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트맨: 이어 원 - 고담시 영웅의 탄생신화
언제부터인가 슈퍼히어로물의 트렌드는 영웅의 기원을 찾아가는 것으로 바뀐듯 하다. [엑스맨]의 스핀오프인 [울버린]이나 [퍼스트 클래스]가 그 좋은 예다. 스파이더맨은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으로 리부트되었고, 슈퍼맨은 [맨 오브 스틸]을 통해 다시금 슈퍼맨의 기원을 재정립할 예정이다. 물론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 삼부작이 이러한 조류의 가장 성공적인 케이스임을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다.
영화와는 달리 코믹스 계열에서는 이러한 근원적 물음에 대한 탐구가 꽤 일찍 시작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다크나이트 리턴즈’를 통해 그래픽 노블의 수준을 한단계 격상시킨 프랭크 밀러는 DC코믹스의 간판스타 배트맨에 대한 신기원을 재조명했다. 바로 ‘배트맨: 이어 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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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슈퍼히어로의 탄생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고뇌가 담긴 걸작으로 1987년 부터 연재되어 프랭크 밀러가 각본을, 데이빗 마주첼리가 일러스트를 그렸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비긴즈]와 유사한 시점의 이 작품은 청년 브루스 웨인이 자경단원으로 활동하면서 어떻게 배트맨이 되어가는지를 한 편의 훌륭한 범죄 드라마로 엮어내어 팬들의 열성적인 지지를 얻은 바 있으며 극장판 애니메이션 [배트맨: 환영의 가면]에도 영감을 주었다.
2011년 작 [배트맨: 이어 원]은 바로 프랭크 밀러의 원작을 애니메이션화한 작품으로 프랭크 밀러의 진지한 히어로 철학을 만날 수 있다. 원작 자체가 역동적이면서 드라마틱한 연출 기법을 사용한 관계로 애니메이션의 80% 정도를 그래픽 노블의 화면구도를 따라할만큼 그래픽노블을 그대로 영상화 시킨듯한 느낌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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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서는 비단 브루스 웨인 뿐만이 아니라 제임스 고든이 내러티브를 이끄는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한다, 강직한 성격의 고든은 부패가 가득한 고담시에 발령받아 고민에 빠진다. 비슷한 시기 전 세계를 돌며 수련의 시간을 가진 브루스 웨인은 고담시의 악을 척결하는 자경단이 되어 활동을 시작한다. 두 사람은 각각 경찰내부의 부정부패와 도시의 범죄에 맞서 각자의 싸움을 시작하며 여기에 매춘부 셀레나 카일이 배트맨의 활약에 착안해 캣우먼이 되기로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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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익숙한 밥 케인의 원작 속 캐릭터들에 대한 선명한 재해석은 놀랍도록 정교하며 드라마틱하다. 특히 고든의 성격묘사는 그간 선보인 어떤 배트맨 시리즈보다도 뚜렷한데 비단 강직한 형사로서 뿐만이 아니라 때로 인간적인 실수(?)도 하는 인물로 그려져 감정이입을 높혔다. 오히려 브루스 웨인의 이야기보다도 짐 고든의 이야기가 훨씬 더 흥미진진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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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 이어 원]은 일개 슈퍼히어로물이라기 보단 한편의 범죄 느와르에 가까운 전개와 분위기를 내포하고 있어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 3부작과도 좋은 비교가 될 듯 하다. 스케일이나 영화적인 재미에 있어서는 [배트맨 비긴즈]가 우위에 있긴 하나 심층적인 캐릭터 분석과 원작 만화의 묘미를 살리는데 있어서는 [배트맨: 이어 원]쪽에 좀 더 점수를 주고 싶다.
배트맨 이어 원 - 데이비드 마주켈리.프랭크 밀러 지음, 곽경신 옮김, 리치먼드 루이스 그림/세미콜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