무엇보다 [슈퍼맨: 더 무비]에서 비공식적인 제작자문 역할로 참여했었지요. (크래딧상에는 그의 이름이 없습니다)
하지만 [슈퍼맨 2]에 리처드 레스터의 이름을 올리는데는 몇가지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가장 큰 걸림돌은 이미 리처드 도너가 [슈퍼맨 2]의 막바지 작업만을 남겨놓고 거의 완성을 시켜놓았다는 것이었고, 또하나는 리처드 레스터가 애당초 슈퍼맨이라는 원작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다는 겁니다. 전미감독조합의 규정상 리처드 레스터가 [슈퍼맨 2]의 감독으로 이름을 올리기 위해서는 영화 분량의 50% 이상을 그의 것으로 만들어야 했는데, 이 때문에 [슈퍼맨 2]는 도너의 촬영분을 버리는 한편, 미촬영분과 기촬영분을 다시 찍어 레스터의 50%을 끼워넣는 식으로 제작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마곳 키더와 이야기를 나누는 리처드 레스터(왼쪽) ⓒ Warner Bros. All rights reserved.
[슈퍼맨 2]가 1편과 비슷하면서도 어딘지 이질적인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신화적 품격과 리얼리즘 노선을 추구했던 도너와는 달리 레스터는 [슈퍼맨 2]가 만화적인 상상력으로 가득해야 한다고 여겼죠. 또한 60년대 꽤 유망한 연출가로 이름을 알린 레스터 자신으로서도 도너의 영향을 벗어난 작품을 만들고자 하는 일종의 오기같은 것도 있었을 겁니다.
따라서 레스터가 리테이크한 장면들 중 상당수는 그의 성향이 고스란히 녹아들어간 슬랩스틱 코미디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특히나 긴장감이 증발된 메트로폴리스의 결투장면은 애초에 외계 3인을 '무시무시한 악당'으로 설정한 도너의 계획하고는 완전히 다른 노선을 추구하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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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흥행에 있어서는 전편에 버금가는 성공을 거두긴 했지만 레스터판 [슈퍼맨 2]는 유치함과 진지함이 공존하는 그 기이한 완성과정으로 인해 호불호가 매우 갈리는 작품이 되었으며, 도너의 노선과 상충되었던 레스터의 성향은 그가 온전히 참여했던 [슈퍼맨 3]에서 고스란히 드러나게 됩니다. 물론 레스터판 [슈퍼맨 2]는 완성도에 있어서 그 나름대로 충분히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렇게 완벽할 뻔했던 [슈퍼맨 2]가 제작자의 몰지각한 상술 때문에 불완전한 속편이 되어버린 후 시간이 흘러 1984년 ABC 방송국에서 [슈퍼맨 2]의 확장판 (이하 ABC 확장판)이 방영되었는데요, 이를 기점으로 사람들은 혹시 리처드 도너의 '쓰이지 않은 촬영본'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갖게 됩니다. 실제로 ABC 확장판에는 도너가 촬영했던 미사용 필름의 약 20분 분량 정도가 사용되었는데, 이로 인해 리처드 도너가 의도했던 감독판 [슈퍼맨 2]에 대한 가능성이 제기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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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에는 로이스 레인 역을 맡았던 마곳 키더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리처드 도너가 자신의 영화(슈퍼맨 2)를 완성시킬만큼 충분한 양의 촬영을 마쳤다며 그 미사용 필름은 어딘가 창고에 있을것"이라는 의견을 밝히게 되는데(주: 마곳 키더는 리처드 도너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실제로 그녀가 [슈퍼맨 3]에서 비중이 비약적으로 줄어들게 된 데에는 리처드 도너를 [슈퍼맨 2]에서 몰아낸 점에 대해 그녀가 매우 비판적인 스탠스를 취했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있을 정도였다) 이를 계기로 인터넷에서는 워너측에 [슈퍼맨 2: 도너컷]을 만들도록 허용하고 이를 전폭적으로 지원해 줄 것을 요청하는 청원운동이 불붙게 됩니다.
일부 팬들은 ABC 확장판과 예고편 등에서 사용된 필름을 짜맞춰 '자신만의' [슈퍼맨 2: 도너 컷]을 만들기도 했다. 사진은 어떤 팬이 만든 Restored International Version의 표지.
그리고 마침내 2006년에 브라이언 싱어의 [슈퍼맨 리턴즈]가 개봉되면서 슈퍼맨 열풍을 재현할만한 빅 이벤트로 [슈퍼맨 2: 도너 컷]이 공개됩니다. 한 편의 영화에 두 명의 감독이 각각 다른 버전의 영화를 내놓는 영화사에 기록될 대사건이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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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리뷰는 DVD Prime에 기고한 김정대님의 컬럼 [슈퍼맨의 클래식 4부작의 모든 것]에 기초한 글입니다. 이 자리를 빌어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