뮬란: 전사의 귀환 - 지루한 중국 구국신화의 재생산
남장여인의 구국영웅신화를 노래한 중국 북방지역의 목란시(木蘭詩)는 이미 디즈니 애니메이션 [뮬란]을 접한 우리에게 있어 그리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병든 아버지를 대신해 징집당한 효녀 뮬란이 전장에서 승승장구 활약하며 나라를 구한 이 이야기는 대표적인 금녀지대로 인식되는 병영에서의 고된 생활을 겪으면서 한편으로는 여자라는 정체성이 탄로날까 노심초사하는 뮬란의 심정으로부터 극적인 재미를 느낄만한 흥미로운 설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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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국의 유명한 이야기를 헐리우드에서 먼저 상업적으로 이용한 것이 못내 아쉬웠던지 대만의 47부작 드라마 [화목란]은 애니메이션과는 사뭇 다른 뮬란의 모습과 일생을 묘사하며 값싼 오리엔탈리즘에 심취했던 디즈니 애니메이션과는 달리 설화 본연의 오리지널리티를 살리려는 시도를 한 바 있다. 이번에 새롭게 제작된 영화 [뮬란: 전사의 귀환]은 [적벽대전], [공자], [명장] 등 최근 대작급 서사극으로 쏠쏠한 재미를 본 중국 영화계의 의도가 능히 짐작되는 작품이다. 자국의 영웅을 재조명하되, 중국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역사관을 부각시키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전쟁영화에 걸맞는 스케일을 입히면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못지 않게 때깔있는 작품처럼 보이지 않겠느냐는 욕심도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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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말해 [뮬란: 전사의 귀환]은 디즈니표 [뮬란]의 틀을 탈피하는데는 성공했다. 영화의 중심인물인 뮬란에게 그 어떤 신비주의적인 색체를 입히거나 잔 다르크 식의 여전사 이미지를 구축하려 애쓰지 않았다. 오히려 [뮬란: 전사의 귀환]의 뮬란은 남자인척 행세해야하는 여자로서의 고통과 전쟁에서의 살육에 괴로워하는 다크히어로적인 캐릭터로 그려졌다. 병영에 침투한 여성의 고뇌를 사실주의적인 측면에서 접근한 점은 이 작품에서 가장 눈여겨 둘 만한 변화다.
그러나 여기까지. [뮬란: 전사의 귀환]은 그 의도와는 달리 헛점이 많이 노출되는 작품이다. 이미 [적벽대전]에서 한차례 남장여인으로 등장했던 조미의 외모는 전장의 한복판에서 12년간 병사를 이끈 (아이러니하게도 이 작품은 디즈니의 [뮬란] 이후 12년만에 등장한 영화다) 장군의 이미지보다는 연정을 느끼는 동료 문태와 풋사랑에 빠진 여인의 모습에 더 가깝다. 그렇기에 잊을 만하면 등장하는 문태와 뮬란의 멜로라인은 영화에 대한 몰입에 심각한 장애를 초래한다. 비록 이것이 여자로서의 복잡미묘한 감정선을 드러내기 위함이라 하더라도 뮬란의 캐릭터 구축에 있어서는 결코 올바른 선택이라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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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홍보사에서 [적벽대전]과 [삼국지: 용의 부활]의 제작진이라고 호들갑스럽게 내세운 것과는 달리 총 150억이 투입된 [뮬란: 전사의 귀환]은 전장의 스펙터클을 온전히 느낄만큼 박진감이 넘치는 작품도 아니다. 어디까지나 뮬란 개인에게 초점을 맞춘 작품이기 때문에 제법 많은 전투씬에도 불구하고 전장의 활극적인 요소보다는 무의미한 살육의 현장에 대한 무덤덤한 시선을 던진다. 오히려 시각적인 스펙터클에 있어서는 애니메이션 [뮬란]의 설원 전투씬이 훨씬 더 뛰어나다고 할 수 있겠다.
기승전결의 내러티브가 뚜렷하지 않아 영화의 극적 긴장감이 떨어지는 것도 일종의 단점이다. 단지 역사서를 읽듯 뮬란의 출전에서부터 12년간의 전쟁이 담담하게 그려지고 있으며, 뮬란을 비롯해 딱히 매력적이라 할 만한 캐릭터도 없다. 그나마 약간의 기대를 걸었던 후쥔은 전형적인 스테레오 타입의 악당으로 등장했다가 바보같은 최후를 맞는다. 이렇듯 [뮬란: 전사의 귀환]은 중국인들의 관점에서 볼 때 신화적 이야기의 재생산이라는 점에서 그 느낌이 다를지는 몰라도 딴 나라의 이야기를 접하는 우리의 입장에선 그저 지루한 한 편의 역사 드라마일 뿐이다.
P.S: 이런 남장여자 컨셉의 영화를 볼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동방불패]의 임청하 누님이야말로 진정한 레전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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