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편열전(續篇列傳) : 슈렉 2 - 동화적 환상의 비틀기, 그리고 패러디
속편열전(續篇列傳) No.13
수십년간 애니메이션 시장의 절대강자로 군림해 온 디즈니 작품들의 특징이 달콤한 동화 속 판타지의 구축이라면 올해로 창립 15년을 맞는 경쟁사 드림웍스의 컨셉은 디즈니식 동화체계의 전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특징이 가장 크게 두드러졌던 작품이 바로 [슈렉]이었지요. 1990년 미국의 동화작가 윌리엄 스테이그의 작품을 애니메이션으로 옮긴 [슈렉]은 일반적인 히어로의 이미지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오우거를 주인공으로 내새워 '백마탄 왕자' 신드롬을 산산히 부숴 놓았습니다. '너희들의 시대는 끝났다!' 극초반 파콰드 성주가 동화 속 주인공들에게 외치는 이 한마디에 작품의 성격이 모두 담겨있달까요.
사실상 [슈렉]은 기존의 디즈니 동화들이 구축해 놓은 세계관을 그대로 빌려쓰면서도 그 안에 살고 있는 캐릭터의 변주에 있어서는 가히 엽기적이다 싶을만큼 파격적인 시도를 감행했는데요, 못 생기고 냄새나는 주인공 슈렉이야 그렇다 쳐도 '천상 여자'여야 할 공주는 각종 무술에 능하며 소위 '한 성깔하는 여성'으로 설정되어 있으며, 이런 고전적인 캐릭터 설정의 파괴에 더해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일침을 가하는 막판의 반전은 관객에게 무척 신선하다는 느낌을 선사합니다. 떠벌이 동키와 수문장인 미녀 드래곤이 사랑에 빠지는 가히 '막장급' 러브스토리의 전개마저도 작품의 황당무계함에 잘 흡수되어 오히려 관객들을 즐겁게 만드는 요소가 되어 버리지요.
ⓒ DreamWorks Animation. All rights reserved.
[슈렉]의 또다른 관전 포인트는 패러디였는데요, [매트릭스]의 불릿타임이나 [글레디에이터], [와호장룡] 등 당시 화제작들의 명장면을 흉내낸 일련의 개그들은 이후 [슈렉] 시리즈의 큰 특징으로 자리잡습니다. 비록 흥행면에서 [슈렉]은 업계의 1인자 픽사의 [몬스터 주식회사]를 넘어서진 못했습니다만 애니메이션으로는 역대 두 번째로 칸느 경쟁부문 출품되면서 바야흐로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의 저력을 세상에 알리게 되었지요. 그리고 신설된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 부문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하기에 이릅니다.
이렇듯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준 [슈렉]은 3년만에 속편으로 돌아옵니다. [슈렉]의 성공으로 한껏 고무된 드림웍스가 [신밧드의 모험: 7대양의 전설]의 실패로 의기소침해 있는 가운데 기획된 작품인 셈이죠. 하지만 1편의 재미를 구성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던 각본가 테드 엘리엇과 테리 로시오 콤비는 이번 2편에서 하차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슈렉 2]가 1편과는 달리 전통적인 동화적 내러티브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실제로 [슈렉 2]의 기본 스토리 컨셉은 피오나의 아버지인 해롤드 왕을 중심으로 '벌거벗은 임금님' 이야기에 모티브를 두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제작자인 제프리 카젠버그가 밝혔듯 [슈렉 2]는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슈렉]을 만났을 때' 어떤 작품이 나오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편에서 성대한 결혼식을 올린 슈렉과 피오나 부부가 '겁나 먼 왕국'의 왕과 왕비인 피오나의 부모님의 부름을 받아 가면서 벌어지는 내용을 통해 결혼의 통속적 관념을 비웃는 것과 동시에 이번에는 디즈니가 아니라 미국 대중문화의 중심지인 헐리우드와 허영의 상징인 비벌리힐스를 조롱하는 날선 풍자성을 드러내고 있지요. 여기에 프린스 차밍과 요정 대모 등 기존 동화 스토리의 주연급 캐릭터들을 악역으로 뒤집는 시도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사실 요정 대모의 캐릭터는 1편에 사용될 예정이었지만 반려되었다가 속편에서야 사용된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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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속편의 함정은 [슈렉 2]에서도 발견됩니다. 원래 강한 충격요법일수록 두 번째는 잘 안 먹히는 법이랄까요. 이미 써먹을만큼 써먹은 뒤집기의 묘미는 속편에 들어오면서 다소 식상해졌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제작진은 엄청난 물량의 패러디를 쏟아부으며 단점들을 상쇄하고자 합니다. '헨델과 그레텔'를 비롯, '백설공주', '개구리 왕자' 등 수없이 많은 동화의 패러디에 더해 [미션 임파서블], [에이리언], [터미네이터 2], [스파이더맨], [레이더스], [반지의 제왕] 등 웬만한 영화 매니아가 아니고선 미처 다 눈치채지 못할만큼 방대한 분량의 패러디가 정신없이 펼쳐집니다.
