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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트로 보이 특집 : 불타는 철완아톰 연대기 (1부)

페니웨이™ 2010. 1. 11.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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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eague에 소속된 현 포항 스틸러스는 1984년 포항제철 돌핀스라는 이름으로 프로축구계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성적부진에 시달리던 포항제철팀은 그 이듬해인 1985년 충격적인 처방을 단행한다. 팀이름을 '포항제철 아톰즈'라고 개명하며 팀의 마스코트도 아톰으로 변경해버린 것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공기업인 포항측에서 자사 축구팀의 마스코트로 일본의 국보급 캐릭터를 선택한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당시의 저작권 개념따윈 둘째치더라도 꼭 아톰이어야 했을까하는 의문과 더불어 겉으로는 일본문화를 배척하면서 어느덧 스며든 일본 만화의 영향력이 어느정도였는지를 가늠케하는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포항제철 아톰즈는 1997년이 되어서야 저작권 문제로 인해 팀명과 마스코트를 다시 바꾸기에 이른다.

이렇듯 데즈카 오사무의 간판 캐릭터 아톰은 비단 일본 자국내에서만 맹위를 떨친 것이 아니었다. 이제 일본의 국민만화로 자리잡은 아톰이 어떻게 탄생했으며 전세계 만화시장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되었는지 그 일대기를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다.


1950년, '정글대제'(국내명: 밀림의 왕자 레오)로 만화시장의 절대강자로 떠오른 데즈카 오사무(手塚 治虫)는 정신없는 한해를 보냈다. 장장 5년간이나 연재된 '정글대제'의 원고량이 부쩍 늘어난 탓도 있었지만 데즈카 자신의 주가가 수직 상승하는 바람에 여기저기서 원고청탁이 쇄도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데즈카는 '정글대제'의 연재와는 별도로 차기작 한편을 병행작업하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1951년 작 '아톰대사'(アトム大使)다. 이 당시 데즈카 오사무의 나이는 불과 23세.


신흥 출판사인 고분샤(光文社)의 월간지 '소년'에 연재를 시작한 '아톰대사'는 약 1년 남짓의 연재로 계획된 중편 기획물이었다. 교통사고로 아들을 잃은 천재 텐마박사가 아들을 대신할 로봇을 만들지만 이 로봇이 인간처럼 성장할 수 없다는 사실에 좌절한 텐마가 아톰을 서커스단에 팔아 버린다는 내용의 이 작품은 사실상 아톰이 등장하는 첫 작품이기도 했지만 아톰이라는 캐릭터가 극중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조연급 정도에 불과했다.

ⓒ Tezuka Productions Co. All rights reserved.


'아톰대사'의 연재가 마무리에 이를 무렵 데즈카 오사무와 편집장은 (조연에 불과한) 아톰의 인기가 예사롭지 않다는데 주목하게 된다. 이에 편집장은 '약점과 인간다운 감정이 있는 로봇을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이 독자들에게 먹힌다'며, 데즈카에게 '아톰대사'의 스토리를 그대로 사용하면서 아톰의 비중을 주연급으로 격상시킨 새로운 시리즈를 발표할 것을 제안한다.

이 계획에 동의한 데즈카는 '아톰대사' 때보다도 더 면밀한 사전 작업을 준비한다. 우선 캐릭터는 평상시 그가 존경해 마지 않던 디즈니의 캐릭터에 근간을 두게 되었다. 이같은 사실은 훗날 데즈카 오사무에게 표절논란을 가져오지만 정작 큰 이슈는 되지 못했다. 일본인들이 만화의 신으로 떠받들던 데즈카 자신이 월트 디즈니의 영향을 받았음을 항상 시인하고 다녔기 때문이다.


월트 디즈니의 원작캐릭터 미키마우스와 데즈카 오자무의 아톰. 특히 손부분을 자세히 보면 손가락 4개의 동일한 형태를 띄고 있음을 금방 확인할 수 있다. 나중에 데즈카는  자신이 쓴 에세이를 통해 '아톰은 미키마우스의 조카뻘이다'라고 순순히 인정했다. 그는 아톰의 머리 양쪽이 뾰족한 이유에 대해 미키마우스의 큼직한 귀에서 착안해 낸 것임을 밝히기도 했다.


ⓒ Tezuka Osamu. All rights reserved.

데즈카 오사무가 지은 '월트 디즈니 이야기'. 표지에 나온 그림은 디즈니가 그린 오리지널이 아닌 데즈카 자신의 그림이다. 평소 디즈니에 대한 데즈카의 동경은 대단한 것이었다. '아톰대사'의 연재가 시작될 무렵인 1951년 개봉된 월트디즈니 애니메이션 [밤비]는 데즈카에게 있어 컬쳐쇼크에 가까웠다. 훗날 재개봉된 [밤비]의 관람을 포함하면 데즈카는 도합 130회나 [밤비]를 관람하기에 이른다. 그런 그가 1964년 미국 뉴욕의 한 박람회장에서 우연히 디즈니와 만나게 되었을 때 그 감동은 어떠했겠는가.


또한 데즈카는 철저한 '독자제일주의'의 작가였다. 그는 '캐릭터의 우수성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작가가 아니라 독자'라는 생각의 소유자였다. 따라서 데즈카는 각각 형태를 다르게 표현한 아톰의 캐릭터 50매를 그려 방과후 아이들에게 일일이 물어가며 최종 캐릭터를 선정하는 열의를 보인다.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아톰의 캐릭터다.

한편 아톰 신작의 제목은 '철인아톰'이 될 예정이었다. 데즈카가 고안한 이 제목은 그러나 편집장의 반대에 부딪히게 되는데, '철인'이라는 단어의 뉘앙스가 어딘지 딱딱하고 차가운 느낌을 준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번에도 데즈카는 독자들의 의견을 따르기로 한다. 그는 다시 방과후 학교를 전전하며 아이들의 의견을 물어보는 한편 서면 앙케이트를 병행하며 새로운 작품의 제목에 대한 의견을 구했다. 결과적으로 채택된 제목은 '철완아톰 鉄腕アトム', 즉 '무쇠주먹을 가진 아톰'이라는 뜻의 타이틀이었다.

ⓒ Tezuka Osamu. All rights reserved.


연재가 시작된 시점에서의 '철완아톰'은 매우 파격적인 작품이었다. 인간을 위해 봉사하도록 고안된 로봇이지만 스스로의 의지를 가지고 생각하며 고뇌한다는 설정 자체는 당시로서는 상당히 혁신적인 내용이었다. 때문에 아톰은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서 싸움을 반복하지만 바로 그러한 점이 로봇인 아톰의 한계이자 인간이 될 수 없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는 '철완아톰'의 테마는 세월이 흐른 오늘날까지도 매력적인 것으로 평가받는다.

ⓒ Tezuka Productions Co. All rights reserved.


더욱이 패전 이후 실의에 빠진 일본인들에게 있어 아톰이라는 캐릭터는 작지만 기술적으로 우수한 아톰이 자신보다 거대한 로봇들을 차례로 제압한다는 점에 있어서 일본인들의 자화상과도 묘한 일치감을 보였다. 시기적으로 '철완아톰'은 데즈카의 천재성 보다도 우위에 있었다. 결국 '철완아톰'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소년'지의 간판 타이틀로서 무려 16년간 연재되는 대기록을 수립하게 된다.


- 2부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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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서적:  박태견 저,『제패니메이션이 세상을 지배하는 이유』(길벗,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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