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ㄱ

글러브 - 익숙한 감동과 기시감을 일으키는 스포츠 신파극

페니웨이™ 2011. 1. 2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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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석은 참 신기한 감독이다. 지금이 21세기인데도 쌍팔년도식 연출 스타일을 고집하는 감독치고는 의외로 많은 고정팬들을 확보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어떤면으로는 참 안전한 영화를 만드는구나 싶고, 그러한 평이함에서 오는 따분한 느낌에 질색하는 안티팬들이 적지 않음에도 강우석 감독의 작품은 일단 세간의 관심에 오르는데 탁월한 재주를 가졌다.

[글러브]는 전형적인 강우석표 영화처럼 보인다. 소재의 신선함도 없고, 어느덧 강우석 사단의 대표배우가 되어 버린 정재영이 메인을 꿰차고 앉아 그나마 기대할 만한 캐스팅의 의외성도 삼켜버렸다. 아니, [이끼]를 찍은지가 얼마나 되었다고 1년도 안된 시점에 후딱 작품을 내놓은걸 보니 어지간히 영화를 날치기로 찍은거 아니냐는 의혹도 살 만하다. 아마도 철저한 강우석 감독의 안티팬이라면 이러한 영화의 외형적 요소만으로도 충분히 불만을 제기할 수 있을거다.

그래도 뭐.. 일단은 영화를 보고 판단하자. [글러브]는 청각장애인 학생들로 이루어진 야구부의 실화에 바탕을 둔 드라마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니까 왠지 [실미도] 생각이 나네. 맞다. 뜬금없다 여길지도 모르겠지만 이 영화는 어딘지 모르게 [실미도]를 연상시킨다. 감정의 과잉과 오버하는 연기, 낙오한 무리들의 독기서린 지옥훈련의 과정은 마치 [실미도]를 전체관람가 버전으로 순화시켜놓은 듯한 느낌을 준다. 그만큼 이 영화는 기존 강우석 연출방향에서 단 한발짝도 벗어나지 않은 작품이란 뜻이기도 하다.

ⓒ CJ엔터테인먼트/시네마서비스/ KnJ엔터테인먼트. All Right Reserved.


영화는 일견 스포츠물의 장르적 베이스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준다. 적당히 감동적이며, 웃음과 유머도 적시적소에 배치되어 있고, 경기장면의 연출도 그리 나쁘지 않다. 문제는 영화의 러닝타임이 무려 2시간 20분에 육박한다는 것인데, 아마도 이 점이 [글러브]에 있어서는 최대의 단점이 될 듯 하다. 방대한 원작을 잘라내는데 애를 먹었던 [이끼]와는 또다른 경우이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대부분 영화가 길어지게 되는 요인은 크게 두가지다. 플롯이 너무 복잡해 이를 설명하기 위한 시간을 필요로 하거나, 아니면 다양한 캐릭터를 구축하기 위해 러닝타임을 사용하는 경우.

그런데 [글러브]는 두 경우 모두에 해당되지 않는다. 우선 이 영화는 누가봐도 뻔한 단선적인 스토리 구조를 지녔다. 사고뭉치 코치가 가망없는 팀에 부임했다가 어떤 일을 계기로 불끈 타올라 팀에 활기를 불어넣고 몇가지 역경과 밉살스런 캐릭터의 갈굼을 극복하고 결승급 경기에 나가 승리하거나 패배하거나 하는 기성 스포츠 드라마의 공식을 그대로 따라간다. 그렇다면 남은건 캐릭터의 구축인데, 이 또한 중심인물인 김상남(정재영 분)을 포함한 등장인물 모두가 너무나도 스테레오 타입의 인물들이라 캐릭터 구축에 딱히 긴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

대신에 [글러브]는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인 온갖 신파극의 요소들을 몽땅 끌어오는데 여념이 없다. 워낙에 감정을 쥐어짜는 통에 일순간 눈물이 찔끔나오다가도 오버가 지나쳐 손발이 오그라드는 몇몇 장면들을 포함해 적당이 편집해서 넘어가도 충분했을법한 스포츠 드라마의 전형적 클리셰들을 답습하느라 호흡을 늘어뜨린다. 정말이지 2시간 정도로 마무리했더라면 깔끔한 야구드라마가 완성되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을 뒤로 한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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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의 연기는 더욱 아쉬움을 남긴다. 정재영의 연기는 여전히 좋으며 매력적이지만 너무 자주 강우석과 장진의 영화속에서만 활동한 탓인지 이제는 연기의 패턴과 캐릭터가 너무 전형적인 형태로 굳어져간다는 느낌을 받는다.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하는 배우이지만 이제는 주연급 배우로서 좀 더 연기의 스펙트럼을 넓혀야 할 시기가 아닌가 싶다. [이끼]로 강우석에게 눈도장을 찍은 유선은 모처럼 비중있는 히로인의 역할을 맡았지만 그녀 자신이 지닌 잠재적인 매력을 끌어내기에는 부족함이 많은 배역을 선택했다. 반면 청각 장애인을 연기한 젊은 배우들의 연기는 비교적 무난한 편이나 영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의외로 적다.

물론 영화는 재미도 있고, 감동적이다. 이러한 장점들이 너무 뻔한 것이고 개성도 느껴지지 않을 지언정 [킹콩을 들다]나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같은 감동 스포츠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글러브] 역시 만족스러운 작품이 될 것이다. 하지만 야구영화의 장르적 디테일이라든지, 혹은 장애인들의 인권문제를 의식한 영화적 서사를 기대하지는 말라. [글러브]의 감독은 강우석이니까. 딱 그만큼의 기대만 가지고 간다면 크게 실패할 것이 없는 영화다.


P.S:

1.내가 [글러브]를 좋게보는 이유는 이 영화가 강우석 감독의 작품 중에서 '악인'이 등장하지 않는 유일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지향점이 그래도 선한 것을 추구하고 있기에 단호하게 악담을 쏟아내지는 못하겠다. 난 마음이 약하니까.

2. [러브 액츄얼리]의 명장면을 차용한 씬은 의외로 좋았다. 그래, 이런게 강우석의 장기라니까. 패러디나 오마주가 아니라 그냥 붙여넣는거. 좋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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