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편열전(續篇列傳) : 분노의 질주 2 - 속도감만 살아남은 속편
속편열전(續篇列傳) No.18
10년전 [분노의 질주]가 개봉되었을 때 이 작품이 시리즈 5편까지 제작될 만한 장수 프렌차이즈가 될거라고 과연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요? 사실 1편만 보더라도 내용상 속편의 여지를 남겨놓고 있지는 않습니다. [폭풍속으로]의 내러티브에 스트리트 레이싱이라는 요소를 집어넣은 [분노의 질주]는 (당시만 하더라도 대형스타는 아니었던) 빈 디젤과 폴 워커를 투톱으로 내세운 평범한 범죄액션물 정도에 지나지 않았지요.
1편의 원제인 'The Fast and the Furious'는 1955년 로저 코먼 사단이 제작한 동명의 영화에서 라이센스를 따온 것인데, 오직 제목만 빌려온 것일 뿐, 내용은 바이브 메거진에 실린 뉴욕 스트리트 레이싱에 관한 켄 리의 기사에 바탕을 두었습니다. 자동차를 이용한 범죄단을 잡기 위해 조직내로 위장잡입한 형사와 조직의 보스와의 우정을 담은 [분노의 질주]는 내용면에 있어서 다소 진부하긴 했습니다만 짜릿한 속도감과 더불어 신선한 느낌을 주는 배우들의 매력 덕택에 흥행에서도 예상밖의 성과를 올리게 됩니다.
ⓒ Universal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유니버셜 측에서도 이같은 [분노의 질주]의 성공은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것이어서 신이 난 간부들은 곧 2편의 제작을 지시하게 됩니다. 제작사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도미닉이 돌아오는 버전과, 도미닉이 돌아오지 않는 버전의 두가지 각본을 준비합니다만 1편의 일등공신인 롭 코헨 감독과 빈 디젤은 차기작 [트리플 엑스]의 촬영시기와 겹치는 바람에 속편의 합류가 불가능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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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2편의 감독은 [샤프트]를 통해 블랙-익스플로테이션 장르무비를 새롭게 재해석한 바 있는 존 싱글턴이 내정되었고, 주연은 1편의 폴 워커와 새롭게 합류하게 된 가수 겸 모델 타이리스 깁슨이 선택되었지요. 이번 2편의 제목은 [2 Fast 2 Furious]로 속편으로서의 나름 센스가 느껴지는 제목입니다.
[분노의 질주 2]는 전편에서 범죄자 도미닉(빈 디젤 분)의 도주를 방조한 LA경찰 브라이언(폴 워커 분)의 후일담으로 이어집니다. 브라이언은 그 사건으로 경찰에서 파면당했고, 스트리트 레이서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느날 브라이언은 야밤의 레이싱에 참가했다가 급습한 FBI에 의해 체포되는데, 탈세 혐의를 받고 있는 마약상 카터의 범죄를 입증하는데 협조해주면 모든 죄과를 삭제해주겠다는 FBI의 제안을 받고 전과자 로만(타이리스 깁슨 분)과 팀을 이룹니다. 스트리트 레이서를 차출해 범죄에 이용하는 카터의 조직에 들어가기 위해 브라이언과 로만은 치열한 레이싱을 펼쳐 위장잠입을 시도하게 되지요.
[분노의 질주] 1편이 [폭풍속으로]의 레이싱 버전이었다면 2편은 '니드 포 스피드: 언더 그라운드'의 실사판같은 느낌을 주는 스피드 액션물입니다. 자동차의 질주 장면은 전작에 비해 한결 업그레이드 되었고, 미쓰비시 랜서 에볼루션, 닛산 스카이라인 GTR, 도요타 수프라 등 자동차 매니아들이라면 침을 질질 흘릴 만한 명차들의 향연이 즐비하게 이어집니다. 또한 직선코스를 주로 다룬 1편에 비해 경주에는 곡선코스도 추가해 한층 더 아슬아슬한 스트리트 레이싱의 스릴을 맛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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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단점도 많습니다. 우선 캐릭터의 매력이 많이 반감되었습니다. 처음엔 과묵한 인물처럼 보였던 타이리스 깁슨이 실은 전형적인 떠벌이형 흑인 캐릭터임이 드러나자, 영화는 한없이 가벼워지기 시작합니다. 전작의 경찰에서 일개 범죄자 신분이 되어 버린 폴 워커의 캐릭터도 동일한 인물이지만 중량감은 현격히 떨어집니다. 여기에 데본 아오키나 에바 멘데스 같은 몸매좋은 여배우들도 그다지 이야기를 이끄는데 있어 큰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역시나 선과 악의 경계에 있던 신비한 캐릭터 도미닉의 공백이 꽤나 크게 다가왔지요. 어디까지나 이 시리즈의 주인공은 '자동차'이지만 말입니다.
스토리에 있어서 1편과의 연계성이 떨어지고 전반적으로 허술하게 짜여져 있다는 점은 안좋은 속편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물론 [분노의 질주]가 스토리로 승부하는 영화는 아닙니다만 그래도 드라마 구성에 일가견이 있는 존 싱글턴이 메가폰을 잡은 이상 거의 속이 비다시피한 영화를 오로지 스피드와 자동차의 굉음으로만 가득 채웠다는 건 어딘지 좀 의아한 부분이기까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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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보면 [분노의 질주]가 2편까지 나온것만으로도 신기할 따름인데, 놀랍게도 제작진은 [분노의 질주: 도쿄 드리프트]라는 3편을 내놓더군요. 주인공은 물론 감독과 배경도 전부 올 체인지된 외전격인 작품이었습니다만, 그럼에도 마지막에 '그 분'을 등장시켜 시리즈의 정체성을 원래대로 되돌리는데 성공한 걸 보면 이 시리즈의 진정한 일등공신은 3편의 감독 저스틴 린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나저나.... 이건 또 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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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1.폴 워커는 실제로도 스트리트 레이싱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그가 처음 타고 등장한 닛산 스카이라인은 실제 그가 소유한 자동차라고 하더군요. 심지어 영화에서 선보이는 자동차도 모두 직접 선택한 것이랍니다.
2.핑크색 혼다 S2000를 모는 데본 아오키는 이 영화의 촬영이 시작될 당시 운전면허도 없었을 뿐더러 운전대를 잡아본 적도 없었답니다. -_- 아오키를 포함한 배우들은 별도로 강도높은 스턴트 훈련을 받아야 했지요.
3.이 작품에 나오는 캐릭터 중 브라이언(폴 워커 분)을 제외하고 적어도 3명이 [분노의 질주: 언리미티드]에 재합류합니다. 덕분에 흑역사로 사라질뻔한 2편의 위상도 조금은 살아났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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