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존 - 이라크전의 불편한 진실
워싱턴 포스트지 국내부 편집장인 라지브 찬드라세카란의 논픽션 소설을 영화화한 [그린 존]은 2003년 대량 살상무기를 핑계로 이라크를 침공했던 미국의 치부를 드러내는 헐리우드 영화다. 명분이야 어쨌든 이라크 침공의 원래 목적이 무엇인지는 만천하가 공공연하게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그린 존]은 굳이 해묵은 소재를 다시 끄집어내어 그 진실을 관객에게 각인시키고자 한다. 어찌보면 [블러디 선데이]나 [플라이트 93] 같은 실제 사건에 근거한 영화를 다큐멘터리적인 기법으로 완성시킨 폴 그린그래스 감독의 입맛에 딱 알맞다고나 할까.
핸드헬드 기법을 입신의 경지로 승화시킨 그의 작품답게 [그린 존]의 현장감은 상당하다. 이라크전이 한창이던 바그다드의 한복판에 와있는 듯한 느낌으로 실제 전쟁터를 누비고 다니는 대리체험의 시간을 만끽하고 싶은 관객이라면 번짓수를 제대로 찾은 셈이다. 유머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고 시종일관 건조한 긴장감만이 감도는 이 느낌이야 말로 전쟁영화가 폴 그린그래스식 스릴러를 만났을 때 비로소 맛 볼 수 있는 것이리라. 적어도 지금까지 폴 그린그래스의 연출방식에 매혹되었던 팬들이라면 이번에도 실망할 일은 없을거라 본다.
ⓒ Universal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문제는 이 영화가 가진 소재다. 최근 헐리우드는 너무 많은 이라크전 관련 영화를 쏟아냈다. 이번 아카데미를 석권한 캐슬린 비글로우의 [허트 로커]는 평단의 극찬과 아카데미 특수라는 최고의 호재에도 불구하고 정작 흥행에서는 별다른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이라크전을 소재로 한 영화는 흥행에 실패한다'는 징크스는 이제 정설로 굳어져가는 상황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린 존]은 이러한 악재를 피해갈만큼 엄청나게 대단한 작품은 아니다.
오락성을 유지하면서 나름대로의 진지한 노선을 추구했던 [본 얼티메이텀]과는 달리 [그린 존]은 사실에 근거한 르포성 영화다. 본 작품은 이라크전으로 밝혀진 미국의 도덕적 결함과 강대국의 손에 조국의 명운을 맡길 수밖에 없는 이라크 국민의 슬픔을 동시에 드러내려 하지만 그런 작품성 강한 영화로 보기에는 다소 가볍고, 오락영화로 보기엔 지나치게 무겁다. 그린그래스 감독은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장기를 십분 발휘해 영화를 완성시켰지만 이라크의 전장을 누비는 맷 데이먼의 모습이 불가분 제이슨 본을 연상시키며 전작의 잔영 아래 애매한 위치에 놓이게 된 것도 썩 현명한 선택은 아닌듯 하다.
ⓒ Universal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물론 [그린 존]이 재미없는 영화인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단호하게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린 존]은 진실을 파헤치는 자와 그것을 은폐하는 자와의 양보없는 대결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지는 스릴러이자, 이라크전의 본질을 가장 잘 표현한 전쟁영화이기도 하다. 분명 폴 그린그래스는 현 시점에서 비헐리우드적인 오락물을 가장 스타일리쉬하게 소화해 낼 수 있는 몇 안되는 감독임에 틀림없다. 이미 '제이슨 본 시리즈'로 상업적 성공을 맛본 시점에서 초기의 모습으로 돌아가기란 쉽지 않으련만 [그린 존]은 초심을 잃지 않으려는 감독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는 면에서 만족스럽기까지 하다. 이것이 비록 [그린 존]이 흥행에 실패한다해도 폴 그린스래스의 차기작이 여전히 기대되는 이유다.
* [그린 존]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Universal Pictures. 에 소유됨을 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