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편열전(續篇列傳) : 이노센스 - 공각기동대, 그 후 3년
속편열전(續篇列傳) No.23
오시이 마모루의 1995년작 [공각기동대]는 재패니메이션은 물론 사이버펑크 장르의 계보에 있어서도 ‘걸작’이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았던 작품입니다. 기계와 인간의 경계가 모호한 전뇌가 보편화된 디스토피아적 미래상을 제시한 [공각기동대]는 공안 9과의 형사 쿠사나기 모토코 (일명 소령)가 사람의 기억을 조작하는 해커 인형사를 뒤쫒는 내용을 담고 있지요.
인터넷의 개념조차 바로잡히지 않던 시기에 네트워크의 대중화 시대를 예견이라도 한 듯 시대를 앞서나가는 사회상을 보여준 이 작품은 실사영화를 방불케하는 사실적인 영상과 더불어 존재론적인 의문을 제기합니다. 시로 마사무네의 원작만화를 오시이 마모루 감독 나름의 작가주의적 관점에서 재해석해 완전히 다른 작품으로 만들어 놓은 덕분에 작품성은 두말할 나위없이 뛰어나지만 대중적인 친화력이 부족해 일본에서만 고작 12만명의 관객을 동원,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저주받은 걸작’으로 불리는 실패작이 되고 맙니다.
ⓒ Shirow Masamune/Kodansha Ltd./Bandai Visual. All rights reserved.
하지만 이 작품은 유수의 헐리우드 감독들에게 있어서도 찬사의 대상이 되는데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말하길 ‘[블레이드 러너] 이후 아류작들을 만들던 재패니매이션은 [공각기동대]로 그 모든 빚을 갚았다’라고 했는가 하면, 워쇼스키 형제는 자신들이 만든 불세출의 히트작 [매트릭스]가 [공각기동대]의 영향을 받았음을 순순히 인정하는 등 오히려 흥행실패 이후의 시간들을 통해 재평가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2002년 What if 버전의 TV판 [공각기동대 SAC]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다시금 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가 주목받게 되는데, 이러한 여파를 몰아 마모루 감독은 깜짝 놀랄만한 발표를 하게 됩니다. 바로 [공각기동대]의 속편을 내놓겠다는 것이었지요.
ⓒ 士郞正宗/ Production I.G/講談社/ 攻殼機動隊製作委員會
기획에만 2년, 제작기간 3년이란 세월을 기다리며 마침내 9년만에 돌아온 속편 [이노센스]의 시간적 배경은 전작으로부터 3년이 흐른 시점입니다. 주인공은 전작에서 네트의 바다로 사라져버린 소령이 아니라 그녀의 파트너인 바토로서 주인을 살해한 가이노이드의 살인사건을 맡게 됩니다. 그러면서 점차 전작에서 다루었던 존재론적 의문들에 접근해가기 시작합니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비약적으로 발전한 그래픽 기술의 덕택인지 [이노센스]의 비주얼은 그야말로 환상적입니다. 말 그대로 압도당하는 느낌이랄까요. 영화의 하이라이트를 이루는 축제 장면의 몽환적이면서도 우아한 화면은 정말이지 매혹적인 광경을 연출합니다. 놀랍게도 CG가 당연할 것으로 여겼던 이 장면의 실제 CG는 10% 이내로 사용되었고 나머지는 모두 셀 애니메이션으로 처리되었다니 더더욱 놀랄만합니다.
ⓒ Shirow Masamune-Production I.G /Kodansha All rights reserved.
전체적으로 하드한 액션물의 분위기를 풍겼던 [공각기동대]에 비해 [이노센스] 일종의 느와르에 가깝습니다. 분위기는 한층 더 어두워졌고 진행이 루즈하며 무게감이 느껴집니다. 범죄물의 내러티브를 답습하지만 전개과정이 평이한 탓에 스릴감은 떨어지게 되었지요. 게다가 의미가 모호한 대사들의 범람은 오히려 [이노센스]가 전편이 남겨놓았던 담론들의 부스러기만을 주워담았을 뿐 본질의 확장이라는 목적에는 실패했다는 평가를 낳았습니다.
데카르트에서부터 공자나 밀턴, 다윈이나 성경 같은 수많은 고전과 철학자들의 인용구를 거침없이 쏟아내지만 철학적이고 깊이있게 보이려던 [이노센스]의 외피는 생각처럼 그리 두터워보이질 않았던 것이지요. 뭔가 있어 보이면서 막상 내용물은 속빈 강정처럼 말이에요. 관객들은 이 잘난척하는 듯한 작품을 바라보며 중대한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노센스]에는 정작 중요한 ‘이야기’가 없다는 사실 말입니다.
ⓒ Shirow Masamune-Production I.G /Kodansha All rights reserved.
결국 이 작품은 막판 쿠사나기 모토코의 깜짝 등장씬까지 준비하며 전작의 마니아층들에게 한 발짝 다가서려 하지만 감독의 자기 만족에 빠진 나머지 대중들의 필요는 외면한 작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일본 애니메이션 사상 최초로 칸느 국제 영화제 경쟁 부분에 초청되었음에도 별다른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고, 2천만 달러의 제작비를 들여 절반정도밖에 거둬들이지 못하면서 흥행에서도 완패했지요.
어쩌면 감독인 오시이 마모루는 걸작의 반열에 오른 [공각기동대]를 내심 부담스럽게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그 증거로 그는 당연히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했던 '공각기동대'의 타이틀을 제목에서 빼버립니다. 일각에서는 흥행에 실패한 전작의 징크스때문에 스즈키 프로듀서가 취한 조치라고 보도했지만 요미우리 신문과의 인터뷰를 보면 감독 스스로가 [이노센스]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분명하게 알 수 있죠.
그는 '([이노센스]는) [공각기동대]를 모르면 즐길 수 없는 작품이 아니다. [에이리언] 시리즈를 보라. 1편부터 4편까지 모두 다르지 않나. [이노센스] 역시 [공각기동대]와는 다르다'라고 하면서 [공각기동대]와의 비교에 대해 은근히 부담스러워하는 입장을 취하는데, 이러한 1편을 능가하지 못한 속편의 전형적인 결과는 현실로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TV 시리즈 [공각기동대 SAC]의 연이은 성공과는 달리 오시이 마모루의 극장판 [공각기동대] 시리즈는 이렇게 전편과 속편이 모두 흥행에 실패하면서 한때 일본 애니메이션의 기대주로 주목받던 오시이 마모루의 거품론까지 재기되는 등 온갖 악평 속에 막을 내리게 됩니다. [인랑]과 [아바론]등 [공각기동대] 이후로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한 오시이 마모루의 한계는 딱 거기까지였던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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