Shrek 2 ⓒ DreamWorks Animation./Spider man ⓒ Sony Pictures.
한편 전작에서 파격성으로 승부수를 띄웠던 슈렉과 피오나 등 중심인물들의 매력이 [슈렉 2]에 들면서 상당부분 퇴색되었는데, 이를 보완해줄 만한 새로운 캐릭터를 등장시킨 것도 영리한 선택이었습니다. 바로 '장화신은 고양이'이지요. 이 장화신은 고양이의 목소리는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맡았는데, 흥미롭게도 반데라스 자신이 주연을 맡았던 [마스크 오브 조로]를 희화시키면서 엄청난 폭소의 시너지 효과를 발휘합니다. 특히 고양이가 눈물을 끌썽이는 시퀀스에서 배꼽을 잡지 않은 관객은 없으리라 생각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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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렉 2]는 전편을 뛰어넘는 작품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전작의 성공요소에 상당부분을 기대고 있고 여기서 드러나는 헛점들을 전편보다 더 자극성이 강한 오락적 요소들로 교묘히 감출 뿐입니다. 덕분에 관객들은 [슈렉 2]를 보면서 정신없이 웃어대다가 극장문을 나서지만 전편만큼 뚜렷한 잔상이 남지 않음을 알게 되지요. 하지만 적어도 [슈렉 2]가 실패한 속편이 아님은 분명합니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보완하려한 노력이 작품 전반에 드러난다는 점에서 충분히 박수를 쳐줄만 하지요.
결국 [슈렉 2]는 4억4천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그 해 가장 강력한 맞수였던 [스파이더맨 2]를 누르고 2004년 박스오피스 1위를 장식합니다. 이는 라이벌 픽사의 [인크레더블]이 벌어들인 2억 6천만 달러를 가볍게 뛰어넘는 수치로서 3년전 [몬스터 주식회사]를 넘지 못한 아쉬움을 단번에 날려 버린 쾌거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창의성을 지향하는 픽사가 [인크레더블]을 통해 히어로물의 뒤집기를 시도한 것도 [슈렉]이 보여준 전략을 어느정도 의식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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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안타깝게도 [슈렉] 시리즈의 상한가는 여기서 그치고 맙니다. 2007년 극장가의 '빅3'라 불리며 야심차게 돌아온 [슈렉 3]가 평단의 차가운 반응에 부딪히며 한계를 드러내고 만 것이지요. 비록 흥행에서는 성공했지만 전작의 한계를 극복해낸 [슈렉 2]처럼 영민하지 못한 [슈렉 3]는 올해 개봉한 [슈렉 포에버]와 함께 흥행 보증수표로서의 임무를 마감하게 됩니다. 이제 [슈렉]시리즈는 동화책다운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었지만 현재 드림웍스에서는 [슈렉]시리즈의 스핀오프 [장화신은 고양이]를 제작중에 있습니다. 또 다른 동화 비틀기의 시작이려나요.
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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